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진짜 수면 경험
처음 기분부전증 진단을 받고 벌써 한 달가량이 되었다.
그동안 이주정도 친정에도 다녀왔고, 친구들도 만나고, 혼자서 영화도 보러 가보고, 미국에서는 하지 못하는 한국에서의 특권 같은 삶을 살았다. 때문인지 나의 증상도 어느 정도 모습을 거의 감춰진 채 살아간 것도 같다. 아니면 이게 다 약 빤 인 것도 같았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정에 글을 쓰지 못해 또 나는 기분이 다운되었지만 잠시라도 힘을 끌어모아 랩탑을 잠시 열었다. 꼭 써서 남겨두고 싶었던 점에는 특이한 경험이 있었다. 병원에만 다녀오고 나면 상담 시간에는 무언가 진실을 쏟아내니 마음이 편하다가도, 돌아서 나오면 급격히 몇 시간 내내 기분이 안 좋아지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한국에 와서 남편이 꼭 하고 싶다던 미슐랭 투스타 등급의 파인 다이닝을 갔는데, 너무 토할 것 같아 나는 거의 먹지 못하고 남편이 두배로 먹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삼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역하다.
처음에는 내가 먹는 약에 대해서 마치 전문가가 될 것처럼 인터넷을 뒤져 성분을 꼼꼼히 찾아보고, 그에 대한 부작용과 위험성, 남들의 경험 같은 글들을 모조리 읽어내는 지경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일단 주치의 선생님이 위험한 약은 일절 쓰지 않으시는 분인걸 확인했고, 그냥 주시는 대로 먹어보고 효과를 내 몸이 받아들이는 대로 느껴서 판단해 보기로 했다. 한마디로 약에 대한 선입견이나, 걱정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일단 내가 선택한 의사와 그의 전문적인 결정을 믿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지난 5~6년간 임신, 모유수유, 육아로 제대로 된 잠을 한 번도 자보지 못한 나를 위해 수면 유도제를 필요시 먹으라고 처방해 준 것이 있는데, 정말 처음으로 11시가량 잠이든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거의 5시까지 잔 것 같다. 잠이 드는데 까진 그래도 두 시간정도는 걸렸지만 일단 잠이 들고난 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인 느낌이었다.
이 부분을 중독이나 부작용이 있을지 우려 섞인 투로 질문하는 나에게 주치의 선생님이 해준 말씀 중 와닿은 게 있다. 잠을 잘 때도 좋은 경험들이 쌓이는 것들이 나의 치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맞다. 기분부전증이란 병이 정말이지 어지간하면 부정적으로 경험들이 자체판결 지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 시간 전쯤에 수면 유도제를 먹었다. 수면 유도제는 수면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한다. 좀 더 에너지가 있을 때 요즘 정착한 약들에 대해서도 한번 소개해 보고 싶긴 하다. 지금은 걱정보다는 일단 잠을 좀 잤으면...
아, 그리고 이 블로그는 일단 소제목들이나 목차 같은 것들은 일단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다이얼로그를 기록하는 것에 집중해서 꾸준히 하는 것을 더욱 부합한 취지로 가지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두서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누군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정말 감사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