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리가 소멸된 창작물에 대하여
고등학생 시절, 교지 편집을 할 때였다. 교지에 실을 학생 시를 공모했었는데, 그중 한 편의 내용을 살짝 바꾼 적이 있었다. 조사와 어미 몇 개를 바꾸고, 부사나 관형사를 두어 개 교체했던 것 같다. 주제를 바꾼 것도 아니고,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액세서리 하나로 살짝 느낌만 바꾼 정도였다.
그 시의 표현들이 촌스럽다고 느껴, 조금씩 바꾼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같이 편집을 담당했던 다른 친구들도, 담당 선생님도 그 시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에 나는 전혀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다. 교지가 발행되고 그 친구가 나를 찾아올 때까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네가 죽였다며 울 때에야 내가 정말 몹쓸 짓을 했다고 감정적으로 공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글에 대한 내 생각이 깊어지고 나서야 그 친구에게 뺨을 맞았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상대에게 엄청나게 모욕적인 행위를 했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철이 없었다는 말 따위로 변명이 되지 않는, 진짜 부끄러운 일이었다.
얼마 전에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붙은 인문서를 읽은 적이 있다. 분명 저자에 ‘쇼펜하우어’가 붙었는데 서문을 읽으니 쇼펜하우어의 여러 저서 중 문장들을 발췌하여 소제목으로 삼고, 그에 대한 엮은이의 생각이 덧붙은 글이었다. 문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론을 담은 내용이 어디이고, 엮은이의 현대적 재해석이 붙은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인용해서 엮은이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쌓였다.
읽기 힘든 고전이나 유명 인문 과학 서적에 대한 워밍업으로 나는 종종 청소년 도서를 활용하기도 한다. <총,균,쇠>나, <향모를 땋으며>처럼 베스트셀러가 된 인문서들, 세계 명작들 중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들로 배경지식을 만들어 놓으면 완역본을 읽을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읽을 때에도 원작자의 생각인지, 요약자의 생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고, 소설의 경우 이야기가 엉뚱하게 요약되어 있는 경우도 자주 본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경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의 실험을 위해 재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묘를 파헤치거나 시신을 훼손하는 부분이 자신의 살을 잘라 넣는 것으로 대치된 청소년 도서가 있다. 그렇게 바꾸면 ‘괴물’이 자신의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강화되겠지만, 원작에 그려진 실험과정에서 행해지는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부분이 희석돼 소설이 가진 주제의식이 희미해진다.
원작자의 이름만 밝힌다고 해서 저작권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저작자의 창작의도, 주제의식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저자에 올렸다면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독자가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4년에 개정된 저작권법의 제13조 동일성유지권에 따르면 저작자는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갖”는다. “학교교육 목적을 위하여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표현의 변경”이나 “건축물의 증축, 개축 그 밖의 변경”, 컴퓨터의 사양 문제로 다른 컴퓨터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특정 프로그램을 “필요범위”에서 변경하는 경우,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변경”이외에는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 내용, 형식 변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쇼펜하우어나 메리 셸리는 이미 사망한 지 백여 년이 지난 사람들이다. 사후 최장 70년까지 유지되는 저작권이 소멸된 저자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저작물을 함부로 변형하거나 이름만 저자로 빌려다 쓰는 것이 창작자로서, 출판인으로서 떳떳한 일일지에 대해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이름이니 마음대로 가져다 저자로 붙이고, 마음대로 내용을 바꾸어 요약해 버리면 그 저자의 이름을 믿고 읽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어긋난 감상을 전달하는 결과가 된다. 경제적 이익은 남을지 모르나 출판, 편집인으로서 본인들이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창작물을 대하는 기본적인 양심과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고등학생 때 내가 저지른, 무척이나 모욕적인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저자의 이름을 밝혔다고, 그 제목을 밝혔다고 누군가의 저작권을 온전히 지켰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 좋겠다. 작가의 저작권은 소멸되었을지 모르나 그들이 저작물을 통해 남긴 정신은 영원하다. 그 정신을 존중하고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 그 마음이 저작권의 가장 기본적인 토양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