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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star Aug 09. 2024

0.2. 신입 눈에 비친 공기관 노조 지도부의 첫 얼굴


 입사하고 들었던 여러 황당한 얘기 중 가장 이상스럽고 몰상식하고 심지어 한심하다고 생각한 건 입사 첫주 노조와의 대화 자리에서 나왔다. 일곱명의 신입 직원을 놓고 노조위원장이라는 작자의 첫마디는 "노조의 목표는 기간제를 조합에 받지 않는 것이다" 였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인권 변호사를 꿈꿨던 사람이다. 조르조 소렐을 읽이면서 주5일제를 전제로 한 일 8시간 노동을 위해 20세기 초반 프랑스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을 배웠고 해럴드 라스키에게서 미국의 경찰 노조 창립에 관한 이론적 정당화를 배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람.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저 하단에 있는 기간제 근로자는 통상 보호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조합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은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지여야 하는데 신입직원들을 앞에 놓고 말한 첫 일성이 그들을 보호의 영역에 포함시키지 않는 게 목표라니. 그들의 명분은 이거 였다. 뒷배로 들어오는 낙하산의 주요 경로가 손쉬운 기간제 입사고 이후로 정규직 전환 트랙을 탄다. 그리고  기간제는 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수요를 노조가 감당할 수 없다.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고 꽤 오래 회사의 선배들로 부터 그 말이 무척 정당한 말인양 하는 하는 견해를 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조리 틀린 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당시 노조와 지도부가 얼마나 졸렬하고 한심한 수준이었는지 수 천자로 설명하고 또 증명할 수 있다. 그무렵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런 말들이 맞지 않는 말이라는 걸 느끼는데는 특별히 많은 지식이나 경험이 요구되는 건 아니었다. 약자를 보호하고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할 노동조합이 감히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이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나는 일부러 욕설을 섞어 건방을 좀 떨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그 노조위원장이 내 눈에는 퍽 우습고 대단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저런 말을 신입직원 앞에서 하는 사람이란 더 볼 것도 없는 인생이다. 그게 내 평가였다. 후에 다른 자리서 나는 말했다. 한주먹 꺼리도 안되는 찐딴데 뭐가 무서워서?  나는 아직 산에서 내려온지 얼마 안 되는 야인이었고 사회인의 언어와 집단의 언어보다는 감각과 힘의 언어에 익숙했다. 그때 식사자리서 내가 얼마나 건방을 떨었던지 나와 같은 부서가 되는 당시 사무국장이던 이후 사수님은 내가 발령 받은 부서의 팀장에게 김성원이 온단다 큰일 난거 아니냐고 했다지. 


 일주일의 OT에 이어 부서에 발령 받았고 월요일 부터 수요일까지 휴가를 냈던 당시 사무국장 하던 사수는 목요일 아침에 날 보자 마자 농담 비슷하게 욕설로 맞이했다. 그 어설프던 초기 직장 생활 대부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술자리와 밥자리서 무엇이 틀렸고 어느 것이 잘못된 건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사수는 말했다. 니가 아직 사회 경험이 없어서 그래. 니가 조직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노조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나는 말했다. 틀린 건 틀린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나이를 먹고 조직생활을 하면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셋이고 또는 넷이라고 하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른이 되는 거고 마치 성숙해지는 거라는 둥의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다. 어쩌면 옳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가장 하찮은 개념일지 모른 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닌 걸 맞다고 할 만한 종류의 용기는 갖고 있지 않다. 후에 다시 말하겠지만 기간제의 조합 가입 문제는 조직 통합과 노조의 향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처음부터 기간제를 조합에 가입시키지 않는 정책이 틀렸다고 주장했고 그것은 명분론의 측면에서도 조합 운영의 실무 측면에서도 완벽하게 잘못된 정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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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간의 수습이 끝나고 바로 나는 노조에 가입했다. 나는 수차례 노조 집행부와 충돌했다. 나는 그무렵 단체협상이 무언지 임금협상이 갖는 실질적, 관행적 지위와 영향력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알아서 그랬나 싶지만 오래도록 길러온 반골 기질이 더 오래도록 자라온 분노의 언어는 손쉽게 활자로 쏟아져나갔다. 단체협상을 했다면 그 내용을 조합원에게 공유하는 게 조합원에 대한 의무 아닌가.  그토록 중요한 협상을 진행했다면 협상의 내용과 절차,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아니냐. 나는 조합원 자격 확보와 함께 얻게된 게시판 작성 권한을 그대로 활용했다. 입사한지 8개월 밖에 안 된 내가 쓴 게시글에는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실명으로 쓴 익명 게시판에는 나 뿐 아니라 많은 선배들의 불만이 함께 폭발했다. 회계장부는 왜 공개하지 않느냐 부터 소통 좀 하시라, 대화좀 하시라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부터 였던 것 같다. 옆 부서의 직원들 중 어떤 사람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갔고. 바로 전날까지 나와 담배를 피며 직장생활이 어쩌고 일이 어쩌고 하며 대단한 어른 흉내를 내더니, 이내 거리를 두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내게 응원의 말을 던졌다. 재밌는 건 그때 내게 응원의 말을 던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내 뒷통수를 쳤고 그때 내게 거리를 두던 사람들은 내가 무수한 공격을 당해야 했을 때 조용히 조언과 위로의 말을 더졌다는 것이다. 


