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이반 서점소비치의 하루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가족 간 감염의 덫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고 저는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14일의 자가격리 판정을 받았습니다.
모범 시민답게 자가격리 수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지만 격리기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부터 몹시 무료함을 느꼈습니다. 홈런볼의 개수를 세어본다거나 눈사람이 너무 만들고 싶은 나머지 베란다 난간에 쌓인 눈을 소중히 모으는 등 자가격리의 부작용으로 몸부림치던 어느 날 자가격리앱을 보고 갑가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유레카! 심심한데 이거라도 분석해보자!
이 글은 자가 격리 중 심심했던 어느 기획자의 쓸데없는 직업정신이 발현된 글입니다. 우리나라 자가격리앱만 분석하는 건 심심하니까 하는 김에 전 세계 자가 격리 앱도 분석해서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챕터에서 정부 코로나 정책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도 다뤄볼 생각입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느낌으로 봐주세요)
지원언어 : 중국어 / 영어
강제성 여부 : 강력한 강제성
기능 : 손목밴드와 통신을 통한 격리자 이탈 추적
자가격리기간 : 중국, 마카오, 대만 입국자 14일(자가, 호텔) / 그 외 지역 21일(호텔)
출시일 : 2020년 3월
해외 외신에도 많이 보도되었고 국내에서도 MBC나 연합뉴스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파시즘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홍콩은 꽤나 강력한 자가격리를 시행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상 해외 입국자 문제에서 예민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홍콩은 입국자에게 전자팔찌를 부착하고 입국자가 자가 격리할 위치에 도착하면 앱 액티베이션 (자가격리 활성화)을 통해 GPS로 자가격리 위치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전자팔찌에 기록된 QR코드를 앱으로 촬영하면 전자팔찌와 앱이 블루투스로 연결됩니다. 전자 팔찌와 휴대폰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거나 자가격리 지역을 무단이탈할 경우 2만 5천 홍콩달러 (한화 약 350만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앱은 기능이 워낙 단촐해서 크게 소개할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손목밴드의 QR 코드를 인식하는 기능 (ADD WRISTBAND)과 며칠에 한 번씩 알람이 오면 전자팔찌의 QR코드를 스캔하는 RE-SCAN 기능이 전부입니다.
다른 국가의 자가격리앱은 보통 컨디션 체크 (증상이나 발열 등) 기능이 있고 GPS로 휴대폰 위치를 추적하는 형태로 자가격리의 자율성을 사용자에게 일임하는 경향이 있는데 홍콩은 전자팔찌로 자가격리의 강제성을 부여합니다. 솔직히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자가격리앱은 허점이 많습니다. 호텔이면 몰라도 자택에서 자가격리할 경우 휴대폰만 두고 나가면 집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실제로 저도 집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쌓여서 새벽에 몰래 쓰레기만 버리고 올까 하는 충동이 들기도 했었죠. 저는 모범시민(?)에 집돌이라 자가격리를 잘 견뎠지만 솔직히 맘만 먹으면 이탈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는 논란도 있지만 코로나 같은 국가재난 상황에서는 감염병의 통제를 개인의 양심에 맡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강제성은 필요하지 않나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국에서도 자가격리지를 무단이탈하는 이탈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식의 강력한 억제정책은 좋은 통제방법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지원언어 : 영어
강제성 여부 : 강제
기능 : 본인 확인을 위한 사진 촬영 / 건강 보고서 제출 / 사용자 위치추적
자가격리기간 : 지정시설(호텔)에서 14일
출시일 : 2020년 4월
싱가포르는 중국과 인접해있고 전체 인구의 80%가 중국계로 중국과의 교류가 매우 활발한 나라입니다. 2003년 사스 사태 때도 238명의 확진자를 기록하여 중국(5327명), 홍콩(1755명), 대만(346명)에 이은 4위를 차지하였을 정도로 대규모 감염병에 큰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으며 인민행동당 주도의 강력한 사회통제 시스템, 좁은 국토와 높은 수준의 IT 인프라는 싱가포르가 코로나 대응에 ICT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해외 입국자들은 지정된 호텔(자가부담)로 이동하여 자가격리앱인 Homer를 설치 후 SMS로 인증코드를 받아 14일간의 자가격리를 수행해야 합니다.
