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퇴계로27길 40 예일빌딩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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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이 아닌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수정'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빨리 써 내려가고 금세 수정하는 것이,
고쳐쓰기에 큰 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되는 대로 꺼내놓고 이게 아닌데 지워도 된다는 것이,
그것도 흔적 없이 말끔하게.
오예, 마음에 들었었다.
"노트북 없이는 한 줄도 못쓰겠어.
고칠 걸 생각하면 단 번에 완성된 문장을 써내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서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어."
누군가 내게 무겁게 노트북을 드는 대신 종이에 써보면 어때? 했을 때 입을 삐죽거리며 했던 변명들.
프랑스 초등학생들은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지우개뿐만 아니라 화이트까지 몇 개씩 쟁여놓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던데 말이지.
수정, 고쳐쓰기, 혹은 삭제는 '실패'가 아닌 '과정'일뿐이라는 프랑스 교육관에
"아, 그래 맞아." 수긍하면서도 "나는 좀 더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는 편이 좋아." 한다.
완전한 문장이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 더 완벽에 가까운 문장을 (시행착오 없이) 남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펜을 드는 것을 저어하는데, 같은 이유로 완전한 문장은 나올 기미가 없기에 때때로 절필의 유혹에 시달린다.
라이팅룸을 검색하고 두 시간을 예약한 뒤 들뜬 마음에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겼다.
당연히 노트북과 휴대폰 충전기와 무선 이어폰이 빠졌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집중도를 풀로 높여서 노트북으로 밀린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는 주의사항에 적힌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등의 전자기계를 사용하지 못한다.'를 접하고 심히 당황. 대략 난감.
충무로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비가 "와아" 하며 쏟아진다. 다시금 대략 난감.
분명 집을 나올 때만 해도 "소곤소곤"하며 내리더니, 아주 못 봐줄 변덕이다.
짙게 빗물이 스민 청바지 밑동을 모른 척하며 네이버 길 찾기 앱의 도움을 받아 횡단보도 앞에 선다.
건너편에 위엄 있는 자태의 스타벅스 간판이 보인다.
아, 예약을 안 했더라면 저곳에서 오천 원의 커피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전기를 끌어다 쓰며 노트북과 핸드폰으로 어지럽고 화려한 시간을 보낼 텐데 말이지.
후회 아닌 후회, 푸념 아닌 푸념을 혀 끝에 방울방울 달고서, 그러나 간다. 가보기로 한다.
때론 편의성과 동떨어진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렇기에 정리하고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4층 건물의 맨꼭대기. 구식 건물에 발걸음을 싣는다. 한 층, 한 층 높이를 키울 때마다 풍겨오는 향이 어디서부터 실려온 건지 알 수 없지만 만족스럽다, 그대로. 그렇게 부드러운 향을 따라 걷다 보면 3cm쯤 열어둔 철문과 마주한다. 절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죽이고 호흡도 가만가만 내뱉는다.
분명 나 혼자였는데도 속삭인다.
안녕 하세요오...... 끝을 흐린다, 최대한.
부끄러움의 표현보단 공간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흐려본다.
모든 행동이 가만가만 움직인다. 저절로 그리 되는 공간이다.
착석하기 전부터 노트북이 없어도 충분할 거라는 걸 안다.
어릴 적부터 꿈에 그리던 공간이다.
그 공간을 함께 꿈꾸던 누군가는 그것을 실재하게 만들었고 난 덕분에 공유한다.
감사한 순간이다.
돈이 되는 공간이 아닐 거라는 것쯤은 안다.
한 시간에 팔천 원의 공간 대여료에 달콤한 홍차와 쿠키 한 조각은 덤.
종이며 펜은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고 물론 마음에 든다면 구매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돈이 되는 사업은 아니다.
그리하여 이제 와서 면목없지만 정정하겠다.
한 시간에 팔천 원은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푸념했던 몇 시간 전의 나에게 혼찌검을 낸다.
이 공간은 그런 셈을 하며 지은 공간이 아니다.
낭만이란 게 비집고 들어설 서툰 틈 정도, 그 작은 틈을 메꾸지 말아 보자고 말한다.
박정민 배우가 출판사업에 대한 매력으로
이 사업은 시기 질투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일등도 꼴등도 없는 시장이라고 했던가.
그저 다 같이 잘 되면 좋고 좋은 책이 나오면 얼쑤 한다 했던가.
내 마음이 그렇다.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공간이다.
재방문 의사 100%
다음엔 필사 노트 한 권 챙기고 시간은 세 시간 정도로 넉넉하게.
밥은 먹고 오되 식곤증 물리쳐줄 풀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