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달이 지났다.
2023년 봄, 서울 집에 혼자 계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응급실로 실려가시면서 아버지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처음의 충격이 너무 놀라워서 지금도 잊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더더욱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은 점점 적응이 되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통원 치료는 환자 본인도 가족도 너무 힘드니 퇴원 후 요양 병원으로 모실 것을 권합니다.”라는 무덤덤한 주치의의 말에
충격과 함께 언젠가 닥쳐올 일이 드디어 시작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퇴원 수속을 받는 아버지의 표정은 너무 좋았다.
소리 내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의 눈빛이었다.
”아버지, 집으로 가시는 거 아니고요, 치료가 더 필요해요, 지금 같은 통원치료보다는 요양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더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권하셨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힘든 말을 한 적이 있었을까?
앞으로도 이보다 더 힘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을까?
거동이 힘든 노인을 모시고 주 3회 병원을 다니는 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안도감이 무겁게 나를 눌렀다.
그러나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힘들게 힘들게 요양병원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의외로 아무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서 어떤 반응도 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너무 다행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해 지리라는 기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요양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요양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던 그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병원 사무장은 물론 담당 간호사와 요양보호사에게도 잘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고, 병문안을 갈 때마다 먹을 것이나 별도의
수고비를 드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 결과는 면회 시간에 융통성을 발휘하여 외출을 하고 밖에서 식사도 하고 카페도 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혜택으로
돌아왔다.
사회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작은 순리 외에는 다른 어떤 의미도 없다.
자장면이 드시고 싶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음식점을 찾았는데, 운이 없게도 그 식당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식당은 이 층에 있었다.
일어서지 못하는 노인을 등에 업는 일을 상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당사자가 나의 아버지라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이고, 나는 기꺼이 뒤로 돌아 무릎을 굽혀 주저앉고 바람 빠진
포대자루처럼 휠체어에 걸쳐있는 아버지를 두 손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오래된 계단의 난간을 잡고 천천히 숨을 몰아가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버님, 더 드시고 싶은 것 말씀하세요. 군만두 서비스로 가져다 드릴게요.” 주인으로 보이는 사장님의 반복되는 친절이 그냥
일상에서 나오는 친절 그 이상이었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분의 눈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그 주인 분이 달려 나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휠체어 내리는 것도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는 것도
도와주셨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다른 대부분의 일처럼, 아버지를 대하는 일이 언제나 완벽하지는 않았고 살갑게 대화한 기억도 없지만
그럼에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잘하고 있다는 무언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카페에 들러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쓴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당뇨가 있는 아버지는 달달한 프라페를 주문하셨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드시는 것에 민감하지 말자고, 평생을 내일을 위해 산 세대에게 지금 행복한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내일의 행복을 위해 간이 센 중국 음식과 달달한 음료를 포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담당 의사가 알기라도 하면 짜증 섞인 잔소리를 듣겠지만 그들도 미래가 없는 노인에게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해를 등지고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어디선가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당신이 키운 두 남자를 위해 그런 바람을 보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침대에 눕혀 드렸다.
“집에 돌아가고 싶구나…”
“단 하루를 살아도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단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아버지의 눈빛에는 지친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때가 가장 힘든 순간이다.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말한다.
'조금만 더요, 조금 더 치료받으시고 상태가 조금 더 좋아지면 그때는 꼭 모시고 갈게요.'
말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 스스로도
아버지 자신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할 일을 끝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주에 다시 올게요 ‘”라는 말과 함께..
