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필요한 순간>/김현철 교수의 이론을 빌리자면 우리 삶의 80%가 '운'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뜨악하실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잘 나가는 교수님이 '겸손 '을 가장한 교만한 인사법인가 했습니다.
반항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밤잠 안 자고, 남들 놀러 다닐 때 방구석에 처박혀 머리 싸매고 씨름하던 시간은 어쩌라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일수록 내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뻐기는 세상인데 그것이 다 '운빨'이라고? 뒤통수를 왕복으로 두들겨 맞은 이 느낌! 몹시 화가 나더군요.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의 이론을 빌리자면 '언제,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50%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를 낳은 부모로부터 받은 DNA와 키울 때 주어지는 환경 등의 요소가 30%라고 하고요. 그리고 10%는 친구, 은인, 지인들 등 우리 삶의 오고 가는 우연적인 인연들이 차지하고요. 그의 이론으로 보면, 이미 엄마 뱃속에 있을 때 80%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의사로서의 경력을 가졌던 사람이었고, 좋은 경제 정책이 많은 사람을 살 릴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우기고 싶은 마음을 서서히 몰아내고 설득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무릎 꿇게 했습니다. '그랬구나, 운이었구나!' 이런 운에서 소리 없이 밀려난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하는 거구나. 간판값으로 먹고살았던 누군가는 더 겸손해져야 하는 거구나.
미술사에도 김교수님의 말처럼 '운'이 따따불로 걸어 들어온 천재화가가 있습니다.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입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된 한 국가가 아니라 여러 공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우르비노 출신입니다. 그곳은 시골이었지만 움브리아(Umbrial) 예술이 꽃피던 곳으로 르네상스 문화의 선구적 역할을 한 곳입니다. 교황으로부터 공작 작위를 받은 페데리코 3세 가 자리를 잡고 있던 곳입니다. 자신의 궁전에서 시인, 화가들이 맘껏 실력을 뽐낼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움브리아 예술: 경건한 종교심을 반영한, 온화한 자연과 감미로운 인물을 합리적으로 구성시킨 독특한 종교화로 15세기말에 널리 인기를 모으다.
라파엘로는 당시에 예술을 주도하는 피렌체와는 좀 떨어진 우르비노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궁정화가인 아버지 조반니는 라파엘로에게 그림의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당시 우르비노 궁정에서 유행하던 인문주의 철학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인문주의 철학을 통해 라파엘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적 유산과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사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조기교육을 받은 셈이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 젤로보다 훨씬 빨리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니까요.
하지만 8살, 12살 때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제인 숙부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지역 최고 화가였던 피에트로 페루 지니(Pietro Peragino 1446-1523)의 수습생으로 보내집니다. (17살 이전 추측)
그림1.로마냐와 우르비노 지도/wikipedia그림2. 15세기,이탈리아 행정지되및 도로지도/행복공작소
라파엘로가 37세로 단명한 천재화가라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의 활동시기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1. 우르비시기:피에트로 페루 지노(Pietro Peragino 1446-1523)
2. 피렌체시기 :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미켈란 젤로(1475-1564)
3. 로마시기
교황 율리우스 2세(1443-1513)
교황 레오 10세(1475-1521)
라파엘로의 첫 번째 스승님 피에트로 페루 지노(Pietro Peragino 1446-1523)는 당시 수습생이었던 젊은 라파엘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스승 페르지노는 피렌체의 베로키오(Verrocchio)를 사사하며 보티첼리(Botticelli)와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또한 조토(Giotto)와 함께 근대 유럽회화를 바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에게서 원근법과 공간감을 익힙니다.
