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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r 10. 2023

1000일의 새벽독서로 배운
삶의 '관점' 8

'계산서말고 영수증'

처음엔 새벽 4시부터였고 지금은 새벽 3시부터. 2시간 이상 새벽독서를 실천한지 1000일을 훌쩍 넘기고 지금은 글쓰기까지 보태어 나의 새벽은 더 다채로워졌다. 나는 나를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고 'ㅅ'으로 시작되는 3가지, 삶, 사람, 사유(사유하는 사람으로 사는)를 즐기는 최고의 쾌락으로 일상을 보낸다. 이로써 나는, 나의 남은 생을 관조할 수 있는 몇가지 관점을 갖게 되었기에 나의 관점을 하나씩 기록해 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 8번째, 

['계산서' 말고 '영수증']


하루에도 몇번, 아니 수십번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앞에서 

나에게 기준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분명하게 이 두 단어를 말할 것이다.


'계산서 말고 영수증'


계산서는 값을 치르기 전

영수증은 값을 치른 후에 받는 것이다.

당연히, 계선서보다 영수증이 후련하다. 깔끔하다. 끝낸 것이며 정리된 것이다.

계산서는 치러야 하니 의무이며,

영수증은 치렀으니 권리이다.

계산서는 먼저 누리고 후에 받는 것이며

영수증은 계산을 치렀으니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증서다.


그러니,

계산서말고 영수증으로 하루를 만드는 것이 무조건 좋다. 아니, 바람직하다.

하루에 대한 영수증. 계산서말고.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하루를 0으로 만든다'고.


스트레스를 없애라, 고통을 극복하라, 불안을 떨쳐버려라. 

우리는 이렇게 관념에 박힌 말들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나는 그러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없앨 수 없기에 관리해야 하며 고통은 쾌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가이니 거쳐야 할 과정이며 불안은 현실을 점검하게 해줄 동기이니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고통, 불안과 같은 부정감정, 또는 이를 몰고 온 부정상황을 피한다는 것이 바로 계산서를 받는 행위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일단 나몰라라 하며 회피하는 것은 계산하지 않겠다는 처사다. 지금 나에게 온 스트레스나 불안,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해석한 후 그 과정을 잘 지나치면 영수증을 받는다. 대가를 치렀으니 보상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보상이라면 다양하겠지. 후련한 감정부터 상황의 역전까지. 자신만이 아는 그 느낌, 그리고 변화된 상황, 실재, 현실. 이 모든 것들을 영수증으로서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나는 하루라는 자연이 준 선물을 일단 받는다. 

선물을 받았으니 계산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하루를 마감할 때 

오늘은 계산서가 남았나, 영수증이 남았나? 를 습관처럼 묻는다.

둘 다 남기지 않고 0이 되면 후련하다. 


혹. 내가 치른 대가가 지나쳐서 영수증이 남았다면 저축해둔다. 다음에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꺼내쓰도록. 내가 좀 기특해져서 계산을 먼저 치르는 삶이 습관이 되어 영수증이 지속적으로 많이 쌓인다면 나는 이를 우리 아이들에게 상속시키고 죽고 싶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조상의 은덕'. 뭐, 그런 것처럼 내가 쌓아놓은 영수증이 나 죽고 없는 세상, 우리 아이들의 삶에 한장씩이라도 사용된다면 오늘 치른 계산의 값어치는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이 새벽,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내가 보탬이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흐른다.


오늘을 0으로 만든다.

치러야 할 대가가 시련이든 역경이든 고통이든 무엇이든 올테면 와라. 공짜는 싫으니까. 

비싼 것이라면 비싼 대가를 치를 정도의 이성은 갖추고 있으니까. 올테면 와라.

내게 오는 그 모든 대가가 의무의 다른 이름인 것쯤은 아니까. 올테면 와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를 누리는,

권리를 혜택이라 착각하는,

혜택을 받고서 은혜에 둔감한,

내가 그런 어리석고 졸렬한 인간은 아니니까. 

올테면 와라.


나는 당당하게 계산하고 영수증을 받겠다.

그리고 충분히 누리겠다.

더 달라고도, 덜 받지도 않겠다.

그저 자연이, 신이, 우주가, 세상이 내게 약조한 것들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 크다.