Homer가 자가격리자에게 요구하는 기능은 3가지입니다.
GPS로 사용자의 위치 체크
1일 1회 본인 확인을 위한 사진 촬영
하루 3번 건강 체크
디자인, 기능, UI/UX 등 종합적으로 아주 잘 만들어진 앱입니다. 다른 나라 앱이 워낙 엉망이라 더 돋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디자인만 봐도 군더더기 없이 상당히 깔끔합니다. 이 앱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부분은 바로 안내문구의 처리입니다. 상업적인 앱의 경우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이나 표현의 한계로 긴 안내문구는 레이어 팝업이나 스크롤 등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앱은 안내문구를 모조리 화면 내에 노출하면서도 사용자가 읽기 좋은 위치에 읽기 적당한 사이즈로 가독성 높게 배치하였습니다. 이 앱을 보고 왜 싱가포르가 IT강국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언어 : 폴란드어
강제성 여부 : 보통
기능 : 불특정 시간에 본인 확인을 위한 사진 촬영 (20분 내) / 얼굴 인증 / 사용자 위치추적
자가격리기간 : 자가 격리 14일
출시일 : 2020년 3월
폴란드는 2021년 1월 현재 확진자 140만명, 사망자 3만 2천명으로 세계 14위의 확진자 순위를 기록 중입니다. 유럽 국가 중 비교적 빨리 자가격리앱을 도입했고 앱을 출시했을 20년 3월 당시 누적 확진자 1천명 수준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주위 국가들에 비해 적은 숫자를 유지하며 어느 정도 관리가 되는 듯 보였지만 초겨울에 들어서자 유럽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이어지며 폴란드 역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 인원 부족과 행정력 부재로 자가격리자 관리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항에서 자가격리앱에 대한 안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경찰이 수시로 방문하여 격리 상황을 체크하던 과거와 달리 자가격리자 관리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모습입니다.
폴란드에서는 공항 입국 후 자가 격리 장소와 연락처를 수기로 작성하여 제출합니다. 이후 자가 격리 장소로 이동, 자택에 도착하여 자택 격리 의무를 알리는 전화(전자 음성 메시지)를 기다리거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 직접 전화를 걸어 자가격리 상태를 활성화하여 자가격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 자가격리앱의 특징은 얼굴 인식 기능입니다. 자가 격리 직후 얼굴 사진을 촬영하여 격리자의 얼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후 인증 시에는 수집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촬영한 사진과 대조하여 얼굴 인식을 실시합니다. 어플에서 알림을 발송하여 자가격리자에게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데 알림 전송 후 20분 이내에 사진을 전송하지 않을 경우 500즈워티(약 15만원)에서 최대 5,000즈워티(약 1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얼굴 인식 기능 이외에도 특이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앱의 컬러입니다. 타 국가들의 자가격리앱이 주로 사용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파란색 계열의 컬러를 사용하는데 비해 폴란드는 주로 위험신호를 알리는 데 사용되는 붉은색 계열의 컬러를 사용했습니다. 과거 공산국가였기도 했고 폴란드 국기도 붉은색이니 비슷한 계열의 컬러로 국가적 정체성(공산당의?)을 표현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 빨간색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긴 하죠. 사진 안 찍으면 벌금 물고 공무원이 쳐들어오고 하니까 어쩌면 앱의 의도와 잘 맞기도 하고 사용자들은 앱만 봐도 두려움과 경각심(?)을 느끼게 될테니까요. 텍스트 나열형 구조나 버튼 색상 등 중간중간 UI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은 있으나 UI적인 부족함을 기술력으로 극복한 앱입니다. 자가격리 사진 촬영에서 얼굴인식을 차용한 국가는 폴란드밖에 없거든요.
