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대답
* 평소 습관에 따라, 학원=아카데미를 혼용하고 있습니다.
게임 아카데미에서 코치로 일하던 시절, 유난히 신경이 쓰인 수강생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잘생긴 친구였고,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근무 1년차가 될 무렵, 평일 오후 반. PC방 같은 교실에서 다섯 명 남짓한 수강생들은 저마다 게임을 배우거나, 그냥 하기도 하며 제법 막역히 지내고 있었다. 나도 어색하게나마 그애들 학교 얘기나, 다른 학원에서 있었던 일(대체로, 오늘도 가기 싫다는 푸념) 이야기에 끼곤 했다. 게임이라는 구심점이 있으니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그애는 좀체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항상 말을 걸어보기 직전까지 고민하다 그만둔 듯한 분위기로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게임은 LoL(리그 오브 레전드, 롤)이었다. 프로게이머 지망생 교육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실상 호객 문구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나로선 게임을 잘하는 재주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투신한 일자리였고, 새로 들어온 수강생의 티어(게임 내 순위)를 올리는 일에는 늘 마음이 들떴다. 그애는 실버 티어였다. 고등학생인 그애가 지금 삼성에 입사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프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실버는 그 정도로 낮은 티어였다.
알고 있어요.
같이 게임을 보고 있노라면 그애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그것이었다. 그애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그래도 학원까지 다니면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그애에게는 없었다. 인게임에서 실수를 말하면, 이미 알고 있었다. 유급에 이르는 결석일수도 알고 있었다. 학원에서 주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나으리란 것도, 학원비가 무척 비싸다는 것도.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편으로 모르는 것도 많았다. 왜 학교에서 친구와 어울려 지내야 하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집에만 있게 되는지. 그나마 스스로 흥미를 가진 분야인 게임을 공부하는 것이, 피아노나 여타 다른 학원에 다니는 것에 이은 관성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다. 하나 마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편한 것들이 있다 하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게임 왜 진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기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을 때는 반가웠다. 그애는 지식으로 아는 건 많았지만, 실전에서는 항상 움직임이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갖가지 실수를 지목하고 있노라면, 드물게 그애도 생각지 못한 것을 짚을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납득하고, 때로는 코치인 나에게 조금 더 신뢰를 내어주기도 하며 다음 게임에 임하곤 했다. 그리고 남몰래, 나도 그렇게 했다. 그애 게임에는 나도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이 많아 공부가 되었다.
한 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다른 아이들의 시선에 그애와 나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게임을 하는 두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저 형한테 하는 것처럼 피드백 해달라는 수강생도 있었다. 그애는 학원에 오면 곧장 게임을 했다. 피드백은 거의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필요하면 부탁하겠다 말했고, 그런 일은 거의 생기지 않았다. 한 달쯤 시간이 지났을까. 그애는 에메랄드 티어가 되었다. 프로에는 여전히 한참 못 미치는 티어였으나, 눈 깜짝할 사이 다른 수강생들과 같거나 더 높은 티어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 즈음, 그애는 주변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또래도 있었고 동생도 있었다. 때때로 성인 수강생도 있어서 어색하게나마 말을 섞기도 했다. 주제는 물론 게임이었다.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보면 반가운 기색이었다. 같이 게임 하자는 제안도 곧잘 받아들이고, 그때까지 했던 말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수다스러워지곤 했다. 뿌듯한 기분이었다. 코치로서 너는 무엇을 했냐 물으면, 별 달리 한 건 없다고 답할 것이다. 그것이 그애에게는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잘하는 걸, 잘하게 두는 것.
아이가 코치님을 잘 따르는 거 같아요.
2년여 시간 동안 근무한 아카데미 근속일 중, 가장 자주 연락을 나눈 학부모는 그애의 어머니였다. 그애 어머니의 전화를, 나는 앉아서 받아본 적이 없다.
어떤 고무적인 성과도 관점을 달리 하면 게임 이야기에 불과하고, 아직 프로의 옷자락에도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인데, 항상 감사와 격려를 전해주시니 수화기 너머로도 허리가 숙여졌다. 다만 마음 한켠으로는 예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애가 학원에 오고 2개월차, 주변 아이들과도 제법 친해졌을 무렵이었다. 그 뒤로 오랜 시간 동안 그애는 티어를 올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반 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처음 1-2개월차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흔한 말로는 혈이 뚫린다고 표현한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핵심적인 무언가를 알거나 익힌 것을 계기로 갑자기 티어가 오르는 일이 있다. 이전에도 그런 수강생이 있었고, 학원이 아니더라도, 게임이 아니더라도 자주 있는 일이다. 그것을 그애에게 말해줬다.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학원에 와서, 코치에게 배워서 단시간에 급격히 티어가 오른 것이 아니었다. 원래도 그 실력에 가까웠던 것이 학원에서의 사소한 동기부여를 통해 겉으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애는 정체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1개월쯤 지나면 다시 티어가 오르리라 낙관하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방법을 시도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코칭 방식에 기대를 걸었다. 가장 만족스러운 게임을 복기하는 방식. 미흡했던 게임을 보며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강생 스스로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임을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생각지 못하게 부족한 점이 보이든, 아니면 처음 생각 그대로 훌륭했든, 어느 쪽이든 득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선 당연한 전제로서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끼는 게임이 필요했다. 그게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애는 자신의 모든 게임을 반성하고 있었다. 그 즈음이 되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이라곤 하나 뿐이었다. 쉬는 것. 재충전 하여 다시 최선의 컨디션으로 게임에 임하는 것. 학원에서 다른 게임을 해도 묵인해준다고 했으나, 그애는 그러지 않았다. 잠시 학원을 쉬어도 된다고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이는 휴식을 권한 것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그애가 아무 연락 없이 사흘 연속으로 학원에 결석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그애는 쭉 집에 있었고, 침대에 누워있다고 한다.