당시 피렌체의 회화 교육은 무엇보다 교회나 풍경, 환경 등 실물의 복제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이는 모든 회화적 기술을 습득하는 기본 활동이었고요. 종종 시체를 직접 연구하고 광범위하게 해부학적 조사를 했는데, 당시 피련 체 파는 화질과 윤곽선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스승 페루지 노는 9년간의 수습 과정을 마치고 정식 화가가 되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스승 페루 지니의 특징은 형식미와 우아한 소묘, 밝은 색감과 풍부한 명암의 분배 그리고 숙달된 원근법입니다. 깨끗한 구성감과 명화 같고 우아한 빛으로 가득한 색감은 균형 잡힌 공간미로 표현됩니다. 1483년 메디치가의 여름 별장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엄청난 유명세와 인기를 누립니다. 어느 날 그의 공방에 한 젊은이가 그의 화풍을 배우고자 나타납니다. 라파엘로는 그의 스승 페루지노로부터 조화와 침묵, 부드럽고 미묘한 색감, 세심한 원근법, 섬세한 우아함과 달콤한 우울함으로 가득 찬 인물상 그리고 이상적 균형을 스승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림1. <빈도 알토비티의 초상(Portrait of Bindo Altoviti),1515/허프포스트코리아그림2.<진주귀걸이를 한 소녀,1665>나무위키
작가님들의 시선이 어디에 먼저 꽂힐지 궁금해집니다. 그림 2.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요.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17세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신비롭고 수수께끼를 지닌 그림이지요. 나란히 놓고 감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실어봅니다. 알 듯 말듯한 미소, 화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눈, 어둠으로 가득 찬 배경까지 북유럽의 모나리자 답게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림 1. 탐스러워 보이는 금발과 초록빛 눈, 신비로운 표정을 지닌 남자를 그린 라파엘로의 작품입니다. 한 때는 라파엘로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그림값이 치솟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손은 타고 다시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림이라는 이야기가 나돌며 그림의 값어치가 고꾸라 졌습니다. 그러다 제작기법 조사 등을 통해 라파엘로의 그림이 맞다고 판명이 되어 명예회복을 하게 된 우여곡절 초상화입니다.
라파엘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이고요. 1514년경에 그린 피렌체의 젊은 은행가 빈도 알토비티(Portrait of Bindo Altoviti)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파엘로 전기에 따르면 빈도 알토비티는 당시 부와 권력을 거머쥔 피렌체 상류층이었습니다. 라파엘로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청년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아꼈다고 합니다.
보통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가 아니라도 인물화를 그리다 보면 자신과 비슷한 점을 그림에 투사하게 됩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입니다. 라파엘로의 초상화는 거슬리지 않고 매끄럽게 다가옵니다. 자신의 개성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점이 라파엘로가 가진 천재성입니다. 그의 이런 천재성 덕분에 우리는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아닌 그림 속 주인공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그림1. <발다사레 가스틸리오네 초상>1515/위키백과그림2.<렘브란트 자화상1606-1669>/pinterest
온통 무채색으로 둘러싸인 초상화입니다. 푸른 눈동자가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고요. 단정하게 눌러쓴 베레모, 자신의 신념을 기른 듯한 턱수염, 그리고 얌전하게 모은 두 손 등 고귀한 신분을 드러냅니다. 흰색 블라우스와 깃 높은 검은색 상의 그리고 회색 모피를 두른 모습은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입니다. 곧고 온화한 외유내강의 선비를 보는 듯합니다. 고귀하면서도 질서 있는 느낌이 드는 초상화이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의 포즈랑 비슷한 느낌도 듭니다.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루브르 미술관 소장 작품입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발다사레 가스틸리 오네(Baldassare Castiglione)라는 궁정인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군주가 사는 성 안에서 정치가, 예술가, 문학가 등 다양한 역할을 겸비한 르네상스형 인재상이죠. 이탈리아 외교관이자 문인으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상적인 궁정인의 처신에 관한 책을 썼고, <궁정인>이란 타이틀을 단 책을 썼고 유럽 상류 사회의 필독서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라파엘로는 이 초상화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 가장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초상화에는 분명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사람의 인품도 담길 테니까요.