지원언어 : 베트남어, 영어
강제성 여부 : 낮음
기능 : 건강보고서 체크
자가격리기간 : 지정시설(호텔)에서 14일
출시일 : 2020년 4월
코로나 발생지인 중국 인접국가(대만, 홍콩, 싱가폴)들이 정부 주도의 강력한 통제 정책으로 해외 입국자를 엄격히 관리하는 것에 비해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가격리 정책이 타국에 비해 느슨한 편입니다. 비밀은 공산당다운 강력한 통제 정책에 있는데 베트남은 코로나 발생 초기였던 20년 2월 초부터 중국 국경을 봉쇄하고 이후에는 자국민마저 입국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한 봉쇄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2021년 1월 현재 누적 확진자 1440명, 작년 12월 2일 이후 단 1건의 코로나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으며 전 세계로부터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공산당이라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습니다. 중국이랑 북한만 봐도 뭐...)
베트남의 자가격리앱 강제성이 낮은 건 ICT 인프라 문제보다는 베트남 정부의 외국인 봉쇄 정책이 워낙 강력하고 입국도 비즈니스에 한하여 굉장히 까다롭게 받고 있는 데다가 지정된 시설에서 자가격리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입국 자체가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자국민도 입국 금지함...) 앱이 없이도 자가격리자 관리에 큰 어려움이 없어 앱에서는 형식적인 관리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다른 국가들이 자가격리자용 별도 앱을 출시한 것에 반해 베트남은 기존의 자국민 건강관리앱인 Vietnam Health Declaration에 자가격리자용 건강보고서 기능을 추가하여 자가격리자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베트남어, 영국어(???)를 제공합니다. 영어를 굳이 미국이 아니라 영국으로 표기한 이유는 미국이 베트남 입장에서 적성국이기 때문이 아닐까... (미제 국기는 앱에서도 쓰지 않겠다는 공산당의 패기)
휴대폰과 OTP 등록 후 자가격리자 등록 화면입니다. 보시는 1번 화면부터 4번 화면까지 전부 한스크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력항목이 꽤 많은데 툴팁도 부족하고 항목마다 나눠서 STEP으로 쪼갰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전체적으로 아날로그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화면입니다. 기존 앱을 재활용했고 앱을 이용한 관리보다는 오프라인 관리를 통해 코로나 입국자를 관리하고 있어 딱히 크게 평할 것이 없습니다.
지원언어 : 영어, 태국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한국어, 미얀마어
강제성 여부 : 보통
기능 : 건강보고서 체크
자가격리기간 : 지정시설(호텔)에서 14일
출시일 : 2020년 9월
같은 동남아 국가라도 베트남과 태국의 사정은 약간 다릅니다.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9%인 베트남에 비해 관광업 비중이 20%에 달하는 태국은 코로나로 경제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가 잠잠해진 20년 11월 입국 금지를 해제하면서 제한적으로나마 관광목적의 입국을 허용하였습니다.
태국은 12대 미래산업 중 하나로 헬스케어 산업,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하여 방콕을 아시아의 헬스케어 중심도시로 성장시키려는 미래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COSTE는 이러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전략 속에 탄생한 앱으로 국민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이 건강관리앱에 코로나 자가격리 건강보고서 기능을 추가하여 자가격리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존 앱을 재활용하는 형태이고 태국에서 헬스케어로 유명한 스타트업이 만든 앱이다보니 디자인이나 UI적인 부분에서 다른 앱들에 비해 돋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반대로 자가격리자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자가격리를 위해서는 필수로 앱에 가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입력해야 하는 불필요한 정보가 많거든요.
