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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레인한 Jun 07. 2024

불가능하단 말

증상 너니? 아니면 난가?


두 번째 내원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주 첫 진료 때 기대 이상으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 거의 한 시간을 봐줬는데, 오늘은 오분만에 끝나는 걸까? 

일주일 동안 수많은 온라인에 떠도는 글과 유튜브 비디오들, 그리고 댓글들까지 정말 많이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찾은 병원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 대기가 길고, 형식적인 질문만 던진 후 약만 처방받는다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5분 만에 진료가 끝나고, 심지어 길어지면 간호조무사가 중간에 들어와 진료를 종료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설령 오늘 나의 경험도 그런들 많이 상처받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다짐을 했다.


어쩌면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로 다가올 만한 경우의 수들을 댓글을 꼼꼼히 읽으며 확인하고 있었는 줄도 모른다. 더 이상 내가 하는 행동들이 진짜 내가 아닌, 증상이라는 의심이 계속해서 든다. 




침방


평생 한의원 한번 들어가 본 적 없는 내가, 보약 한번 먹어본 적 없는 내가 한의원에 다니게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몇 달 전부터 다니시게 된 한의원이 있는데 주로 침을 놓는다고 했다. 발단은 첫째 아이의 아토피와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사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부모님의 마음이 감사해서 그냥 하시자는 대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엄마와 함께 해야 했고, 덩달아 등록이 되어 나와 남편까지 침을 맞게 되었다.


아이는 오늘 어린이집에 가고, 나와 남편만 얼떨결에 예약이 되어 침방을 찾았다. 정신과 예약이 12시에 있었고, 침방은 10시부터 11시까지였으니 나쁘지 않은 스케줄이라고 생각했다. 한의원에서 내가 제시한 나의 불편한 점은 '손 습진'이었다. 사실 피부과에서 간혹 습진 주사도 맞아보고 처방받은 바르는 약도 가지고 있는데 게을러서인지 약을 꼬박꼬박 바르는 것을 잘 못 지켜왔다. 한의원에서는 그냥 굳이 여기에서 치료할 거리를 찾자면 그 정도 내가 내밀 수 있는 현재진행형 질환이었다. 


"건조해서 그래. 여름보다 가을에 불이 더 잘 붙는다고."

- "네?"

"손에 크림 바르고 다니라고. 손 씻기만 하면 물이 날아가면서 더 건조해져."

- "네.. 아는데 그게 안되니깐 여기 왔죠."

"어쩔 수 없어. 알코올 중독자가 여기 와서 치료받는다고 나아져? 술 조절 안 해도?"

- "아.. 근데 그게 쉽지가 않은데.."

"씻을 때마다 크림을 발라야 돼. 물기 다 날아가기 전에."

- "애 키우면서 그게 불가능한데요..."

"그래도 고쳐야 돼. 그리고 당신은 일단 좀 웃어야 돼. 그래야 몸이 순환이 되지."




정신과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남편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거기에서 불가능하다는 말을 할 수가 있지?"

- "불가능하니깐. 애 먹을 거 주려면 과일 씻어야 하지, 과일 깎아주고 손 씻어야 하지, 애들이 먹다 흘리면 닦아주고 씻어야 하고, 애가 똥 싸면 엉덩이 씻어줘야 하고, 그러면 또 다른 애가 뭔가 흘리고, 닦아주고, 손 씻고, 무한 반복이야."

"사고방식을 좀 바꿔봐. 지난번에 내가 미국 돌아가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같이 운동 다니자니깐 불가능하다고 했잖아"

- "그것도 불가능해. 운동하면 한 시간 하고 씻고 머리 말리면 두 시간 훌쩍인데, 점심시간도 있고 운동하면 피곤한데, 나 뭐라도 공부하려면 수업 듣는데 한 시간, 과제도 하려면 몇 시간 걸리는데 분명히 하다 말고 애들 픽업할 시간 돼서 나가야 돼. 그러면 그때부턴 나는 내 시간이 하나도 없어."

"..."


이것도 증상일까 궁금했다. 결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왔다면 나의 모든 논리적 사고는 이제 질병의 증상으로 치부되는 건가 싶어 급 우울해졌다. 그리고 아까는 한의사한테 내 우울증세를 들킨 것 같아 곤혹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두 번째 내원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했다. 떨리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혹시 진단이 번복될까 하는 기대인지 불안인지도 엄습했다. 초진 후 원장님에 대한 경계는 좀 걷히고 뭔가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나는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뭔가 더 불안했고, 내가 하는 생각이 증상인지 생각인지 모든 게 헷갈리며 좀 더 우울해졌다고 했다. 수면유도제로 받은 약은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고 웰부트린 역시 별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일주일 더 먹어보거나 증량을 하려나 하고 예측했는데, 의사는 생각보다 빨리 약을 바꿔보자고 했다. 이번에 받은 약은 브린텔릭스정 (10mg)이다. 


웰부트린은 도파민을 올려주는 약이었다면, 브린텔릭스는 좀 더 다각화해서 우울증에 대한 모든 것을 조금씩 올려주는 그런 약인 것 같다. 세로토닌만 집중공략하는 우울증 약과는 좀 다르다고 한다. 나의 첫 정신과 약 웰부트린은 첫 약이라 뭔가 많이 뒷조사를 했었는데, 브린텔릭스에 대해서는 좀 더 가볍게 뒤졌다. 이러쿵저러쿵 간에 효과만 있으면 그 약이 맞는 약이겠지라고 생각한다. 원장님이 최대한 위험한 약은 처방 안 하기로 나름 리뷰가 좋아서 일단 신뢰하고 따라 보기로 했다. 지금보다 나빠질 것은 없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원장님께 여쭤보았다. 내가 아까 남편과 나눈 운동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화에 대하여 이것은 내 성격인가 아니면 증상인가를 물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건 성격이라고 한다. 증상은 아니라고. 뭔가 내 말에 공감을 조금 해주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아 위로도 되었고, 또한 증상 속의 나는 내 성격이 원래 진짜 증상처럼 이상한 건가 라는 생각도 했다. 만약 치료를 다 했는데, 기분부전증을 걷어낸 내가 똑같은 나이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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