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이라는 연구실에서 늘 초심자의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고 실험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글로 쓰고 있다. 내 연구실의 이름은 'Beginner's Lab'이다.
Beginner's Lab이 첫 발을 뗀 데는 붙잡을 수 없이 떠나가버린 세 사람과의 이별이 있었다.
처음 나를 떠난 이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어린 학생이었다. 나는 왕따였다. 학창 시절 사소한 다툼은 괴롭힘이 되어 돌아왔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픈 동생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참고 견뎠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글이었다.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았고, 나의 글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국어국문과 원서 접수를 며칠 앞두고 진로가 완전히 바꼈다. '중학생 자살사건'. 학교폭력과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뉴스를 보며 처음에는 마음이 아팠고, 다음에는 마음이 저렸다.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아픔을 느꼈다는 사실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12 월 20일. 나는 어떻게든 견뎌냈기에 생일을 맞이했는데, 그 친구는 그 날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탔던 엘리베이터에 쪼그려 앉아있던 친구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나를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단 한 명만이라도 나를 통해서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도와야겠다고. 사범대를 졸업하고, '내 등에 기대(등대)'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좋은 뜻' 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방황할 때, 두 번째 이별을 맞이했다. 삶의 방황에서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은 어릴 적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였다. 너무 지친 어느 날은 할머니 무릎에 누워 엉엉 울었다. '우리 강아지, 힘들어 어짜노'하시며 함께 울어주시던 할머니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눈 맞춤에 함께한 지난날이 모두 담겨 있었다. 울지 않았는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삶의 어느 날에도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음이 슬펐다. 더 이상 삶이 고단하여도 찾아가 울 수 있는 곳이 없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몸을 누일 무릎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내게 남겨주신 것은 슬픔과 그리움이 아니라 삶의 의지였다. 생전에 만난 모든 인연에게 베풀고 떠나신 할머니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게 또 다른 가르침이었다. 늘 베풀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교육 협동조합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글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열심히 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 한편에 이름 모를 불안이 지워지지 않았다. 불안은 사라지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나를 위협했다. 용기와 불안,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던 어느 날, 세 번째 이별을 맞이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 준비를 하던 나는 밖에서 큰 짐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근처 공사장에 사고가 났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출근 준비를 마친 나는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와 마주했다.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차로 향하더 내 앞에 떨어져 있던 그의 구두에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직 귓가에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맴돌았다. 견딜 수 없는 막막함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생각이란 것이 들었다. '왜 하필 우리 아파트였을까?, ' '왜 하필 그때 었을까?', '왜 하필 내 앞이었을까?' 아빠 말론 아파트 사람도 아닌 젊은 청년이 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연고 없는 그의 투신을 비난했지만, 나는 슬펐다.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도 위로가 필요했으리라. 그가 떠난 삼일째 되던 밤, 집으로 돌아가며 술 한 병과 잔을 샀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피해 현관에 섰다. 나 한잔 그 사람 한잔을 채우고선 말했다. "편히 쉬어요. 다 잊고 편하게. 좋은 곳에 가서 아프지 말고. 나는 여기 남았으니 당신 몫까지 더 열심히 살게요. 내가 필요한 사람에게 손 내밀어 줄게요. 그러다 내가 너무 지칠 때는 당신이 저 좀 지켜주세요." 다짐과 같은 말을 내뱉으며 한참을 서 있었다. 한잔은 내가 마시고, 그 사람 것은 뿌려줬다. 남은 술도 다 뿌려주고, 집에 돌아와 잠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벌떡 눈이 떠졌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가 잘 간다는 인사를 하는 듯 느껴졌다. 그가 떠나고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일단 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마음껏 도전하고, 사람들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느려도 괜찮고, 대단한 성과가 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의 순간을 쓰고, 누군가 그것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