프로필 설정도 굉장히 디테일합니다. 개인 연락처뿐만 아니라 입국 비행기편 정보와 평소 지병이 있는지까지 다른 앱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자세한 정보를 입력해야 합니다.
건강검진 정보는 09시, 18시 하루 두 번 입력해야 하는데 UI는 깔끔한 편입니다. 인터렉션이나 디자인도 다른 앱들에 비해서 잘 갖춰진 편이고요.
COSTE 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는 과유불급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UI와 디자인이 깔끔한 것은 좋으나 필요 이상으로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정보가 많거든요. 방역을 위해 꼭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음모론까지 갈 생각은 없지만 왜 국가가 나서서 사기업의 장사를 시켜주고 있는지 좀 의문입니다.
강제성 여부 : 강제
기능 : 자가격리자의 휴대폰 신호를 추적하여 경로 이탈 혹은 전원이 꺼질 경우 담당자에게 알림
자가격리기간 : 자가격리 14일
출시일 : 2020년 2월
대만은 중국과 최인접국이지만 즉각적인 봉쇄와 방역, 국가 마스크 수매 등 사후조치까지 완벽한 코로나 모범 방역국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코로나가 심각해짐에 따라 서둘러 자가격리자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했고 여러가지 방법을 논의한 끝에 (홍콩의 손목밴드도 그중 하나) 별도의 앱 설치 없이 휴대폰의 디지털 신호를 이용해 자가격리자의 동선을 모니터링하는 일명 전자펜스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대만의 자가격리 모니터링 시스템인 전자펜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앱을 깔지 않아도, 홍콩처럼 손목에 밴드를 차지 않아도 나의 휴대폰 번호가 시스템에 등록된 것 만으로 정부는 각 통신사의 기지국과 연결해 실시간으로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반대로 악용될 소지도 다분한 시스템이죠.
다행히 대만 국민들은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신속한 대응에 지지와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유사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주변 국가들에 비해 대만의 정치는 민주적이고 안정되어 있으며 국민들의 지지 역시 높습니다.
대만의 전자펜스가 과연 국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론인지 또다른 빅브라더 탄생의 시작이 될지 앞으로 유심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언어 : 영어, 웨일즈어, 아랍어, 벵골어, 중국어, 구자라트어, 폴란드어, 펀자브어, 루마니아어, 소말리아어, 터키어
강제성 여부 : 보통
기능 : 건강보고서 체크 / 확진자 알람 등
자가격리기간 : 자가격리 14일
출시일 : 2020년 9월
제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외신 보도를 통해 많은 분들이 접하셨을 테지만 영국의 코로나 상황은 몹시 심각합니다. 누적 확진자가 320만명, 일일 확진자가 4~5만명에 달하며 영국발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tier4의 강력한 락다운이 연일 이어질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미 코로나가 전방위로 퍼져있어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가 큰 의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해외 입국자도 집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겁니다.
NHS COVID-19는 영국의 보건사회복지부가 제작한 코로나 자가격리 및 확진자 추적앱입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사용 가능하며 (그럼 스코틀랜드는???) 자가격리 기능 이외에도 코로나와 관련된 다양한 편의기능을 제공합니다.
우편번호를 기준으로 집 주변에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 수준 안내
사용자 근처에 양성 환자가 있을 경우 알림
QR 코드를 생성하여 식당에 체크인
코로나 자가 테스트
자가격리 카운트 다운 및 건강보고
디자인은 굉장히 깔끔하고 심플합니다. 픽토그램도 적절히 잘 썼고 컬러로 기능 구분을 시켰습니다. 앱에서 미국냄새가 납니다. 깔끔한 미국식 앱 디자인의 정석 같은 느낌. 자가격리도 강제긴 하지만 구속력도 떨어지고 락다운도 연일 지속되다 보니 자가격리가 큰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집이 제일 안전하다) 그래서 기능 자체도 좀 드라이하게 자가격리 날자를 안내하는 형태로 제공한 듯합니다.
