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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틀 Dec 03. 2024

1장 혼잣말도 안 되나요? 속엣말도 들리나요?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두려운 것이든 숭배하는 것이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적절한 형태를 곧장 갖추기 시작한다.” -앤드류 카네기     


‘끌어당김의 법칙’은 나의 인생 전반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강한 믿음과 상상은 빠른 현실이 되곤 했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상상이 현실로 되는 속도는 차츰 느려졌다. 때론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괴로워하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은 강력한 상상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떨쳐내지도 못했기에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은 공평하게 작동했고 불행한 상상마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올해 1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엔 그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애썼다. 가령 인스턴트 음식물 섭취,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행동, 낮과 밤이 바뀐 패턴, 결과 중심적인 예민함 같은 것이 문제라 여겼다. 그러나 비교적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도 암에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술, 담배를 가까이 두면서 천수를 누리는 자도 많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되짚어보았다. 나를 암으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축복이고 감사가 아닌,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너 때문에 지금 암세포 하나가 생겨났어.” 

사실이었다. 반복하는 설명에 지칠 때마다 가슴팍을 탁탁 쳤고 답답함이 한계에 달하면 상상이 됐다. 자줏빛을 띤 암세포 하나가 분열하여 몽글몽글 퍼져나가는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르곤 했는데, 그 상상을 입 밖으로 내뱉음으로써 나를 구성하는 ‘에너지’에 지시를 내렸다. 

결국 ‘나’는 올해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내가 내뱉고 상상한 대로 살아지고(살아가고가 아닌) 있었음을 깨닫는다.     

 

20대 초반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잔뜩 낮추고 살았다. 지금의 흔한 표현으론 흙수저였으며 타고난 사주팔자 상으론 자갈밭의 똥차였다. 타고난 사주도, 후천적인 환경도 모두 최악이었다는 의미다.

나를 구성하는 ‘에너지’에 지시했다. 가장 ‘불행한 여자’가 돼라. 

“아유, 말도 마. 너는 양반이야, 내 상황에 비하면.”이라며 내가 얼마나 복이 없는, 재수 없는 사람인지 자랑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무서운 속도로 착실하게 이행하며 나를 그런 존재로 만들고 또 벼랑 끝까지 밀어냈다.      

첫 아이는 임신 5주 차에 유산 판정을 받았다. 심장 소리를 듣는 날이라며 잔뜩 들떠 있었는데 초음파 수치론 전혀 자라지 않았다고 했다. 결혼 후 신접을 시작한 곳은 일본이었고 무서운 속도로 엔화 가격이 오르고 있었는데 남편은 신혼 한 달 차에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벌어들이는 엔화는 없었고 한화를 엔화로 환전해야 했기에 살림은 갈수록 쪼들렸다. 한날은 식비를 아끼겠다며 튀김 요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러나 그럴듯한 중화요리는 완성하지 못한 채 안면 화상만 입었다. 상처가 남을 것에 대한 걱정보단 병원비가 부담됐다.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처벌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느라 살림을 정리하던 어느 날, 남편이 결혼 전 선물 받았다는 책, ‘시크릿’을 발견했다. 당연히 버릴 품목에 속해있던 책이다. 가전마저 중고시장에 팔아넘긴 상태라 다다미방에 깔린 이불 한 채가 살림의 전부였을 거다. 여름이었는데 냉장고도 이미 팔려나간 집은 텅 비었고 적막했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가 오늘의 소박한 바람이라고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게 기억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장을 넘겼다. 그 책장을 처음 넘겼던 순간, 일차적인 깨달음이 왔다. 내가 끌어당기고 있던 에너지는 어둠이 짙고 혐오스러운 냄새가 났으며 질감은 끈적거렸음을.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신을 찾았다. 종교는 없었으나 ‘신’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 신은 원망과 동의어로 썼다.     

빌어먹을 신이시여,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애초에 신은 내게 관심이 있지도, 한가할 틈도 없었을 텐데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한 모양이다. 하필이면 신이 나를 콕 집어 괴롭힌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내게 이런 시련이 달려들 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끝없이 상상했고 지시했다. 불행해져라.      

책을 다 읽고 난 후, 남편과 마주 앉았다. 

그 무렵 남편에게 “너를 만나서 되는 일이 한 개도 없다.”라며 독설을 퍼붓곤 했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을 불행한 주파수에 맞춘 이는 다름 아닌 나였다. 우리가 겪은 일체의 불행은 하필 ‘당신’과 결혼을 해서, ‘당신’ 때문에 수렁에 빠져든 게 아니라는 것도 시인했다. 더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이지만 그 바닥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으니 오히려 다행 아니겠는가. 앞으로 닥칠 시련은 결국 돌아보면 잘 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지워보자고 말했다. 


습관처럼 중얼거려보자.      

신은 우리를 예뻐해길게 보면 다 좋은 일이야.”     

그 후 실험을 시작했다. 

우리가 마인드를 바꾸는 것만으로 상황은 바뀔 수 있는가.      


귀국 후 첫 번째 실험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에서 신청한 퇴직금 수령은 평균 석 달 정도가 걸리는데 그 금액을 받아서 돈을 써야 할 상황이었다. 기다리던 메일이 도착했고 내용은 이러했다. 자료 한 개가 누락 되어 심사에서 제외되었으니 다시 필요한 서류를 첨부해서 신청하라는 메일이었다. 지금이 실험해볼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지금 이 순간은 불행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 근데 길게 보면 우리에게 잘된 일인지도 몰라. 신이 우리를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가 그 의도를 당장 알아채지 못하는 걸지도 몰라. 그러니 강력하게 믿고 기다리자.”

예상했던 날에 들어오지 못한 돈은 약 한두 달 정도 후에 입금됐다. 그땐 엔화 가격이 사상 최대치였고 애초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을 훨씬 웃돌았다. 고작 한두 달의 믿음과 기다림은 엔화 상승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엔화가 오를 거라고 콕 집어 상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불행이라는 주파수 대신 기대감이라는 주파수를 끌어왔을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결혼 후 첫 행운이었다.     

 

*기적의 모양을 한 에너지 흐름을 아는 사람은 공중에 흩어지는 혼잣말일지라도 내재한 힘이 있음을 안다. 그 힘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꺼내놓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속엣말이어도 마찬가지다. 생각도 파동이 있다. 파동은 에너지이며 반드시 흐르며 이동한다. 우주는 바로 우리가 신호로 보낸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반드시 진심이어야 하며 진심은 깨끗하고 긍정적인 것들로 채우는 게 좋다. 그것이 마인드 셋을 위한 첫걸음이다.      


나는 오늘부터 혼잣말과 속엣말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것에 책임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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