돌아 선 등 뒤에서
“고맙구나, 아들아. 아주 많이 고맙고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
조심스럽고 따듯한 그 목소리가 나에게는 선언처럼 들렸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어떤 대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다시 돌아서서 아버지를 바라본다고 내가 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시 건강해지실 거예요.”라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이 아버지와 내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이었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
아버지의 의식이 없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고, 다시 의식이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는데 또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니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답을 찾고 극복할 수 없는 후회가 시작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병실을 돌아 나오는 날,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도 그 말을 돌려드려야 했었다.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할 때도 그리고 지금처럼 의식이 없을 때도, 당신의 수고에 감사드린다는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아버지. 평생의 수고에 너무 감사드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그 말을 했어야 했다.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들은 책상에 앉아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질서를 지키고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리고 소중한 무언가를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 그런 것의 배움이 필요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리 부자에게는 일부러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말로 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표현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절대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한 번 실패하고 두 번째 다시 시도하고, 무슨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는 것도 아닌데…
나의 자식에게는 눈만 마주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 자신을, 친구들과는 오랜 우정을 자랑삼아 말하며 감정이 고조에
다다르던 부끄러운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런 내가 아버지에게는, 세상에 단 한 분뿐인 아버지에게는, 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아버지에게는 그 한마디를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몇 번을 다짐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와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오래도록 붙잡고 앉아 있었다.
이제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남지 않은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미 목소리가 잠겨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정말 고생하셨고, 정말 감사하고, 정말 사랑합니다. “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사랑에 단 한 번도 감사의 말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
나의 눈에는 거침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서러움이 묻어 있었다.
나에게 용기가 필요했듯이, 얼마 전 나에게 사랑을 말한 아버지 또한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와 다짐이 필요했을까?
생각은 거기에 다다르게 되었고 후회의 감정은 이제 멈출 수 없게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흐느끼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고 우리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멈춘 듯했고 그럼으로써 막연한 의무나 도리가
아닌 진짜 아들이 된 것 같았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바라본 아버지의 두 눈가에도 가느다란 두 줄기의 눈물이 마른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난 삼 주간,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흔들어도 의식이 없던 아버지였다.
1부 – 산 위의 대화
내가 중학생이던 무더운 여름밤의 일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더위를 피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올리비아 뉴튼존과 존 덴버의 노래를 서툰 영어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나의 커다란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옥상을 이리저리 서성이던 친구 L이 갑자기 다급한 소리로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간 우리는 건너편 아파트의 어느 집 거실에서, 긴 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반라로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어렸고 그런 장면을 본 것이 태어나 처음이었던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혼미해졌고, 그런 한 편으로 무섭고 떨리고
숨소리가 너무 커서 숨길 수 없었고 그럼에도 우리의 철없는 호기심을 통제하기에는 너무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다섯 명의 사내아이들이 아파트 옥상 난간에 기대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누구라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만 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비난을 받을 일이지만, 그 당혹스러운 환희의 순간에도 저
분이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거실을 서성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평범하게 길을 걷는 만큼의 조심성이라도 있는 젊은 여자라면, 사실 젊은지 어떤지도 날씬한지 어떤지도 정확한 어떤 장면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자 몸의 디테일은 단 한 곳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여름날 밤에 실내 등을 환하게 밝히고 커튼도 닫지
않은 상태에서, 건너편 아파트까지 불과 30미터도 되지 않는 그런 환경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 말이다.
그것은 그냥 어린 사내아이들을 놀리기 위한 즉흥적 행동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정신없이 멍청한 짓을 하는 사이 누군가 경찰서에 전화를 했고 곧 우리는 경찰서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날, 어쩌면 나의 아버지도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라는 곳에 불려 오셨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부모님이 오셨고 우리는 부모님 앞에서 반성문을 쓰고 훈방 조치 되었다.
신고를 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심지어 우리의 눈을 어지럽게 한 그 당사자가 나타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를 나섰다.
그 안에서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떨고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그분이 무섭고 두려운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나 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뒷산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두운 숲으로 들어서며
나의 공포심은 영화나 공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는 나를 산속에 묻어버리려는 지도 모르겠다. “
그러나 도망을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도 아무 말 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조금은 가파른 바위를 오르면서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길게 뻗은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고 지나갔고 끈끈한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때쯤, 산 능선의 넓은 바위에 멈춰 섰다.