나를 어찌 쓰려고 이리도 여린 가슴에 그토록 지겹고 무거운 세상을 살게끔 날 내쳤는지 

내 한번 알아내고 싶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수증을 반드시 받고야 말 것이니 올테면 와라.


오히려 더 많은 계산을 당겨서 치를 것이다. 

평생 무료이용권? 뭐, 이런 것처럼 온세상이 허락한 것이 있다면 평생 무료로, 나의 소중한 아이들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나에게서 치러야 할 대가라면 찾아서, 당겨서, 남들보다 더 먼저, 많이 계산을 마쳐버리겠다.


이리도 당당하게 선포한 지금.

어? 이거 뭐지?

나의 기준을 살짝 높이라는 자극이 온다.

하루를 0으로 만들 게 아니라 

하루를 +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기준이 높으면 기본도 따라 높아진다.

기본이 높으면 수준도 따라 높아진다.

기준, 기본, 수준이 높으면 기분에 좌지우지될 턱이 없을 것이다.


하루를 +로 마감한다면

하루에 영수증 1장정도의 잉여만으로도 1달이면 30장, 1년이면 365장, 10년이면 3650장, 50년이면 18,250장. 내가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할 때 매일 1장씩 영수증을 쌓으면 거의 18000장이 쌓인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들이 이 험한 사회에서 혹시나 어떤 날 1장, 어떤 날은 10장, 어떤 날은 100장이라도 필요할 때 내가 쌓은 영수증이 '운'으로, '기적'으로, 어떤 '귀인'으로, 누군가의 '사랑'으로 환원된다면 지금 나는 0이 아니라 +1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어떨까?


지금 이 새벽. 

나는 전혀 예상치못한 어떤 자극에 의해, 잉여를, 나에게 의무로 던져버린다.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왜 지금 이 글로 세상과 약조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손가락이 움직인다.


지금껏 0을 만드는 것에 어려웠고 힘들었다. 늘 계산서를 남기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에서 0이라는 기준까지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거웠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쉽게 말해, 나에게로 오는 스트레스에 짜증도 냈고, 원망도, 억울함도, 화도 내며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불신, 편협된 사고, 어그러진 이성, 주체못할 감정들로 겉잡을 수 없이 쌓인 계산서를 하나씩 변제하는데 수년이 걸렸다. 


이런 내가 지난 시간들을 계산서와 영수증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풀이해내면서 수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저 흐름 속에 있는 이 모든 부정을 감사히 여기게 되었는데 ...

이 새벽, 나는 더 큰 세상으로 불려나간 듯 떨린다. 

+1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금 더 깊은 사랑을 나누라. 

동정이나 위로말고 진실을 말하라. 

용기나 응원말고 함께 걸으라. 

가르치려 말고 보여주라. 

어리석은 자선말고 더 크게 세상에 이롭게 나를 써라. 

뭐, 이런 것들일까? 

+1.... 

오늘부터 나의 기준을 +1로 승격시켜 보련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안다.

기준이 높으면 수준이 높아지고

수준이 높으면 지경이 경지로 승격되고

경지로 가는 길에 나의 혼탁한 시야는 맑아질 것이며

맑아진 시야는 더 너머의 것과 나의 기운을 연통시킬 것이다.

너머...의 초월된 무언가가 나를 부르는 것에 대한 화답으로 

좀전 '올테면 와라'고 큰소리친 것일까.....


+1의 기준.

감정말고 이성이어야 한다.

기준은 기분말고 기본을 승격시킨 것이니까.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버려야겠다는 이 마음을 주는 새벽에 감사하지만

과연 이 마음은 

가진 것들에 대한, 가고자,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한

포기일까, 단념일까, 체념일까, 의지일까, 각오일까...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명철한 이성에, 쌓여진 지혜에, 믿고 있는 확신에, 나를 이끄는 무서운 힘에

나는 나를 맡겨봐야겠다.


아직도 내가 치러야할 계산서가 있다면

어여 치르게 나에게 가져오소서.

혹시 내가 계산을 다 치렀다면

여기에 더 이상 안주하지 않게 하소서.

나아가 

내가 영수증을 더 받고자 하는 것이 탐욕이 아니라면

그 길로 나를 데려가소서....


반성이란 것을 하지 않기로 한 나에게

지금 느끼는 새벽의 훈계는 

성찰임을 증명토록 나를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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