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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 Apr 30. 2024

대표님! 감사합니다.

어느 직장인의 퇴사일기

재작년 12월에 입사를 했고 지난 1월 퇴사를 했다.

겨우 일 년을 채웠다.

입사 두 달이 되었을 때 처음 퇴사의사를 밝혔다.

잡혔지만 마음도 잡힌 건 아니다.

그 후 4개월, 반년즈음이 되던 시점 퇴사 의사는 확고해졌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트리거는 연봉 100만 원을 올리면서 재작성한 연봉 계약서 글자들 때문이었다. 그곳엔 근로자에 대한 겁박스러운 조항과 앞으로가 빤히 보이는 연봉 테이블이 쓰여있었다.


‘그래도 일 년은 버텨야지’

라고 매일 주문을 걸었다. 정성이 부족했던 탓일까 결국 명절이 되기 전 결심을 입 밖으로 뱉었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퇴사 사유를 앞세웠다. 치사스러운 애 핑계였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이런 회사를 다니면서 쓰는 시간이 아까워 육아에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열망이극에 달했다.

대표는 두 번은 잡지 않았고 퇴사시점의 연장을 희망했다. 의중은 공감했지만 더 투자하게 될 시간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었다. 퇴사하는 마당에 배려는 바란 적도 없다. 그저 내 일에 대한 나름의 책임감이었다.

후임은 생각보다 일찍 뽑혔다. 그렇다고 해서 퇴사일이 당겨지진 않았다.

업무 부하가 줄어드니 조금 숨통이 트였다.


일하고자 하는 열망이 다시 차올랐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드디어 입사한 지 일 년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두 가지 모두 거절당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지막 면담이 이루어졌다.

나의 퇴사 사유는 육아가 아님을 분명히 어필했다.

보직 변경도 얘길 했고 급여에 대한 얘기도 했다.

그는 들었지만 듣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이 됐다.

그날의 찬 공기는 알딸딸하게 마신 맥주 두어 잔이 주는 취기를 꾹꾹 눌러줬다.

드디어 끝났다.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

평가절하당한 듯함 패배감으로 이력서를 썼다. 주사위가 던져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님 말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고 결과는 이직 성공!


그렇게 삼 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내 소식을 들은 대표는 본인을 기만했노라 말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의 시간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걸까?


‘대표님 일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건 기억이나 할까,

내가 잘하지 못하는 곳에서 성과를 냈으니 부서 이동을 해달라고 한 말은 기억이나 할까,

이쯤 되면 버틸 수 있겠다고 말했던 얄궂은 연봉 협상액은 뭐가 그리 아까웠을까.

셀프 퇴사 선물

어쨌든!

감사합니다!

거절해 주신 덕분에 또 도전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봤자 이 읊조림은 이기적인 사유에 불과하다.

기억이 더 휘발되기 전에 기록으로 남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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