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둘, 휴학생의 남미 여행

by 이륙

어린시절 나의 영원한 버킷리스트는 세계여행이었다.


심심할 때면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동그란 땅 위의 나라들을 둘러보았다. 세상에는 참 많은 나라가 있었다. 모든 나라를 다 가보게 될 날을 상상할 때마다 설렜다.


그 중 가장 가고 싶었던 지역은 단연 남아메리카였다.

특히 투명한 우유니 사막과 신비로운 마추픽추를 떠올릴 때면, 남아메리카 여행을 향한 꿈이 부풀어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가고 싶은 여행지 선택해 패키지 상품을 기획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 일본, 태국 등 다양한 여행지가 발표되었지만, 내가 택한 것은 페루에서 볼리비아까지 이어지는 남아메리카 여행이었다. 다들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진짜 여행을 가는 것처럼 열심히 계획을 세웠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토록 가고싶었던 곳이었지만 정작 여행을 제대로 계획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혼자서 언어도 문화도 아예 다른 지구 반대편을 여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친구 M을 만나면서부터였다.

M과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는데, 우연히 서로가 여행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며 가까워졌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다음에 함께 가자고 약속한 여행지는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던진 한 마디에 우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야, 나 휴학했어. 너도 혹시 휴학 생각 있으면, 진짜 여행 안 갈래?“


공교롭게도 나는 다음학기 휴학을 계획 중이었고, 바로 오케이를 외쳤다.


우리는 틈틈히 만나며 가고 싶은 나라들과 날짜를 정했다. 기간은 40일. 날짜를 3월로 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 이 시기가 항공권이 가장 싸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추픽추를 가장 가고 싶어했고, M은 우유니 사막을 가장 가고 싶어 했다. 둘 다 TV프로그램 ‘지구마불 세계여행‘을 재밌게 봤어서 갈라파고스도 가기로 결정했다. 치안이 안 좋다는 브라질을 제외하고, 멕시코-에콰도르(갈라파고스)-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의 총 6개국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멕시코시티로 가는 항공권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나머지는 여행지에서 할 것들이 정해지면 차차 예매하기로 했다.


우리는 밤새도록 전화를 하며 여행 계획을 짜고, 항공권을 예매하고, 여행지 얘기를 했다.


너무 아름답지만 멀고, 경비도 많이 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지역은 과감히 제외했다. 방문지역은 멕시코(멕시코시티)-에콰도르(갈라파고스)-페루(리마-쿠스코)-볼리비아(라파즈-우유니)-칠레(산티아고)-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로 결정했다.


남아메리카는 야간버스가 굉장히 잘 되어있기에 돈을 아껴보고자 가능한 비행기보다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고, ‘멕시코시티->과야킬(에콰도르), 과야킬->갈라파고스->과야킬, 리마->쿠스코, 칼라마(칠레)->산티아고, 산티아고->아르헨티나'구간에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여행지와 항공권 예매가 전부 끝났고, 동시에 통장 잔고도 바닥에 가까워졌다.


이후로는 열심히 돈을 모았다. 알바를 두 개씩 하고, 친구들과 점심을 사먹는 대신 자취방에서 밥을 만들어 먹고, 도시락을 싸서 가지고 다녔다. 좋아하는 영화관에도 안 가고, 옷도 아껴입었다.

가끔씩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행할 생각을 하면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주변 사람들에게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들 거길 왜?를 외쳤다. 여자 둘이 가기는 조금 위험하지 않냐든가, 다른 것에 집중할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낭비한다든가, 돈도 너무 많이 들지 않냐든가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이미 지구 반대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의 도전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것들을 보고 오라며 격려를 보냈다.

어릴적부터 나의 세계일주에 대한 꿈을 봐온 부모님은 우려를 섞은 응원을 보내주었다.


사람들의 걱정과 묵묵한 지지를 안고, 우리는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해갔다.


계획적이지만 꼭 중요한 것을 하나씩 빠뜨리는 나와, 계획없이 느긋한 것을 좋아하나 은근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M은 꽤 잘 맞는 여행메이트였다.

물론 역효과가 나서 아찔한 경험을 한 적도 있었다. 우리의 준비성없는 모습에 아쉽고 실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은 무사히 여행을 마쳤고, 겪는 모든 것들을 흡수해 경험과 추억으로 남겼다.


한국에서 멕시코로 떠나는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일기를 매일 썼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현실로 돌아온 지금, 여행에서의 기억을 다시 정리하며 나의 여정을 완성하고자 한다.

간단한 여행 준비과정과 여행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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