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당함에 나는 묻는다.
나의 안이함에 나는 묻는다.
나의 만족감에 나는 묻는다.
나의 이성에 대놓고 묻나니.
나는 장님인가? 아니다.
나는 귀머거리인가? 아니다.
나는 벙어리인가? 아니다.
나는 중풍환자인가? 아니다.
나는 사랑을 받지도 하지도 못하는가? 아니다.
나의 심장은 상처입었는가? 아니다.
나는 피부병이 있는가? 아니다.
나의 폐는 병들었는가? 아니다.
나의 피는 오염되었는가? 아니다.
나는 정신이 나갔는가? 아니다.
나는 가난한가? 아니다.
나는 그 어떤 국보보다 더 귀중히 보호되어져 왔다.
모든 것은 완벽하다.
그런데 왜?
나 자신을 배신하며 내 삶을 움직일 힘이 없다고 자신을 속이는가?
이제 나에게 스스로 대답해보라!!
가끔 나의 정체에서, 어긋남에서, 나태함에서 나를 이끌어내는 구절이 있다. 바로 미츠호로위츠가 쓴 아래 사진 속 글인데 우연히 접한 자기개발서인 이 책의 이 페이지는 나로 하여금 무너지거나 무너지려는 자신감으로부터 나를 해방하여 내 삶을 더 나은 곳으로 향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에 거론된 책은 물론, 그 몇배에 달하는 책들을 섭렵까지는,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읽었고 9개월이 아니라 벌써 4년째 매일 새벽독서로 이제 완벽하게 내 삶에 체화되었으며 나에게 나의 결정을 무시하고 '그렇게까지 살 필요없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하는 이들을 당분간 의도적 단절을 해왔고 가치를 공유하는 새벽독서모임의 멤버들과 함께 결을 이뤄나가며 나는 나의 삶을 더 성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 말 그대로 이 사실만으로도 나는
내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음을,
내가 무언가를 지향하고 있음을,
내가 어떤 것에 가치를 집중시키고 있음을,
그렇게 나를 가두며 나는 자라고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이 느낌은 나 스스로가 나에게 주입한 것이 아니란 것도 안다.
이는 세상이 원하는 창조를 나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세상의 명령에 대한 서막인 것도 안다.
나라는 사람이 자신의 과업을 이루는데 꽤 쓸모있다고 판단한 세상이
사태에 대한 시련으로 나를 훈련, 단련시킴으로서 자신의 창조를 이루려 하는 것임도 안다.
나는 이에 대한 수동의 자세로 그저 잘 쓰여지도록 매일매일 느낌에 집중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그저 손과 발이 행하도록 하는 것, 즉 '지금을 사는 방법'도 안다.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내가 번(벌린) 것들을,
내가 쌓은(쌓인) 것들을,
내가 결과로 만든(만들어진) 것들을,
과연 이것들이 어디서 무슨 모양새로 어떤 이를 위해 쓰여질지 나는 아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는 결코,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쓰일 뿐.
결과는 나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세상만이 알 것이다.
따라서,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정지와 판단유보를 통해 세상이 나를 이용하도록 나는 나를 허락한다.
이로써 나는 증명해내는 인간이 될 것이다.
나를 버리고 세상에 나를 맡기는 '자발적 수동'이
얼마나 강력하게 '지금'을 능동으로 살게 하는지를.
세상이 날 어떤 식으로든 단련시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이타의 선을 행하는 것인지를.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할 것들을 우선으로 행하는 나의 손과 발이 이성에 제압당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세상에 대한 배려와 순종인지를.
나는 나를 그리 쓰이도록 나를 키우고
나는 나를 그리 키우면서 더 크게 사랑하고
나는 나를 그리 사랑하며 더 넓게 바라보고
나는 나를 그리 바라보며 더 깊게 나를 이해하며
나는 나를 그리 이해하며 더 격하게 나를 소유하며
나는 나를 그리 소유하며 원도 한도 없이 세상에 나를 내놓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쓰일 곳에서 제대로 흘러넘쳐 나의 삶은 새로운 삶으로 솟구치고
나에게서 흘러넘쳐 스며든 곳에는 나의 잉여가 그 자리에 필요한 곳으로 나눠질 것이다.
나는 나를 이렇게 해체, 분열시키며
더 온전히 세상과 조화를 이뤄 일체된 삶으로
나를, 내 인생을, 내 삶을 걷게 할 것이다.
나는 나를 해체하고
나는 나를 이해하고
나는 나를 키워내고
나는 나를 소유한 후
나는 나를 흐르게 하여
나는 나를 나눈다.
이로써 나는
세상이 나를 통해 창조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세상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도록
나는 나를 허락한다.
이것이 조화이며
이것이 일체이다.
아래의 글을 썼을 때가 벌써 1년전이니 난 더 많은 시간을 보탠 것이다.
https://cafe.naver.com/joowonw/4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