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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승 Jan 06. 2017

만 18세 선거권 부여 논의에 대해

 선거철이 성큼 다가왔나 보다. 선거권 연령 조정 문제로 벌써부터 여야 간의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현재 만 19세부터 부여하는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하향 찬성 측의 논리는 이렇다. 만 18세는 혼인, 군입대, 운전면허 심지어 9급 공무원 시험 응시까지 할 수 있는 성인인데 선거 참여만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측은 정치인들이 몇 표 더 얻자고 수능으로도 정신없는 고3들을 볼모 삼아 아예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 작정이냐고 걱정한다. 이 두 주장의 핵심적인 차이는 만 18세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공동체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할 정도의 성숙함을 갖췄냐는 문제다.



  만 18세의 교육 수준, 인터넷 문화를 기반으로 한 폭넓은 정보력과 의견 공유를 생각하면 OECD 평균 수준의 선거권 부여는 전혀 무리가 없다.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한 축의 구성원들이 그 미래의 큰 방향을 결정할 선거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 역시 마땅하다. 이는 정당들의 당리당략과 이해관계가 아닌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이뤄야 할 문제다. 참여민주주의 시대정신이 무르익었다는 상징의 하나로 선거권 확대는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시민 사회와 정치권의 활발한 논의와 여론 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옳다. 정해진 답은 없다. 만약 공동체 다수가 투표권 확대의 시기상조를 말한다면 그 역시 옳다. 선거권 확장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며, 그 울타리를 넓히는 것은 전적으로 구성원의 공감대를 토대로 한 합의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풀어야 할 문제는 아직 산더미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특히 그렇다.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고, 교원 역시 이에 포함된다. 정치를 정치라고 부를 수 없는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당연히 민주주의의 학습과 논의는 치열하게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들의 정치적 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돌려줄 수 있는 논의가 선거권 연령 하향 문제와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기 주관이 없고, 교사는 학생에게 편향된 특정 사상을 주입해 꼭두각시를 만든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역사를 돌아보자. 민주주의가 쓰러질 때 제일 먼저 분개하며 교실 문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누구인가? 옳고 그름을 따르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자 사명이었던 까마득한 시절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괴물이 아니다.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다. 말하자면 '알 거 다 알 나이'다.



 진보를 말하고 보수를 말한다고 해서  뿔 달린 악마는 아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의견만 다를 뿐이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 차이로 인해 차별을 둬서는 안 된다. 끊임없는 의견 교환과 수정을 통해 단단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치과잉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에 대한 관심 부족, 막연한 적대감과 혐오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를 지연시키고 있다. 학교에서부터 정확한 근거에 기반한 자기주장의 표출,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과 합의점 도출 같은 토론의 기본 덕목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 학교에 정치와 사회를 말할 수 있는 입과 들을 수 있는 귀를 돌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국민이 공동체와 개인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모아져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민주주의가 지향하이상향이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더 일찍 알려주고, 손에 표 한 장 꼭 쥐어주며 '아,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미 우리는 12월 광장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그들은 그런 권리를 맡을만한 자격이 있다. 세상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한다.



 민주주의 역시 완전무결한 제도이자 이념은 아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 선을 어디까지 그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구성원의 공감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집단지성으로 대표되는 시민의 역량을 긍정한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참 많은 것들을 바꾸고 이루어냈으며, 또 해낼 준비가 돼 있다. 국민의 역량과 시대정신에 발맞춘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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