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도 당신을 떠나기 싫어할 겁니다.

'S.H.에게'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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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만나는 사람]

S.H.에게


당신과는 같은 중년을 보내는 공감대가 느껴져 참 편안합니다.

당신과 아이 키운 얘기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정답습니다.

당신도 나도 인생의 큰 숙제 해치운 후련함과 그 미련에 연민을 두고 있는데

이 둘을 적당히 버무려 이제 그것들을 어디로 치워둬야할지 내 삶 어딘가에 무엇으로 다시 만들어 넣어야 할지 함께 고뇌하는 대화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처음 당신은 이성은 어디다 두고 감정에만 휩싸인 채 '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그러나 꽤 버거운 모습으로 내게 왔습니다. 자기 안에 자기가 없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아니 어쩌면 그리 길들여져 먼길 돌아가고 있는 그 모습이 많이 애처로웠습니다. 손을 잡고 이쪽이잖아 하고 데려오고 싶었지만 가시는 길 언저리에서 온갖 애를 쓰며 갖은 힘을 다 써버린 듯해 그리 하지 못하고 천천히 숨을 고르게 하고선 조금 먼 앞을 보여드리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그리 빨리 갈 수 있지도, 쉽게 보이지도 않는 길이라,

자기안이 자기로 채워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라,

그러지 않으면 돌아돌아 애써가더라도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고 다시 뱅뱅 도는 길이라,

나는 마음이 급했지만 세월 어느 길에서 다시 우왕좌왕하지 않길 바라는 맘으로 당신 손을 조심스레 잡았지요.


우리는 내 안을 어디에 다 소진해버리고 반백이 갓 넘은 나이에

나없이 감정만 뒤집어쓴 채 세상에 덩그러니...

공허함에, 허공만 바라보며 이렇게 맥없이 서게 된 걸까요?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왜 우리는 내 자신을 좀 남겨두지 않았던 걸까요?

왜 그토록 잘 해주려, 잘 키우려, 잘 먹이려, 잘 보살피려, 게다가 잘 보이려고까지 했던 걸까요?

우리는.

충분했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지금 나로서 충분하다고 여기게 되었지요.

잘해주고 싶었지만 정작 내 안에 내가 없으니 그들에게 더 나눠줄 것이 없어진 고갈된 나를 발견했으니까요. 고갈당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고갈시켜왔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었으니까요. 내 안에 없는 나를 찾아 텅빈 내 안을 열심히 뒤적거려 보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여전히 내가 안 보여 눈이 짓무르도록 울어버리기도 했으니까요. 다 큰 어른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가 그렇게 철없는 어린아이마냥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만 그 보상으로 이제 내 안에 나를 채워야 함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 자체만으로 감사함을알 정도로 순진한 상태로 돌아왔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지금부터 우리 시작해보도록 해요.

서로를 보듬으며 내 안에 있었던 것들부터 하나씩 찾아보기로 해요.

없는 게 아니라 잠깐 잊고 있었던,

나가지 못했던 게 아니라 잠시 물러서 있었던,

못해왔던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로 인해 잠시 보류해두었던,

그것들을 하나씩 시작해보도록 해요.


언제부터였나 되돌아보니 당신이 심하게 몸이 아픈 이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자연은 스스로 순서매긴대로 우리를 이끌죠.

몸이 아픈 뒤에 정신을 맑게 청소해주는 것 역시 자연이 매겨놓은 순서일거예요.

청소된 정신은 그간 못다한 자기 역할에 충실하겠다 다짐한 듯 정말 제대로 비어있던 곳곳에 원래의 것들을 갖다놓기 시작했지요.

잊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과감히 떨치지 못했던,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서 눈이 조금 멀게 했고

인정받으려 애쓰며 표정을 살피던 남편에게선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구요.

청소된 정신은 지금껏 챙기지 못해 다소 무능했던 내 오감부터 먼저 제 자리에 앉히더니

이내 내 마음도 건드려주기 시작했지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미련으로 괴로웠던 우리에게

현재의 암담함에 주저하는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겁부터 내는 우리에게

결코 생각하지도 않던, 아니 생각조차 못했던 꿈을 가슴에서 조금씩 만들어내네요.