그림 2.17세기 네덜란드 최고로 꼽히는 빛과 그림자의 화가, 렘브란트(Rambtandt Harmenszoon van Rijn, Dutch, 1606-1669)의 <자화상>입니다. 30대 초상화가로 절정일 때 그려진 초상화입니다. 그는 자화상을 유독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30대, 40대, 50대, 그리고 60대...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도 드물죠.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치열한 자기 성찰의 흔적인 셈이죠. 영광스러운 모습뿐만 아니라 늙고 추해진, 그래서 더 잃을 것도 없는 불행해진 모습까지 그대로 남긴 화가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빛을 찾았지만, 자기 생에 남겨진 그림자도 놓치지 않았던 화가입니다.
그림 1. 견승생 Raphael그림 2. 스승 Perugino <The Marriage of the Virgin>/pinacotecabrera.org
다른 제자들 중에
라파엘로처럼
스승이 가르치는 것들을
흡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술가 뵐플린-
라파엘로는 특히 원근법을 강조하는 것과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 인물과 건축물 사이의 관계 등에서 페루 지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인물을 배치할 때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등 자신만의 형식을 개발합니다.
라파엘로가 스무 살 무렵에 그린 <마리아의 결혼> 작품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진 페루 지노의 작품과 전체적인 구성이 비슷합니다. 간결하고 우아한 선들, 감성이 풍부한 얼굴, 고요하고 순순한 분위기 등 페루 지노의 독보적인 표현법이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멀리 보이는 건축물과 깊이감이 잘 표현된 공간은 스승과 제자가 고전 건축은 물론 원근법에도 통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스승 페루 지니의 결혼반지를 끼워주는 이 소박한 장면을 재치 있게 연출합니다. 요셉과 더불어 몇몇 구혼자들은 나뭇가지를 들고 마리아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선택했고요. 화가는 요셉의 나뭇가지에만 꽃과 나뭇잎을 그려 넣어 그가 마리아의 특별한 베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선택받지 못한 청년들 중 한 명이 실망감에 나뭇가지를 꺾고 있고요. '에이~, 꽃도 못 피는 나뭇가지 부러뜨려 버릴 테다.' 하는 식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라파엘로는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이런 인물을 오른쪽 귀퉁이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런 변화로 고요한 화면에 생기와 잔잔한 활력이 스토리와 함께 더해집니다.
이밖에도 라파엘로는 스승의 장점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몇몇 변화를 주어 좀 더 흥미로운 화면을 만들어 냅니다. 우선 그는 후방에 보이는 건축물의 크기와 모양을 변화시킵니다. 좀 더 작아지고 원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그려집니다. 이 건축물은 더욱 이상적인 형태가 되었고, 넓은 하늘을 열어 주어 보다 여유로운 배경이 생겨났습니다.
라파엘로는 성모와 요셉의 위치도 바꾸었습니다. 주례를 보는 사제의 상체를 약간 옆으로 기울여 그렸습니다. 사제의 고개가 기울어지면서 사제와 마리아의 머리 사이에 공간이 생겨났고, 그로 인해 마리아의 얼굴이 더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한편 마리아가 왼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마리아의 오른팔이 전면에 오게 되어 반지를 기다리는 손에 더욱 시선이 모아집니다. 또한 그림의 주제를 상기시키는 성모의 결혼반지가 화면의 중심에 놓이게 되고요. 라파엘로는 이렇게 작은 변화들로 스승을 뛰어넘는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_Guv2Mk1E0
<아테네 학당>/아트 앤 샵
그림1<.아테나 학당>1509-1511/나무위키그림2.라파엘로와 아테네 학당 인물들/jjong.info
스승에게 독립한 라파엘로는 예술의 메카인 피렌체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 무렵 메디치 가문은 몰락했고 피렌체는 더 이상 예술의 중심지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로마에서 대규모 공사를 벌이며 예술가들을 영입하고 있었습니다. 우르비노에서 갓 상경한 라파엘로를 로마로 이끌어 준 사람은 같은 고향 출신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1514)였습니다. 그는 건축적 재능만큼이나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브라만테는 성베드로 성당을 새로 짓는 대사업을 주도하며 작업에 참여할 예술가들을 직접 불러 교황에게 소개했는데 그중에 라파엘로도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라파엘로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가상공간에 모았습니다. 