지원언어 : 한국어, 중국어, 영어, 베트남어, 태국어, 러시앙, 일본어, 프랑스어
강제성 여부 : 강제
기능 : 건강보고서 체크 / 위치추적
자가격리기간 : 자가격리 14일
출시일 : 2020년 3월
미리 말하자면 저는 이 앱을 처음 본 순간부터 굉장히 불만이 많았습니다. 디자인, UI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죠.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휑한거지? / 미니멀리즘 같은건가? / 버튼이 큰건 어르신들을 위해 의도적인거겠지? / 컬러 구분이 없는건 귀찮아서가 아니라 의도적인거겠지?
보면 볼수록 구리면서도 묘한 아방가르드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 헷갈렸던걸지도. 딱봐도 아무 생각 없이 급조해서 만든 것 같은데 보면 왠지 숨은 의도가 있을 것 같기도 한 묘한 디자인입니다.
앱의 설치 화면입니다. 여기부터 뭔가 핵구린 느낌을 직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언어 선택에서 해당 나라 국기 정도는 넣어주고 글자 크기도 가이드 맞춰서 조절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취소랑 확인 버튼같이 기능이 다른 건 컬러를 좀 다른 컬러로 넣읍시다. 아무리 급조라도 최소한 기본은 지킵시다. 제발.
그리고 이 앱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 나의 자가격리가 며칠 남았는지 앱에서 알려주지 않습니다. 뭐 어차피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죄수 같은 입장이라 자가격리날자를 잊어버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르신 같은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쓸모없는 정보/등록 수정 이런 버튼은 빼버리고 나의 남은 자가 격리 날짜를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전산시스템이 없어서 못 알려주는 건가???)
자가 격리 해제일 카운트가 기능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게 자가격리일 해제일에도 알림이 끊임없이 울립니다. 건강검진을 받아라 / 너는 지금 격리지를 이탈하였다.
아니 나는 자가격리가 해제되었다고!
자가진단하기 페이지도 엉망인데 특히 체온 입력하는 부분이 제일 후집니다. 이동 동선도 이상하고 체온은 왜 저렇게 두 개로 쪼개 놓은 건지 당최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아니오 매일 찍는 것도 은근 귀찮습니다. 아니오를 디폴트로 해놓고 스크롤을 내렸을 때 마침 버튼이 활성화되는 형식으로 사용자 편의를 고려해서 좀 바꾸면 안될까요? 어차피 자가격리자 대부분은 증상이 없는데 뭐하러 일일이 누르게 해 놨는지 의문입니다. 사용자 편의성이 영 꽝입니다.
싱가포르 앱이랑 비교해보면 한국 앱이 얼마나 후진지 알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앱은 남은 격리일도 표시해주고 자가 진단 페이지는 디폴트로 NO로 설정되어 있죠. 역시 싱가포르는 선진국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앱 하나만 봐도 때깔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화가 났던 부분. 기능 같은 거야 뭐 불편하지만 어떻게든 쓸 수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생활수칙안내 페이지는 진짜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났습니다. 텍스트로 타이핑할 성의도 없이 통이미지만 딱 붙여놔서. 저걸 붙여 넣는 순간 고령자를 배려해서 버튼도 텍스트도 큼지막하게 만들었어요라는 말이 거짓말이 되는 거니까요. 진짜 고령자를 배려해서 만들었으면 생활수칙에 글자도 안보이는 통이미지를 붙여 넣진 않았겠지. 30대인 저도 저 글자가 안 보이는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요. 성의도 없고 배려심도 없습니다. 수만~수십만명이 쓰는 앱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글자가 깨알 같아서 보이지도 않는 생활 수칙을 통이미지로 넣는 무심함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작년 5월이었던가 정부에서 자가격리앱을 페루에 수출한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언론보도를 뿌린 적이 있었습니다. 페루에서 이 앱을 쓰는 자가격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오우 케이퐙의 나라, 다이나믹 꼬레아에서 만든 앱 구려요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걸 수출할 생각을 하다니 국격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시스템만 수출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인간적으로 껍데기는 바꿨겠죠?
