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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Jan 09. 2024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방학입니다. 방학이라고 내내 맘 놓고 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부담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는 순간이지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애들이 없으니 선생도 할만하다. (응?!)

아무튼 오늘은 오랜만에 노트북을 정리하다가 그 옛날 임용고사에 붙었을 때, 그 당시 썼던 합격수기를 발견했습니다. 풋풋한 신규교사였을 서른 살의 나를 다시 만났습니다.



[2010학년도 충청남도유아임용 합격수기]

임용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병설에 계신 선생님 한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공부하세요. 그럼 붙어요.”

떨어져도 괜찮다니  무슨 말이야?


이젠 그 말뜻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저는 계획표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세우질 못하기 때문에 1년 내내 마인드컨트롤로 버텼답니다. 마음줄과 정신줄만 잘 잡고 있어도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제가 했던 마인드컨트롤의 방법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올해 서른입니다. 시험을 두 번 봤어요. 학교 다니다 휴학하고 일도 하고 결혼도 해서 학교를 오래 다닌 탓에, 첫해 공부할 때는 4학년이었고 졸업과 동시에 임용에 붙자라는 생각으로 첫해에는 공부만 했습니다. 공부가 잘 되는 날은 16시간도 해본 날도 있고요. 그런데 꼭 그렇게 몰입한 다음날은 지쳐서 하루 종일 놀았어요. 물론 실패했죠; (첫해 공부해서 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거나 , 독한 사람이거나 , 축복받은 두뇌를 가졌거나? 부럽네요) 학점을 잘못 이수해서 졸업도 못했어요. 정말 엉망인 한 해였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친정엄마한테 혼나고, 남편에게도,  애를 키워주시던 시어머니 얼굴도 뵐 면목이 없었죠. 학교는 5학년이 되었고, 두 번째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하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답니다. 2차 시험을 보고 발표가 날 때까지  하루 6시간 알바를 뛰었어야 됐죠. 다행인 건 아이를 시어머니께서 맡아 키워주셔서  그나마 육아의 부담은 없었지만,  시험준비하는 내내, 아들내미를 방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누군가는 실실 웃으며 저에게 그랬습니다. “그래서 되겠니?” 엉덩이를 걷어차주고도 싶었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할 때에는 차라리 귀를 막고 '귀머거리'가 되어 나는 틀림없이 해 낼 수 있다고 다짐해야 된다.”


그래서 저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나를 믿었습니다.


1. 떨어져도 괜찮다=나 자신을 얼마나 감동시켰는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나에게 물어봤습니다. “넌 오늘 열심히 살았니?”


 이미 한번 실패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만 없는 그 섬뜩함을 다신 맛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어 늘어질 때마다 그때를 기억해 보았습니다. 

아,  합격자명단에 내 이름 빠져있는 그 기분. 

참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그러고 나면 잠이 확 깹니다. 그러면 수준별이라도 외우게 됩니다.



2. 나 자신을 위로해 주고, 칭찬해 줍니다.


 -넌 지금 잘하고 있다. 다른 사람 다 똑같다. 너만 틀리는 거 아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내내 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8시간이나 공부했으니까 너는 순대를 사 먹어라.

 인강 보면서 싸이홈피도 안 열어봤네. 넌 역시 성실하다. 고스톱 10판만 치자.



3. 누구나 좌절은 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5월 즈음, 교육학 문제 50개를 풀었는데 22갠가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도 기출문제를;; -_- 돌멩이도 아니고, 정말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울었습니다. 분명 작년에도 풀어봤는데 말이죠. 그렇게 펑펑 울고 나니 ‘뭐 어때. 모의고사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5월 달에 돌멩이가 되는 게 낫지. 10월이 아닌 게 어디야. 괜찮아.