그림에서 라파엘로는 몇 개 안 되는 계단으로 공간을 분리시켜 화면을 안정적으로 나눕니다. 계단 위에선 플라톤(중앙에 붉은 망토를 두른 인물), 아리스토텔레스(푸른 망토를 두른 인물)를 비롯한 인문 철학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계단 아래에는 피타고라스(왼쪽 하단에 큰 책에 메모를 하는 인물), 유클리드(오른쪽 하단, 컴퍼스를 들고 석판에 도형을 그리는 인물)와 같은 수학자들과 자연철학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연구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개처럼 거리에서 살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관람자의 시선을 중앙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림 속에 유독 2명의 젊은 남녀가 관람객의 시선과 마주칩니다. 별이 반짝이는 천구를 한 손으로 받쳐든 조로아스타(Zarathushtra), 지구를 두 손으로 든 사람 천동설을 주장한 푸토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 사이에 관람객을 응시하는 라파엘로의 시선을 느끼실 겁니다. 왼쪽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의 시선 또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로마 시절 자신의 연인이었던 마리게리타 루타를 그림에 슬쩍 넣었습니다. 당시 교황의 초상화를 그리던 라파엘로와 제빵사의 딸이었던 그녀는 신분의 차이로 맺어질 수 없었습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라파엘로를 권력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지요. 추기경의 조카딸과 약혼을 한 상태였고 계속 결혼식을 미루다 미혼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The Sistine Madonna>,1512/GeorgianaBoothby
전체적으로 우아함과 아름답고 경건함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 분묘를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이 작품은 처음에 이탈리아 피아첸차에 있는 성 식스투스 수도원에 있다가, 작센의 아우구스투스 3세에게 기증되어 현재는 독일 드레스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성모를 주제로 그린 대부분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삼각 구도의 조화화 균형은 감상자들의 마음을 차분하고 경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왼쪽의 교황 식스투스 1세가 신앙심 깊은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성녀 바르바라의 모습이고요. 성녀는 아래쪽의 아기 천사 푸토들을 평화롭고 따뜻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초록 휘장이 걷히자 이제 막 등장한 듯 구름 위에 한 발을 떼신 성모님과 아기 예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모님 얼굴에 신성함과 인간적 슬픔도 보이고요. 예언자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팔에 안겨 있다기보다 오히려 팔에 기댄듯한 포즈를 취하신 아기 예수님 모습입니다. 신처럼 앉아 우리를 마치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희뿌연 배경 속에 죽은 자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묵직한 주제인데 라파엘로 특유의 통통한 아기 천사들 표정으로 무게 중심을 잡습니다. 아기천사들이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하기도 하면서 기다리자니 따분한 듯한 표정입니다. 옆 집 아이에게 볼 수 있는 표정 같아 실감 납니다.
자신이 태어날 나라와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요. 라파엘로는 움브리아 예술이 꽃피던 우르비노에서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까운 곳에 스승이 있어 기본기를 다졌고요. 벽화 배틀을 할 정도로 르네상스 시절 당대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 젤로의 예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 냈습니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는 데 겁이 없었고요. 실력과 인성을 겸비했던 라파엘로는 건축가이자 고향 우르비노의 출신이던 도나토 브라만테의 도움을 받아 로마로 입성합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황 율리우스 2세와 교황 10세의 후원을 받았고 그들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김현철 교수의 이론을 대입하기 이만큼 안성맞춤의 인물도 없을 것 같습니다. AI로 예술가들의 효용성이 의심받는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모를 일이 고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느 부분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 그림:<의자에 앉아 있는 성모>/경북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