여기 전세계 코로나 자가격리앱 조사자료가 있으니 정부 관계자들은 똑똑히 보시길. 당신들이 만든 앱이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 앱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ICT 강국, UN이 조사한 세계 전자정부 1위, 코로나 모범 방역국 같은 소리 떠들지 마세요.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서점직원이 선정한 최고의 자가격리앱은 싱가포르의 Homer입니다.
디자인, 기능, UI/UX 종합적인 부분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며 싱가포르가 왜 선진국이고 ICT 강국인지 앱을 통해 몸소 증명하였습니다. 정부는 싱가포르 보고 좀 배우길...
자가격리 해제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생계를 위한 활동 빼고 원래 집 밖에 잘 안 나가기도 하고 태생이 집돌이인지라 자가격리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서 좀 서운한 마음도 있었죠. 그래도 자가격리 중 중간중간 아쉬운 부분이나 불만사항이 좀 있었습니다. 후기에서는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경기도 OO시에 사는 어머니가 최초로 양성판정을 받았고 본가에 밥 먹으러 간 적이 있어서 어머니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자가 되었습니다. 이걸 타임라인으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1월 2일 OO시에 사는 어머니집 방문
- 1월 3일 어머니 코로나 양성판정
- 1월 4일 아침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
- 1월 4일 저녁 코로나 음성 판정
- 1월 5일 셀프 자가격리
제가 코로나 관련하여 최초로 전화를 받은 건 1월 5일 점심쯤이었습니다. 연락은 총 3번 받았습니다.
- 1차 : 경기도 OO시 보건소 (어머니 거주지)
- 2차 : 서울시 OO구 보건소 (서점군의 거주지)
- 3차 : 서울시 OO구 OO동 동사무소 (서점군의 거주지)
3곳 모두 저의 신원을 확인한 후 물은 첫마디는 코로나 검사 받으셨어요 였습니다. 두번째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세번째부터는 좀 의문이 들더군요. 나는 코로나 검사를 받을때 휴대폰 번호를 기재했고 3곳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내 휴대폰 번호도 집주소도 심지어 생년월일도 아는 사람이 나의 코로나 검사 유무를 모른다는 사실이 좀 이해가 안갔습니다. 개인정보활용 동의가 필요하면 코로나 검사받을 때 같이 받으면 될 텐데 말이죠. 저는 코로나 관련해서 거대한 빅데이터나 중앙통제 시스템이 있는 줄 알았는데 검사 유무 하나 제대로 모르는 걸 보니 그런 시스템은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국이 1년이 다되어가는데 아직도 그만한 모니터링 시스템 하나 없는 건지? 국민의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올바른 정부라고 칭찬해줘야 되는 건지? 빅브라더 하라고 해도 못하는 무능력함을 탓해야 할지...
본가에 어머니랑 같이 사는 동생은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역시 저처럼 14일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자가 격리가 해제될 무렵 동생과 저는 쌓여가는 쓰레기의 처리방법을 고심하고 있었죠. 일단 각자 보건소에 문의해보기로 합니다.
쓰레기 처리 안내
- 서울시 OO구 : 동봉한 봉투에 음식물 재활용, 일반 쓰레기 모두 담아서 자가격리 해제일 날 배출
- 경기도 OO시 : 자가격리에 음성이니까 쓰레기는 잘 모았다가 소독하고 격리 해제되면 알아서 버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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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 따라서 쓰레기 배출 정책이 달랐습니다... 음? 다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자가격리 해제일 아침. 햇반과 육개장이 들어있는 자가격리 키트를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마지막 날까지 키트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뭐 쓱배송으로 열심히 배달시켜먹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오히려 먹을게 너무 쌓여서 문제) 제 담당공무원은 자가격리 해제일까지 2주 동안 첫날 하루 빼고 전화 한 통 없고 키트도 안 보내주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확 신문고 넣어버릴까보다.
