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올리는 글
이제는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코로나가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중국의 일이겠거니 했던 것이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었고, 스웨덴에서 살고 있던 나는 그 한국의 상황조차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과 유럽에도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고, 국제적 위기상황이 되고 말았다. 3월에는 설마 코로나가 가을까지 가겠어 라고 생각했고, 가을에는 설마 크리스마스 가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발 내년에는 종식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는 스웨덴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갈등을 조장할 수 있을 얘기를 의도적으로 좀 꺼려왔다. 헬조선이라느니, 남녀 차별이라느니 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분명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키보드 워리어 경력이 긴 탓에 인터넷에 그런 글을 올렸을 때 오는 파장을 많이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에 대한 스웨덴의 대처에 대해서도 지나가듯이 언급을 한적은 있지만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진 않았다.
그런데 요즘에 내가 접하는 유튜브나 인터넷 사이트에 스웨덴의 대처라고 해서 올라오는 매체들은 자기 합리화를 함과 동시에 욕할 대상을 찾기 위해 올리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가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욕을 하고 있음에, 사실은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오늘은 코로나를 중심으로 스웨덴에서 일어나고 있는 2차 웨이브에 대한 내 생각과 근황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혹여나 내 글을 읽고 이상한 악플이 달리거나 싸움이 일어나는 게 두렵긴 하지만,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써보려고 한다. (내 멘탈보호를 위해 나중에 삭제할지도...)
많은 언론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스웨덴의 "집단 면역"을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스웨덴은 공식적으로 집단 면역을 추구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이 오해는 현재 존재하는 독감과 비슷하게 궁극적으로는 집단 면역 상태가 되어야 바이러스를 말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에서 시작한다. 이 말이 사람들이 집단 면역 상태가 되기 위해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전파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이 두 말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리고 스웨덴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스웨덴을 "집단 면역"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서 스웨덴이 어떤 조치만 취하면 "집단 면역 방식 포기"라는 키워드를 잡는 것은 너무나 악의적이다. 스웨덴은 초기부터 방역 본부의 발표는 지금은 느슨하게 조치를 취할지라도 이 조치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아주 당연한 얘기이다. 한국도 확진자의 수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레벨을 조절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놀리는 수준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스웨덴이 잘하고 있나?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애초에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방역이라는 건 경제와 안전 사이에서의 줄다리기이다. 또 당연한 얘기지만,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던 초창기부터 모든 출입국을 막았다면 아마 바이러스의 원천 봉쇄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청난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방역 조치라는 것은 얼마나 막을 것이냐 얼마나 풀어줄 것이냐 그 선을 정하는 싸움이고, 그건 정답이 없다.
단지, 스웨덴은 국가 상황 (인구 밀도나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른 나라보다 느슨한 선을 정한 것뿐이다. 그로 인해 많은 환자가 발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것을 틀렸다 라고 말하기에는 상황을 너무 일차원적으로 보는 태도이다. 만약 극단적인 봉쇄, 이동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서 일일 확진자가 0명이 되었다면, 그걸 잘했다고 말해야 할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생각해보면 그걸 잘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나는 스웨덴의 이런 느슨한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코로나로 인해 직장이 잘릴 위험도 없으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그것보다 내가 출퇴근을 할 때나 마트를 다닐 때 코로나 감염을 걱정해야 하고, 친구들과 모임을 못하고, 여행을 못 가는 불편함이 있으므로, 한국과 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하루빨리 코로나 종식을 향해 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건 내 이기적인 생각이고, 나와 다르게 봉쇄조치로 인하여 직장을 잃거나 하루하루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할 테니, 난 스웨덴의 결정이 틀렸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웨덴은 여름, 가을까지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를 유지해갔다. 많은 전문가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방역 방식인 flattening curve에 매우 근접한 상황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출근도 했고, 대면 강의도 진행했으며, 정상적으로 학생들과 만나 실험수업도 진행했다. 학교는 천천히 코로나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를 함에 따라 경각심이 풀어진 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태까지 억눌려있던 욕망을 분출하듯이, 대규모 파티가 여기저기에 열렸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150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했지만, 학생들은 그걸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 바이러스가 대규모로 확산되었다. 이건 학교의 조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으나, 학교의 느슨한 정책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건 사실이었고, 학교는 다시 한번 정책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1월이 시작하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등의 유럽 국가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가까운 나라인 스웨덴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서 식당, 펍 등의 시설 이용에 대한 제한이 생기고, 여러 가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생겼다. 다시금 학교는 문을 닫았고,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만 학교에 등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지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래도 실험 수업의 경우 온라인으로 할 수 없으므로, 실험에서 실질적으로 회로를 조작하는 부분만 오프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것도 질문은 온라인으로 하라고 권고하고, 오프라인은 실험의 pass/fail를 확인하는 정도만 진행한다.
여름에는 virtual conference를 몇 번 참석하였다. 원래는 해당 국가에 가서 학회에 직접 참석하고 발표를 해야 하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온라인으로 학회를 진행했다. 발표는 미리 녹화를 해서 발표를 하거나, 현장에서 zoom을 통해서 발표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이 처음 학회에서 발표하는 경험이었는데, 첫 경험이 온라인이라니 조금 맥이 빠지긴 했다.
미리 녹화를 하는 거니까 실시간으로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부담이 덜 하긴 했다. 대본을 미리 써두고 보면서 읽을 수 있으니까. 다만, 녹화한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계속 다시 하고 다시 하고 몇 번을 반복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 잘되든 안되든 한 번에 끝나는 게 오히려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 학회 참석하는 것도 많이 실망스러웠다. 나의 발표 (녹화된 영상)이 나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내 걸 보고 있는지, 이해는 하는지, 그냥 틀어놓기만 하고 딴짓하고 있지는 않은지 볼 수가 없으니 너무 답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 이후에 질문도 딱히 없었다. 아마 현장이었으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자가 억지로 질문을 만들어서 한두 개 질문을 해주는 것으로 내 발표는 마무리되었는데, 그 이후에 다른 사람들의 발표도 비슷했던 것 같다. 물론, 뛰어난 발표를 한 경우에는 질문이 많기도 했지만, 나와 비슷한 박사생들의 발표는 대부분 사회자가 한두 개 질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게 온라인 학회의 큰 단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연구를 그만할 수는 없으니, 계속 연구를 하면서 다른 학회에 낼 논문을 작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겨울에는 한국에 방문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건 포기를 했고, 연말은 스웨덴에서 외롭게 보내야 할 것 같다. 기나긴 겨울을 잘 이겨내고 내년에는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엔 사람과 대화를 정말 못하고 있다. 출퇴근을 할 때에는 지나다니면서 얘기도 하고, 수업 진행하고, 질문받고 대답하고 할 수가 있었는데,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모임도 딱히 없다 보니 대화를 할 일이 없다. 게다가 겨울을 진입하니 사람이 참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나마 한국을 가는 대신에 나에게 주는 선물로 게임용 컴퓨터를 새로 맞추었는데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아 여담으로 Study in Sweden에 우리 집에 대한 소개 영상이 올라왔다. 맨날 유튜브 한번 해볼까 생각만 하다가 막상 찍어보니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하하... 그래도 언젠가 유튜버가 되어보고 싶긴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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