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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21. 2024

경험의 가치가 마이너스(-)라면 가지마세요.

블랙스완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니콜라스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의 ‘블랙스완’에 등장한 얘기지요.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은 매일 먹이를 가져다 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인생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예기치 않은 일이 이 칠면조에게 닥친다. 사랑으로 먹이를 주던 주인이 자신을 데려간 곳은 주방이었다. 칠면조의 믿음은 수정을 강요받는다(주1).  


여기서 나심탈레브가 비유한 칠면조는 현대사회의 누구를 대변한 것일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나 소득에 길들여져서 자신의 삶이 ‘안전하다’고 인식한 ‘위험한’ 모두를 얘기하는 것이겠지요?


코로나 시대를 비롯해 거대한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당신들이 알아두어야 할 개념이 ‘블랙스완 현상’입니다.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죠.


나심 탈레브는 세계를 둘로 나눴습니다. 

극단의 왕국

vs

평범의 왕국. 


평범의 왕국은 

말 그대로 정규분포 안에서 움직이는 안정된 일상을 의미합니다. 정규분포라는 것이 오차가 0이기에 여기서는 큰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보편적인 법칙이자 일상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반면,

극단의 왕국은

정규분포의 바깥, 즉, 극단에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예상하지도 않은, 비일상적인 사건이 검은 백조처럼 느닷없이 출몰하면서 전체를 바꿔버리는 곳이지요. 백조라면 대개 흰색인데 어느 날 검은백조가 등장한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일상이 파괴된 것이죠. 극단의 왕국은 고도의 카오스가 지배하기에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에 의존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지식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얼마전 코로나, 말도 안되던 계엄선포같은 경우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왕국은 늘 공존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극단의 왕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극단의 왕국을 지나며 진보하지요.         

근엄하기 그지없어 농담에도 웃지 못하는 하버드대 교수의 콧구멍에 작은 깃털이 들어갔다면 근엄은 한순간 무너진다는 나심 탈레브의 비유나 


우아하고 단정하기 그지없는 백작 부인이 갑자기 설사가 마려우면 우스꽝스러운 꼴로 변해버린다는 몽테뉴(주2)의 농담처럼 우리 개개인의 하루하루에도 예상치 못한 블랙스완은 자주 출몰합니다. 


물론, 콧구멍에 깃털이 들어갔다거나 갑자기 설사가 마려운 정도는 자신의 이미지를 잠깐 엉망으로 만들 뿐 역사적인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지요.


하지만,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는 개개인의 사연을 접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911사태가 그랬고 IMF 세계 금융위기가 그랬으며 코로나그랬고 얼마전 계엄령도 그랬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사건들이 국가 경제는 물론 개인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가하지요. 삼풍백화점이,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는 느닷없이 가족의 죽음을 접해야 했고 누군가는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인 영구장애를 안고 사는 인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출현한 블랙스완으로 인해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은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의 혼란에서 다시 질서를 찾아가며 역사는 내 인생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블랙스완이 등장하는 극단의 왕국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낯설며 희귀한 과거 역사 속에서 드문드문 겪었을 법한 상황이 전체를 좌우하는 충격적인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나심탈레브는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블랙스완이 지배해온 역사라면서 세상은 예측조차 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진화하며 이러한 세상에 사는, 준비되지 않은 개인은 치명적인 파국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억울하십니까?

4차 혁명으로 대변되는 현대사회는 한마디로 블랙스완이 출몰한 극단의 왕국입니다. 

과거 원시시대는 야생동물의 출현이나 천재지변이 극단의 왕국이었지만 현시대를 대변하는 글로벌 사회는 너무나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기에 블랙스완이 너무나 다양하게, 그것도 자주 출몰합니다. 한 나라의 작은 시장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개인이 만든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에 나오면서 내가 다니던 거대 기업은 한순간에 위기에 봉착해 내가 직업을 잃는 위기에 처하지요. 


억울하십니까? 

나는 잘못한 것도, 나와는 상관도 없는 일인데 왜 내가 이런 피해를 봐야 하는지 속상하십니까? 

왜 나만 운이 나쁜 건지,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인가요? 


그런 맘이 드는 것도 이해합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열심’에 뒤통수를 쳤으니까요.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한 죄밖에 없는데 

왜 이리 대학은 나와도 소용없고 고용은 불안한 것인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얀 백조가 노니는 고요한 호숫가에 검은 백조로 인해 그동안 믿어왔던 확신이 깨지고 나를 근사하게 포장해주던 지식에 금이 간 것이니까요.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으로 생활은 별탈없이 안정적이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인공지능 로봇이나 코로나로 인해 무급휴직, 명예퇴직을 권유받기도 하고 매일 오던 단골손님으로 쏠쏠했던 장사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등장과 코로나로 장기간 셧다운되기도 하고... 


이 불안한 느낌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많은 이들이 미래를 걱정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블랙스완은 개인의 인생에서도 자주 출몰합니다. 