코로나 생계지원금 받아서 팔자 고칠 생각은 없지만 2주 자가격리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가 꽤 큽니다. 매달 몇 백씩 손해 보시는 자영업자분들이 계셔서 입 꼭 다물고 있는 것뿐이죠. 동사무소에서 자가 격리 지원금 준다고 했을 때 최저시급 일당 정도는 주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1인 가구라 45만원 준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2주 동안 날린 임금의 반의 반도 안됩니다. 뉴스에서 모 도지사가 설날 기념으로 10만원씩 재난 지원금 준다고 하는데 솔직히 속내가 뻔히 보입니다. 표팔이 현금 살포하지 말고 그 돈으로 자가격리하는 사람들 일당이나 더 챙겨주세요. 하루에 꼴랑 3만 5천원주니까 자가격리하는 베트남 친구들이 탈주해서 일하러 가는 겁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집돌이라 자가 격리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잠시 정신이 나간 적도 있긴 했음) 밖은 역대급 한파가 몰아치고 제설이 안돼 도로는 꽉 막힌 상황에서 출근을 안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식료품은 쓱으로 해결했는데 12시전에 주문하면 저녁 5시에 갖다 주니까 크게 어려운 건 없더군요. 운동을 못한다는 거 빼고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다 좋았는데 딱하나 레토르트 식품을 엄청 사 먹다 보니 쓰레기가 한도 끝도 없이 쌓여가는데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가격리기간 2주 동안 한 번도 탈주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밤에 몰래 쓰레기만 버리고 오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라는 나쁜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왠지 죄짓는 것 같아서 실행이 옮기진 않았는데 쓰레기 처리 문제가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이건 불만이 아니라 건의인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쓰레기 수거하러 와주면 안될까요? 어차피 매일매일 자가격리자 해제자 쓰레기 수거하러 다니니까 그때 같이 방문해서 수거해주면 안될까요? 쓰레기가 너무 쌓여서 이제 둘 때가 없습니다 ㅠㅠ
건강체크는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할 수 있는데 안 하면 오전 10시 오후 8시에 알림이 울립니다. 만약 알림 왔을 때 건강체크를 안 하면 1시간 후 다시 알림이 옵니다. 일주일째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알림을 받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 이거 패턴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 시간만 맞추면 내가 탈주해도 아무도 모르겠는걸?
2주 동안 저의 담당 공무원에겐 첫날 빼고 전화를 한통도 하지 않았았습니다. 기저질환이 없는 건강한 30대 남자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건강체크도 하니까 담당공무원 입장에서는 크게 신청 안 써도 되는 놈이라 그랬겠죠 뭐...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도 안 오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어... 엄마도...) 위치추적은 폰으로 하니까 폰만 두고 나가면 내가 탈주를 했는지 안했는지 바깥세상에서는 절대 알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시스템의 허점은 바로 이겁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건강체크 알림이 온다는 거.
반대로 오전 9시~12시 사이에 랜덤으로 한번, 오후 2시에서 6시 사이에 랜덤으로 한번 하루에 두 번 랜덤으로 알림이 오고 30분 내로 건강체크 안 하면 공무원이 너의 집에 방문할꺼다라고 하면 (폴란드식) 밤늦게나 새벽시간이 아니면 탈주하고 싶은 욕망이 안들 것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시스템이 너무 허술합니다. 저는 민도나 국민성 같은 거 안 믿습니다. 시스템이 딴생각을 할 수 없게 짜여 있으면 딴생각을 못하는 거고 빈틈이 있으면 그 빈틈을 파고들려는 욕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을 탓하지 말고 사람을 탓할 수 없게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
이상 자가 격리 해제일 새벽. 이반 서점소비치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