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안되는 일

by 고마워숲

내 기억이 존재하는 그 때부터 언니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언니가 하는 것은 다 멋지고 좋아 보였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 미술을 좋아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미술학원에서 미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늘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는 걸 원치 않으셨다. 공부에 소질이 없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언니는 어쩔 수 없이 미술학원을 다니는 거고, 공부를 잘하는 나는 돈이 안되는 미술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 열한살 때 겨우 겨우 엄마를 졸라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미술학원에 가는 게 너무 좋았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오후의 햇살이 들어와 따뜻한 노란빛을 머금은 그때의 그 미술학원 풍경이 생생히 떠오를 정도로 그 시절 나에게 미술학원은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열세살에 이사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둬야했고, 그 뒤로 고3이 될때까지는 미술학원 문턱도 못 밟아봤다. 그 이유는 아마도 ‘돈'이었던거 같다. 내가 미술학원에 다니지 못했던 열세살에 언니는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강료를 내며 다니게 되었다. 언니의 미술학원 수강료로 들어가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세 남매의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차려놓고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나도 언니처럼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중학교에 들어가서 미술부에 들어가고 꾸준히 사생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가끔씩 혼자있는 시간이면 하늘을 원망하곤 했었다. 우리집은 왜 가난해서 내가 하고싶은 걸 못하는 걸까, 나의 가능성을 알아본 후원자가 나타나면 좋겠다. 내가 나중에 다 갚아줄수 있는데..이런 생각에 빠져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언니가 미대에 진학하자 미대는 대학등록금이 일단 대학보다 비싸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어떻게든 나를 미술을 못하게 말리고 싶으셨던 거 같다. “너는 요리 하는걸 좋아하니까 식품영양학과를 가는게 어때?” " 학교 선생님은 방학도 있고 얼마나 좋아?" 이렇게 자꾸만 나를 미술이 아닌 다른 직업군으로 유도하려고 했다. 한 사람의 미래가 담긴 큰 결정을, 아니 사랑하는 딸의 미래가 달린 결정의 기준이 ‘돈’이었던 거 같아 속상했다. 돈이 많이 드니까 안되고 돈 벌기 힘들 거 같으니까 안된다는 것이다. 돈 벌기는 어떤 직업이든 힘들다. 결국 고통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니까. 직업의 종류와 고통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고통이 크냐 육체적인 고통이 더 크냐 하는 것도 수치화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결국 뭘 선택해도 힘든 '돈 벌기’는 좋아하는 일로 해야 그래도 덜 힘들고, 힘들더라도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데 이 사실을 나도 너무 늦게 알았다. 돈이 빨리 안되니까 버티지 못하고 하고 회사에 취업했고, 성과에 상관없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니 좋아하지 않는 일로 너무 힘들게 돈을 버느라 나의 20대를 다 써버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회사를 퇴사하고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하지 않았다. 당장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당장 나에게 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인생은 마라톤처럼 긴데 100m 달리기처럼 생각했다. 혹시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중요한 건 행복이야. 정말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버티지 못하고, 취업하고, 돈이 될 만한 일을 찾느라 방황 아닌 방황을 했을까?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돈은 중요하다. 지금의 나 역시 여러 가지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런 수익 구조를 만들어 놓으려고 하는 이유는 ‘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돈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 돈을 두려워하다가 시간의 마법을 누리지 못했다. 돈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꿈에 다가가다 가도 다시 내려오게 했다. 어쩌면 한 발짝만 더 내디뎠으면 꿈에 내 손가락 끝이 살짝 닿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낙담하긴 이르다.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지금부터 라도 한 발자국씩 내디디면서 손을 뻗어 봐야겠다. 아, 이미 한발자국 정도는 내딛은 거 같다. 며칠 전 내가 일러스트를 그리고 디자인한 드립커피백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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