늘 자신했던 건강이었는데 어느 날 몸에서 종양이 발견되기도 하고 부모님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기도 하고...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건만 왜 이리 난임, 불임환자는 주변에 많은 것인지....


나와 내 주변의 블랙스완은 너무나 흔합니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우리를 위험에 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내내 통했던 것들, 즉, 경험에 의해 확고해진 지식이나 신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은 이렇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지금까지 믿어왔던 ‘보편’이라는 관념이 오히려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심탈레브는 인간도 2부류로 나눴습니다. 

칠면조형 인간 vs 반칠면조형 인간. 

즉, 대비하지 않은 인간 vs 대비한 인간. 

또는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인간 vs 제대로 사고하는 인간.    



하지만!

칠면조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번엔 칠면조가 아닌,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요. 

주인에게 칠면조를 잘 키워서 주방에 데려가는 일은 이미 계획되어 있던 일상이었습니다.


칠면조의 입장에선 느닷없이 당하는 상황이겠지만 주인의 입장에선 일상에서 늘 하던대로 계획되어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알아야 할 점은 칠면조의 경험의 가치는 0이 아니라 -(마이너스)라는 점입니다.


따박따박 주는 사료에 길들여지고 가장 통통하게 살이 올라 기분좋은 상태, 

즉, 칠면조가 최고로 안심한 상태, 그 순간이 자기 생명의 위험이 최고에 달한 순간이라는 점.

기존의 지식 자체가 무너진 것이지요. 


친절한 먹이 주기가 계속될수록 칠면조의 안정성과 행복감, 주인에 대한 믿음은 더 확고해졌을테고 반면, 도살의 순간도 성큼성큼 다가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칠면조는 먹이의 경험으로 도살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안심만이 강화되었던 것입니다.


자, 현재 우리네 현실이

이상하게 칠면조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월급에 길들여진 직장인, 안정적인 수익에 안심한 자영업자들, 또 정신이나 감정에 한쪽으로 안정감에 취해있던 사람들.... 실제 코로나로 인해 칠면조가 안심하다 도살된 것 마냥 이들 대부분은 예기치 않은 팬데믹 상황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심지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한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성세대의 가르침대로 아끼고 저축하고 열심히 공부했건만 세상이 변하는 것에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칠면조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계속 최선을 다하다 보면 안정적인 삶이 기다릴 것 같겠지만 그 경험의 가치는 0이 아니라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알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극단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나의 통제권 밖에서 들이닥치며 또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예측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드라마나 소설, 영화처럼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다이나믹하죠. 왜냐면, 곳곳에서 블랙스완이 출몰하니까요.


앎과 삶의 간격

하지만 블랙스완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엄청난 깨달음을 주지요.

나심탈레브는 ‘플라톤의 주름지대(Platonic fold)'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이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간격이 커서 위험한 블랙스완이 잉태되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블랙스완 현상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사실 우리 대다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모두가 블랙스완 현상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지금 플라톤의 주름지대에 서 있구나'를 절실히 느끼면서 대비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나는 지금부터라도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없는 삶을 만들어야겠다!'라는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됩니다. 


이제 그 주름을 펴기 위해, 

즉,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울 전투를 준비하게 되는 시점도 블랙스완이 출몰한 그 지점부터겠지요. 

자신의 현실을 알아채지 못하면 미래는 희망보다 암울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버드의 심리학교수였던 조던피터슨(Jordan Bernt Peterson)의 경고가 이 쯤에서 와닿을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여기엔 낭떠러지가 없어. 근처에도 없어. 하나 있긴 한데, 앞으로 10년 동안 거기서 떨어질 일이 없을 만큼 먼 곳에 있어.’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하지만, 10년은 꽤 긴 시간이라 예측이 틀릴 수 있지만, 그래도 현실이기에 10년 뒤에 재앙이 예상된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쪽으로 달려가지 않는 게 맞다(주3)고 또 다시 재차 경고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블랙스완의 출몰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겠지요?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았으니까요. 

'지금이 극단의 왕국이구나. 그렇다면 분명 커다란 진보, 나아가 진화가 이뤄지겠구나.'라고. 


그렇다면 남들이 가는 대로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가고 취직하고 아들딸 낳아서... 등으로 관철되는, 안.전.한 방향을 다시 한번 재고해 봐야 합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100세 인생을 보장받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러한 회고를 통한 재고와 결정은 분명 자신을 비칠면조형 인간으로 만듭니다.

인간 개인의 역사는 극단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블랙스완으로 만들어지고

성공은 바로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든 비칠면조형 인간의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여러분이 하는 공부가 

나의 삶을 유용하게 만들어 줄 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주1> 블랙스완, 나심탈레브, 동녁사이언스

주2>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동서문화사

주3> 질서너머, 조던피터슨,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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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감정의 반전]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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