 노조 집행부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댓글은 가관이었다. 직접 찾아오라는 둥, 조합원에게 일일이 설명할 의무가 없다는 둥. 나는 모욕과 조롱을 섞어 따박따박 반박했다. 하물며 대학교에서 조차 이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내가 졸업하던 무렵의 대학은 운동권이 물러났고 총학생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등록금 투쟁이 전부였던 때였다. 도덕적 선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회계 장부를 공개하는 일과 상향식 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 달성을 위한 아래로 부터의 의견 수렴을 제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첫 세대가 내가 경험한 학내 정치의 변화 였다. 나만해도 싸이월드 클럽을 적극 활용하고 접근성을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해 학생회 회계 집행내역을 공개 했고 내 돈을 쓰되 학생회비는 공적 용도로만 사용하는 걸 본능적으로 익혔던 터였다. 그런 대학생활을 지나고 회사에 왔더니 연단위 회계장부 공개는 말할 것도 없고 규약 공개 같은 법상 의무 사항도 준수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오랜 노조 생활과 인간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그랬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정말로 누구에게 실망할 만큼 인생을 다 던져 자기 일을 다 했는지는 지금 와서 보면 아마도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민주적 제도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었다. 공공기관에 들어오는 심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제압하고 짓밟을 수 있는지를 체득했고, 본질적으로 인간과 그 권리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감을 갖고 있지 못한 무리들이었다. 


 온라인상 몇 번의 다툼과 총회에서의 오프라인 다툼이 이어졌다. 나는 또 조목조목 반박했다. 나 또한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으로서 일정한 주의주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합원의 총의로 작동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나는 몰상식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마주했다. 모욕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성경의 말을 옮기자.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기네 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자들의 말들에 상처 입을 만큼 나는 유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을 혐오할 이유가 내겐 없었다. 다만 내가 속한 이 조직의 수준과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조합 총회때 입사한지 9개월 밖에 신입이었던 나는 발언권을 얻어 단체협약 부터, 임금협상, 조합 운영에 있어 민주성 부족을 공격했다. 위원장은 퍽 감정적인 말로 나를 자극 했지만 그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총회자리서 거의 끌려나오듯 쫓겨났고 이어서 온갖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사수 형님에겐 부사수 관리 똑바로 하란 또다른 내리까임이 이어졌다고 한다.


 150여명 밖에 안 되던 당시, 전직원이 함께했던 연말 회식장소에서 나는 적어도 서른명 정도로 부터 비난을 받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게 까분다. 네가 그렇게 잘났느냐가 대부분의 골자였다. 너 역시 이 수준 밖에 안돼 여기 와있으면서 잘난체 그만해라도 있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후에 알았지만 나보다 입학점수가 한참 낮은 학교 출신이었다. 나는 그 모든 말들에 어떤 모욕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 때문이지.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는 게 뭐가 문제인건지. 나에겐 이론과 법률이 있었다. 당신들 보다 훨씬 오래도록 공부해온 학자들이 켜켜이 쌓아올린 정치와 법률 이론이 있었다. 법철학과 윤리학, 정치철학 이론이 있었고 현대 민주주의제도가 발전돼온 방향과 경향성 그리고 제도들의 근간이 되는 이론들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누구는 내게 용기를 말했지만 선명한 지식 앞에 다른 설명은 불필요 했다.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절차와 위계, 그것들이 규범력이 어디서 확정되는지 따위. 저들의 모든 말들은 이상했다. 정말로? 이거 밖에 안 된다고? 새로운 체계에 들어온 외부인인 내게, 그리고 여전히 외부인인 내게 이 모든 것들은 감정의 영역이 아닌 이해의 영역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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