당신도 느끼지요?

내가 바라던 나, 나의 꿈, 나의 서사가 아주 조금씩, 하지만 강하게 내 안에서 내는 소리가

당신도 들리지요?

그래요,

우린 여기까지 걸어왔네요.


6개월이 넘었군요. 매일 새벽마다 따뜻한 이야기를 주고받은지가.

수년을 만났던 그 누구보다 당신과 매일 새벽 나눈 대화의 깊이는 수십년을 살며 깨달은 것들을 응축시켜 놓은 것 같습니다. 한두마리의 물고기만으로도 깊은 강의 생태를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렇게 한두마디의 언어로도 깊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지요. 세련되지는 않지만 단순한 우리의 언어에 혼이 연결되어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공유'가 서서히 우리를 '공명'으로 매일 새벽 떨게 했지요.

이런 우리의 연결은 분명 하나+하나는 둘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진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50년을 몰랐던 우리가 강한 끈으로 함께 묶여 각자 자신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하는 데에는

아마 자연이, 세상이, 우주가 우리를 통해 바라는 바가 존재하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리 믿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저는 그 어떤 이유없이 이런 우연이, 이런 연결이, 이런 강한 끌림이, 이런 공명이 느껴질 리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분명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지요. 이득이라면 자연이 우리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내 삶에, 내가 당신의 삶에 진입된 이유일테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당신이 혀로 내뱉는 그 소리에 더욱 귀기울이고 당신의 사고의 성장에 더더욱 관심과 응원을 보내며 매일 새벽 당신의 건강한 등장에 내가 안도하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는 이제 육체에 약간의 한계를 느끼는 나이에 접어든 듯합니다. 상처가 나도 쉬이 낫지 않고 한번 아프더니 회복도 더딘, 그런 나이요. 그런데 최근 약간 아프면서 오히려 자연은 우리의 정신을 더 강하게 붙들어 매주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어요. 자연을 믿는만큼 우리는 육체보다는 정신이 나를 이끌도록 내 정신을 어디에도 허락하지 말아야겠어죠. 이렇게 선한 마음으로, 이렇게 내 인생을 걷겠다 약조하는 우리에게 자연은 아마 큰 선물을 준비해 두었을 거예요. 자연은 어느 누구도 배신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이제 어른답게 자연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선물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데에 더 정신의 힘을 키워보자구요.


이제 찾아나선 나 자신, 나의 꿈, 나의 미래, 그리고 나의 의미와 가치.

세상이 얼마나 당신을 정성스레 빚어 지금의 자리에 세워두었는지 당신은 새로이 다시 품은 당신자신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 차례 당신께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세상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세상은 의외로 냉정하여 스스로 믿는 자에게만 믿음을 주고 세상은 의외로 허술해서 내 감정까지는 살피지 않더라구요. 그러니 우리부터 우리 자신을 믿어야겠어요.


당신이 지금처럼 당신의 시간들을 잘 챙겨서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당신의 꿈도 당신의 따뜻함과 정성을 떠나기 싫어할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하는 이들도 그 품의 따뜻한 온기보다 더 은근한 뜨거움으로 당신으로부터 전파되는 꿈에 뜨거워질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당신만큼 당신의 꿈도 사랑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누군가로부터 드러나야 할 세상의 명령이, 당신에게 '꿈'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일인가요? 당신은 당신의 꿈이 당신에게 자리를 튼 것에 감사함을 보낼 줄 아는 선하디 선한 결을 지니고 있는 분임을 저는 안답니다. 당신의 꿈은 분명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일 것입니다. 그 무언가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꺾이지 않도록 늘 세워둬야 할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당신인 것입니다. 저는 그 옆에 서서 그저 응원하는 역할이 고작이겠지만 최선을 다해 응원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과 당신이 꿈꾸는 그 호숫가 옆을 나란히 손잡고 걸으며

지금의 우리를 추억하는 그 날을 나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 함께 하얀머리 자랑하며 당신이 이룬 꿈이야기, 당신의 서사를 들려주세요.



2022. 12. 8.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 당신께 감사의 편지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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