깜박이는 불 빛들이 작은 동네를 감싸고 있었고, 나의 두려움과 공포심과는 아무 관계없이 도시는 그대로 고요했다.
'앉아봐라.' 아버지가 말했다.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 오래전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당신이 내 나이였을 때 종손 집안 간의 합의에 의해 가까운 사촌 집안에 입양을 가게 되었고,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야 했던
슬프고 힘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하나 둘 꺼내 놓기 시작하셨다.
처음 들어 보는 아버지의 말에 나의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그 자리를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채워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네 아버지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 마지막 말이 묵직하게 내 가슴을 쳤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하고 내려와라. 나는 먼저 내려가마. “
그 밤, 나는 바위에 앉아 오래도록 울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어떤 부분은 조금씩 어떤 부분은 급작스럽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싫은 소리도 듣지 못했다.
2부 – 새벽의 게임방
오랜 세월이 흘러 나도 아버지가 되었고 나에게도 중학생 아들이 있는 날이 찾아왔다.
그 아이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다만 요즘 아이들 답게 게임에 빠져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가끔 불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강요하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균형을 찾길 바랐다.
그래서 게임을 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시간을 균형 있게 분배하라고, 친구도 만나고 밖에 나가 뛰어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리고 이 부분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 바람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책을 좀 보는 것도 좋다는 말만을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새벽, 왜 나에게 그런 일들이 여름밤이나 새벽에만 일어나는 것일까?
신이 이미 계획한 일들이었을까?
약간의 숙취가 남은 채 새벽에 잠이 깬 나는 거실에서 나는 나직한 소리를 듣고 시계를 바라보고 방문을 바라보고 그 소리에
집중했다.
탁, 탁, 타닥 탁탁…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누군가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고, 중학생 아들 말고는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도 확실했다.
천천히 방 문을 여는 순간 후다닥 소리를 내며 컴퓨터 모니터만 끄고 방으로 달려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에게는 숨겨온 작은 과오가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우리 서로에게는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아이와 나는 우리를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이가 좋은 부자였다.
단 둘이 일 년 넘게 해외 생활을 했고, 자전거를 타고 일박 이일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산에도 자주
따라왔었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내 아버지 와의 소원한 관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 했는지 나는 그 아이와 관계에 오래도록
집중했었다.
텅 비었지만 고요하지 않은 그 새벽의 거실을 바라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나의 아버지와 그 뒷산 바위 위에서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나에게도 짧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아들의 방 문을 걷어 차고 밀고 들어갈 것인가?
모른 척 못 본 척 내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 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인가?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험한 이야기가 없다.
자는 척 누워 있는 아들을 깨워 밖으로 나갔다.
그 아이도 그날의 나처럼 떨고 있겠지?
뒷산이 있지도 않은 도시 한 복판이어서는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내린 결론은 하던 일을 끝내게 하자는,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 스스로 길을 정하게 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집 근처에서 PC방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내가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아이를 앉혔다.
“하던 거는 마저 끝내야겠지.”'
'너도 언젠가는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를 걱정하게 될 날이 올 거야. 아마 그때가 되어야 알게 될 거다.
'‘늘 하던 말이지만 나는 네가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기를 바란단다. “
아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고 흐느끼기 시작했고 나는 돌아섰다.
한 발 한 발, 뒷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계단을 올라왔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난 후 그때의 나처럼 그 아이도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그 아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하는 것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고
미안하고 고맙게도 내가 이루지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3부 – 식탁 위의 유전자
몇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슬픔이 일상 곳곳에 스며서 나로부터 떠나지 않았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 스스로 예상은 했지만 예상은 또 빗나갔고 나는 어쩌면 진짜 길을 잃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누구도 나를 꾸짖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제부터 더 많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핸드폰 앨범을 뒤적이다가 오래된 계산서를 뒤적이다 그분의 사진과 고지서가 보이면
나는 어쩌면 어디선가 나 몰래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것은 아닐까 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랑은 끝나고 나서야 더 진해지기도 하나 보다.
