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무엇입니까?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은 자유를 "외부의 강제로부터의 해방"으로 정의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무제한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강력한 원칙입니다. 이 원칙 덕분에 우리는 종교의 자유를 얻었고, 표현의 자유를 얻었으며, 사상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원칙이 없었다면 근대 민주주의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었습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입니다.
문제는 무엇이 "해를 끼치는 것"입니까? 18세기에는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물리적 폭력, 재산 침해, 명예 훼손. 이런 것들이 명백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해"의 개념이 훨씬 복잡해졌습니다.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해입니까? 편파적 보도로 여론을 왜곡하는 것은 해입니까? 불공정한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해입니까?
직관적으로 우리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분명히 해를 끼치는 행위들입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이것들을 해로 규정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즉시 "자유"라는 방패막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합니다.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가 아닙니다. 자유는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오는 권리"입니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자동차를 운전할 자유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조건적입니까? 아닙니다. 당신은 면허를 따야 합니다. 교통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사고를 내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음주운전을 하면 처벌받습니다.
왜 이런 제약들이 존재합니까? 운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운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누구나 아무 규칙 없이 운전할 수 있다면, 도로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결국 아무도 안전하게 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책임은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같은 논리를 언론의 자유에 적용해봅시다.
언론은 보도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한합니까? 거짓을 보도할 자유도 있습니까?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할 자유도 있습니까?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 루머를 퍼뜨릴 자유도 있습니까?
현재의 시스템은 사실상 "그렇다"고 답합니다. 물론 명예훼손법이 있고, 정정보도 청구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실효성이 매우 낮습니다.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도, 재판은 몇 년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 피해는 이미 발생했고, 회복 불가능합니다. 정정보도를 받아내도, 원래 기사만큼 크게 보도되지 않습니다. 1면에 실렸던 오보는 구석에 작은 글씨로 정정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사가 져야 하는 대가가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벌금? 대형 언론사에게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벌금은 사업 비용에 불과합니다. 명예 실추? 어차피 자신들의 지지층은 계속 그 신문을 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언론은 조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보를 내도, 왜곡 보도를 해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극적인 기사일수록 클릭 수가 많고, 클릭 수가 많을수록 광고 수익이 높습니다. 책임은 없고 이익만 있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자유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책임 없는 권력입니다.
사법권을 봅시다.
판사는 판결할 자유가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의무가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양심에 따라, 법에 근거해서 판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법권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만약 판사가 명백히 잘못된 판결을 내린다면? 법리를 무시하고, 증거를 왜곡하고, 편견에 기반해 판결한다면?
현재 시스템에서는 거의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항소할 수 있지만, 그것도 결국 다른 판사에게 가는 것입니다. 판사를 고발할 수 있지만, 판사 징계는 판사들끼리 결정합니다. 사법부 내부의 문제는 사법부 내부에서만 처리됩니다.
더군다나 판사는 사실상 평생직입니다.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됩니다.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습니다. 이상한 판결을 반복해도, 승진이 늦어질 수는 있지만 직을 잃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판사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거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판결로 무고한 사람이 감옥에 가도, 판사는 "법리적 판단의 차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명백히 편파적인 판결을 내려도, "독립적 판단"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비판하면? "사법권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돌아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독립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책임으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여기서 핵심 원칙을 정립해야 합니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지만, 그만큼 책임도 큽니다. 잘못하면 탄핵당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을 가지지만,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습니다.
그런데 왜 언론 권력과 사법 권력은 예외입니까? 왜 그들은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까?
변명은 이렇습니다. "언론과 사법부는 특별하다. 그들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들 자체가 권력의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맞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답입니다.
언론과 사법부가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보호는 "권력의 압력"으로부터의 보호이지, "책임"으로부터의 보호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언론을 검열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언론이 거짓을 보도했을 때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은 검열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판사를 압박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판사가 불공정한 판결을 냈을 때 책임을 묻는 것은 압박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요구하면 즉시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프레임이 씌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