그리곤 다시 교육학을 꼼꼼히 다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4.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2차까지 보았다고 하면 우와~ 진짜?라고 묻습니다. 저는 좀 게으르고 늘어지는 성격이라 스터디를 하면 민폐가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지하고 싶을 때 공부해야 하는.  하루 종일 늘어지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3시부터 9시까지 수학학원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인강비도 벌고, 알바를 하고 있으니 오전시간과 밤 시간에만 공부를 할 수 있단 생각에 더 자신을 다그칠 수 있었습니다. 수학학원의 특징은 애들한테 문제 풀이를 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요점만 잘 설명해 주면 모든 문제를 애들이 풀어야 되는 게 수학학원 인지라, 애들 문제 풀 때 저는 수준별을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뭐 가끔 제가 몸이 지칠 때는 단원별 형성평가를 봤어요. 애들은 형성평가 시험을 보고  저는 그 시간에 교육학 모의고사를;;;(원장님이 이걸 보시면 절 가만두실까요?;;;) 음.. 그렇게 날로 먹진 않았어요. 보충수업도 많이 해줬고요. 가르치는 사람은 두 번 배우게 된다고 하잖아요. 공부하는 초등학생을 보면서, 초등학생도 열한 시까지 학원 수업을 받고 집에 가는데 어른인 나는 뭐가 힘들다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평일에는 오전에 5시 30분에 일어나서 7시까지 모든 교육학이든 전공이든 인강을 보고, 출근하는 남편 챙겨주고 8시에 도서관을 갔습니다. 8시부터 3시까지 공부하고 학원에 출근해서 9시 30분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12시까지 앉아서 다시 인강을 봤습니다. 출퇴근할 때와 도서관 갈 때, 마트에 갈 때도 수준별 mp3파일과 유의점을 mp3로 만든 파일 등을 계속 듣고 다녔습니다. 말 그대로 자투리 시간도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말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둘 중에 하루는 남편과 놀아주고! 하루는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봤고요. 한 달에 두 번은 아이를 보러 시댁에 갔습니다.


1년 동안 다람쥐 바퀴 돌듯; 저런 생활의 연속이었답니다.  


5. 95%의 노력과 5% 의 운.


떨어지는 사람과 붙는 사람의 점수는 정말 잔인합니다. 영점 몇 점으로 붙는 사람과 떨어지는 사람의 실력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두 번 시험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합격을 하려면 정말 나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은 내가 얼마만큼 노력했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만. 그렇지만 5%의 운은 정말 존재합니다. 95%를 노력했는데 되지 않았던 건 5%의 운이 부족했던 겁니다. 그래서 불합격한 분들에게 미안한 이유도 그겁니다. 참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운도 내게 손을 들어줄 날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 우물을 파는데  물이 나오기 직전까지만 파고 그만둔다는 흔한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전 항상 헬렐레 웃으며 다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만,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애기 사진 놓고 울고, 남편에게 아침도 못 차려줘서 굶겨 보낼 때 울고, 시험은 코앞인데 리포트도 해야 하는 학생이라 울고, 외워도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해설서 때문에 돌멩이 같은 머리를 쥐어박고, 혼자 꾸역꾸역 먹는 밥이 서러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카르페디엠. 그래도 즐겨보세요. 저는 그 눈물까지 즐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합격발표 나는 날에 어떻게 즐거워할지 상상도 해보시고요. 저는 10년 만에 졸업하는 징글징글한 대학생이라서, 공부하기 힘들 때마다 수석플래카드를 뒷배경으로 학사모를 쓰고 가족들과 함께 졸업사진을 찍는 상상을 마구 했답니다.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저 2월 17일에 졸업합니다. 수석은 못했지만 이번에 충남 차석을 했거든요. 학교에서 플랜카드 써준댑니다. 드림스컴트루~


올해를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네요!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세요!



서른 살의 나,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그때처럼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여전히 살고 있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더 노련한 교사가 되었죠. 흠흠.


오십의 나에게도 말하고 싶네요.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죠?

그래요. 그럴 겁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 없어요.

나는 매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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