피시 방에 두고 나왔던 나의 아들도 많이 성장했다.
대학을 가고 사랑에 실패도 하고 도피성 외유를 하기도 하며 그럼에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여름이 왔고 열대야가 계속되는 어느 저녁 더위를 피해 아들과 단둘이 흑맥주 한 잔을 마시러 나왔다.
우리가 들어간 동네의 작은 식당은, 차선이 없는 이면 도로에 접하고 있었고 밖에는 과장되게 찍은 음식 사진의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소란스럽지 않은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지어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몇 테이블 옆에서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던 젊은 남자들의 술에 취한 소리들 때문이었다.
결코 그들 때문이 아니고 그 소리들, 식당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는 그 소리들과 다른 모든 조용한 대화조차도 소음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소리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 더, 그런 소음을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고 태연하게 앉아 건너편 티브이 모니터만을 바라보는 식당 관계자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을 바로 그 순간 누군가 그들을 향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여기 이 작은 식당이 당신들만의 사적인 공간인가요!?!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라고요. 당신들의 그 큰 목소리 때문에 모두들 한 마디도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불편한 모습으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요?”
”행복해야 할 저녁 시간에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우리 모두를 농락하는 거냐고요?”
일순간 식당 안은 불이 꺼지고 커튼이 내려진 무대처럼 조용해졌고 객석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대상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들어왔고, 나 스스로 어떤 무모함이 나를 위험 속으로 몰았는지
돌아보는 내가 있었다.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갑자기 그런 당혹스러운 과도한 용기가 나왔는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벌어졌고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식당 안의 모든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나와 그들을 번갈아 보고 있었고, 누구보다 놀란 나 자신은 영혼이 털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나의 말이 끝나고 침묵을 지키던 관객은 다시 자리에 앉아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벼락처럼 짧았던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한 남자가 우리 테이블로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시끄러웠던 테이블의 일행가운데 한 명이었다.
나는 숨을 죽였고 차라리 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긴장감으로 온몸이 굳었고 다시 정신을 차려 대응에
집중하려고 했다.
순발력이 필요하다.
무기가 될 만한 물건을 들고 선방을 날릴 것인가? 도망을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사과를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빠른 선택에 갈등하는 사이 먼저 행동에 옮긴 것은 아들이었다.
그 아이가 총알처럼 먼저 일어섰고 걸어오는 상대를 향해 걸어 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손을 쓸 시간도 다른 어떤 말을 할 시간도 없었고 오직 식당 안에 흐르는 침묵과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고요한 밀실에서 시계침 소리만이 들려오는 것 같았고 오우삼 영화의 비현실적으로 부드럽게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갯짓을 보는 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가는 아들의 침착하고 당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며 아들은 두 손을 들고 어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즉흥적으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마냥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던 아들의 침착한 모습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도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아닙니다.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며 모든 분들에게 폐를 끼쳐 너무 죄송합니다. “
라는 말과 함께 나를 향해 그리고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아들은 나보다 더 단단하게 성장했구나.
편한 세상이 되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아들이었는데…
그리고 그들은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가 눈에 들어왔다.
에필로그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전 가족 외식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큰 소리를 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고, 식당 안 어떤 무리들이 오늘처럼 떠들고 있었고, 오늘의 나처럼 나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어떤 유전인자가 나에게 전이되었기 때문에 25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을까?
마치 짜고 치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이후의 결과는 많이 다르게 나타났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침묵을 지켰고, 나의 아들은,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나를 지켜냈다.
세대는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며 진화해 간다.
나는 이제 안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사랑이 세대를 거쳐
말로 전해지지 않아도 , 결국은 행동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드러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