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빚)에 관한 소고
내 하루를 따져봐야겠다.
새벽에 일어나 태양이 주는 모든 기운부터 고스란히 받고
물 한잔으로 밤새 줄어든 내 몸에 수분 채워주고
신경전끝에 깨운 아이의 호들갑에 종족보존의 숙제를 끝낸 뿌듯함도 느끼고
새벽내내 읽는 책의 귀한 글귀들로 내 정신의 양식도 채우고
이 좋은 것들을 새벽시간에 몽땅 얻는다.
태양, 물, 자녀, 책.
내것이 아닌 것들을
나는 오로지 얻기만 했으니
빚이다.
채무, 빚이라 하면 경제적인 것만으로 국한했던 나였지만
이제 아니란 것을 알만한 어른이 됐다.
내가 읽는 글,
듣는 말,
자연의 기운,
세상 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현상들
이 모든 것들의 채무에 나는 변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어른.
가장 비겁한 자는 보은에 등돌리는 자라고 에머슨이 알려줬는데
여태 나는 비겁했으며
심지어 비겁한지도 모르는 오만하기까지 한 자였다.
내가 잘해서,
내가 그리 선택해서,
내가 착해서,
내가 열심히 지내서 그런 줄 알았으니까
나는 비겁+오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나를 키워주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나를 웃게 해주는데 나는 무엇을 줘야 하나?
이렇게 멋진 대자연은 내가 살아가게 모든 걸 다 내어주는데 나는 어떻게 돌려주어야 하나?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기형이 된다, 머리는 큰데 손발은 움직이지 않는,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불구가 된다, 아는 것은 많은데 사는 것이 힘든.
기형도 불구도 원치 않는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우선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
그저 오늘 주어진 것에 대해 '내가 선택되었다'는 수동적인 마음으로 감사함을 인.지.하고
그 채무를 변상하기 위해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더 제.대.로.
말하고 침묵하고 쓰고 존중하고
하루에 진 채무는 하루에 변상하는, 하루를 0(zero)로 만드는 것.
새벽의 채무를 변상하는 데에 오전을 보내고 난 후
좀 더 나다운 짓을 해보는 것으로 오후를 시작한다.
가장 큰 빚은
나답게 살라고 지금껏 우주가, 자연이,
내게 모든 것을 다 허용했는데
인간이 빚을 갚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되겠지?
빚을 갚고 돈을 따로 모으듯
나의 삶, 오롯한 나의 삶을 만들기 위한 축적이 있어야겠지?
순서는 채무해결부터다.
새벽을 빚으로 시작했으니
오전내 정산을 끝내면.
오후에 접어들 때부터
마이너스(-)는 0이 되고
이내 플러스(+)로 전환된다.
0이 되는 순간부터는 기형도 불구도 아니기에
나를 만드는 것을 시작한다.
빚없는 홀가분함으로
오로지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쌓느냐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 축적은 '격'으로 드러난다.
'격'은 덤이다.
생존이, 빚이 해결되면
나의 존재가치가
나에게 격으로 쌓여 나를 충만하게 한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이 단순한 산술계산에 의해
오늘도 나는
채무자가 아닌,
그렇다고 채권자도 아닌.
단순한 제로(0)의 원자로 살아갈 권리를 누릴 수 있다.
하루의 시작은 (-)를 변상하는 것부터.
0이 되는 순간 (+)도 쌓아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