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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Mar 12. 2024

외로움이 질병이라고요?

외로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외로움은 인간이 느끼는 흔히 감정 중의 하나이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을 극복하고 감당하는 건 개인의 몫인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심리치료사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2018년부터 영국은 '외로움부'를 만들고, 외로움 장관을 임명했단다. 네? '외로움부'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이와 가장 가까운 부서를 찾으라면 보건복지부 정도일 텐데, 보건복지부에서 국민의 외로움을 눈곱만큼이라도 신경이나 썼던가 말이다. 


영국은 외로움을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았다. 영국의 국립병원 소속 지역 심리치료센터가 구마다 두 개씩 분포되어 있다. 만약 내가 사는 물금읍에 2개의 심리치료센터가 있다면 어떨까? 혹 외로움이 커지거나 마음이 우울할 때 치료를 위해 언제든지 찾아갈 곳이 있어 주민들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물론 스스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갈 수 있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느낌은 없다.


외로움은 담배 15개비를 흡연하는 것만큼 신체에 나쁜 영향 미친다(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담배는 일반적으로 건강에 백해무익하고, 끊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에 반해 외로움을 질병이라고, 사회가 앞장서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영국 국민들에게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나약하다는 편견이 퍼져 있었다. 오랫동안 캠페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외로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려고 노력했다. 우리 사회에도 아직 외로움이 사회문제라는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 왠지 누군가가 외롭다고 말하면 '너만 외롭니? 나도 외로워. 살기 바쁘면 외로울 시간이 어디 있니?'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가 외로움을 얘기할 때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온다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다. 그 경우 외로움은 내면에서 자꾸 커져서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마음의 거리도 멀게 했다. 요즘 들어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단지 살만해서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생긴 건 아니다. '단절'되고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이 들려오지 않고,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어진 대립구도가 많다. 그 상황에서 소수의 의견은 들어갈 자리가 없고 가볍게 무시된다. 또 세대 간의 단절도 크다. 농경사회였을 때는 더 오래 산 분들의 경험과 지혜가 아주 중요했는데, 현재는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은 인터넷이나 AI가 알려준다. 굳이 그분들의 조언을 구하고 경청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변화한 기술은 바로  디지털이다. 유선전화에서 삐삐라 부르던 소형 무선호출기를 지나 현재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다(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의 변화 속도에 맞춰가지 못하는 사람은 또 소외된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식당의 직원이 키오스크로 대체되었다. 사용 방법을 알고 나면 별거 아닌데, 기계를 상대하는 것이 두렵고 어려운 분들이 많다.


SNS에서 보이는 다른 이들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과 비교하면 나는 또 외롭다. 소외되지 않으려면 그들처럼 여행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근사한 물건을 가져야 한다. 그게 과연 얼마나 오래 나를 외롭지 않게 할까. 남과 비교해서 느끼는 행복감,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내 안에서 나온 이유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내가...... 해서 행복한 것이지, 내가 저 사람보다 나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대치가 높고 경쟁이 심하다. 누구나 1등을 할 수 없고,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데, 승자를 빼면 그저 패자여야 하는 걸까. 뼛속까지 침투한 자본주의 덕분(?)에 돈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겉모습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남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느끼고 싶고, 한편으로는 무시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정말 돈과 성공만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할까.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숫자가 점점 많아진다면 이는 분명 사회적 문제가 된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바란다, 이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목표로 하는 행복한 삶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세계 9위, 10위 경제대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들 행복한가? 이제 물질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넘쳐서 문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아끼고 돌보는 것이다(여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나를 챙기는 마음에서 나온 힘으로 내 옆 사람을 돌보는 것이다. 내 옆 사람, 즉 '우리'의 범위가 커져갈 때, 피하고 싶은 외로움은 점점 작아질 테다. 서로를 돌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자주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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