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쓰는 편지
지금은 1999년, 여기는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야. 세월이 수십 년 흘러 네가 어느 평온한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면, 지금 내가 겪는 이 일들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처럼 기억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지금 네가 누리는 그 평온함은 결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야.
그해 8월 미국 땅을 밟은 지 불과 사흘 만이었지. 우리 가족을 태울 자동차를 사러 딜러샵을 찾아갔었지. 망설임 없이 현대 쏘나타를 골랐지만, 낯선 땅에 갓 상륙한 내게 은행 계정이나 신용카드가 있을 리 만무했지.
나는 15,300불 전액을 현금으로 내밀었어. 그런데 그들은 현금을 싫어하거나 의심하는 것 같았어. 세계의 금융 중심지 맨해튼 한복판에서 황당한 일을 경험했어. 미국에 와서 매일 매시간 겪는 문화적 충격이었어. 그들은 100달러짜리를 일일이 전등 불빛에 비춰보며 위조지폐 여부를 감별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8월 말 ‘수형자들의 정신건강학’첫 수업에서 내 이름이 수강생 명단에 없다는 거야. 수업 중에 교실에서 되돌아 나왔지. 그때의 막막함을 잊을 수 있겠니? 행정안전부의 업무 착오와 미국의 3학기제라는 시스템 사이에서, 나는 한순간에 '등록금 미납자'가 되었어.
나는 더 이상 행안부의 '느려 터진 결재'만 기다릴 수 없었어. ISO(국제학생센터) 사무실로 달려갔지. 그들은 나의 예외적인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어. 내가 미등록 학생이라서 '이민국 보고 대상'이라는 거야. 나는 물어서지 않고 그들을 설득했지.
"나를 단순히 유학생 한 명으로 보지 마라.
나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서 온 사람이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평등 아니냐. 미국 공무원이 한국에서 나와 같은 경우를
겪는다면 한국대학은 예외를 두었을 것이다. 상호주의로 가자.“
결국 그들은 나의 논리에 연기로 답해주었고, 나는 시간을 벌어 등록을 마칠 수 있었어. 그 일주일은 단순히 행정 문제를 해결한 시간이 아니었어. '주어진 환경이 나를 거부할 때, 어떻게 길을 낼 수 있는가'를 깨우친 인생수업이었지.
나는 믿어. 내가 겪는 이 뼈저린 고립감이 결국 내 안에 '꺾이지 않는 의지력'이라는 근육을 만들어 줄 거라는 사실을. 유학생활 내내 39년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이런 생경한 고통들을 슬기롭게 이겨낼 거야. 지금 어느 길위에서 네가 겪는 경험은 훗날 네가 맞이할 '평온'을 위한 대가니까.
혹시 지금 네 삶이 지루하거나 혹은 또 다른 장벽 앞에 서 있니? 그렇다면 1999년, 뉴잉글랜드에서 ISO 직원과 담판을 짓던 나를 떠올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