그 전화를 받을 때 나는 교실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이었고, 수강생들은 저마다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개중 몇 명은 집이 아니라 다른 학원으로 향한다. 나도 개인사로 바쁜 시기라 주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이들 가운데서, 그애가 가장 고생스러운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그애가.
사흘 뒤, 학원에 온 그애를 상담실로 불렀다. 내가 느꼈던 감각을 그대로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게임하러 왔고, 집중력이 좋았는데 이런 일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그애는 말했다. 맞는 말이었으므로, 집중을 깨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력했다. 그애가 자주 쓰는 자리 PC를 점검하고, 에어컨 온도를 그애에게 물어 정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좀처럼 티어를 올리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말없이 학원에 결석하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어느 날, 크게 혼을 냈다.
집중을 전혀 못하잖아! 네 눈에는 이게 노력하는 걸로 보여? 억지로 해봐야 소용 없어!
아무것도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고, 나도 그랬다. 그애가 학원에 온지 3-4개월 무렵, 학원 시스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거듭 쌓이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진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건 서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코치인 나는 그애를 혼내고 있었다. 그 즈음, 챌린저 티어를 달성했다. 게임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고 티어였으나,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학원에 왔잖아. 몇 판 집중할 수 있어? 세 판? 그럼 오늘은 세 판만 집중해서 하자.
어느 날, 도저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그애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듯한 기색이었고, 세 게임보다 많은 게임을 집중해서 해냈다. 나는 말 한 마디로 큰 인식의 변화를 일으킨 나의 코치로서의 역량을 자랑했다. 그애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대답했고, 그것이 한동안 자랑거리였으나, 3년 뒤 물어보니 그때 분위기상 그렇게 대답했다고 알려줬다.
그래도 챌린저 티어는 최소한 좋은 대화 계기가 되었다. 똑같은 피드백을 해도, 현재 최상위 티어인 사람이 하는 말이 되니 무게감이 달랐다. 가끔은 수강생들 동경의 대상인 유명 프로선수들을 상대로 만나 볼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정확히 내가 바라던 것이었고, 그애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서히, 유수와 같은 시간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기대주인 줄 알았는데, 에메랄드 티어의 토착민이 되어버린 사실을 농담 삼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널 점수의 망령으로 만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같구나.
그애는 특히 그 말을 마음에 들어했다. 점수의 망령. 득실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 점수를 올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을 우리끼리 부르는 말이었다. 이 게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점수를 올리고 싶은 나머지 타인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도 서슴지 않고, 때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점수를 벌기도 하는 사람들. 어쩌면 그애 눈에 코치가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4개월, 5개월. 시간은 흘러갔다. 여러 수강생들이 새로 들어오거나 떠나는 중에도 그애는 남아있었다. 줄곧, 조금씩, 천천히 점수를 올렸다.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 시기 나는 사비를 털어 빈번히 아이들에게 치킨과 피자를 사주곤 했다. 하루 수업을 빼먹는 비용으로선 비싸고, 시급을 생각하면 명백히 적자였으나 마음은 든든했다. 그런 한편으론 학원을 그만둘 때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애가 온지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다음 티어인 다이아 코앞까지 도착했다. 20연승, 혹은 더 후퇴해서 30연승을 해야 갈 수 있었던 다음 티어가 마침내 3승권, 2승권 안쪽으로 들어왔다. 단순히 운이 좋아도 달성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지만, 그 즈음 또 플레이가 흔들리곤 했다. 그냥 운이 좋아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걸 잘 아는 것이 도리어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실수도 있고 최선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충분히 다이아에는 갈 수 있다.
그러니까 다음 판 가자. 그것이 그 즈음 늘상 내가 옆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건네는 말이었다.
저 형이 다이아 티어를 달성하느냐. 그건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큰 관심사가 되었다. 하루하루, 언제 목표를 달성해도 이상하지 않으면서, 간발의 차로 놓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모두 그애를 응원했고, 나는 그애가 바라는 모든 편의를 봐주었다. 집에서 집중이 잘 된다고 하면 그렇게 해줬다. 오늘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숫제 반갑게 들렸다. 학원에서 집중이 잘 되어서 더 하고 싶다고 하면, 퇴근 시간을 늦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애는 다이아를 달성했다. 결국 학원에서 가장 집중이 잘 되는 듯 했다. 그날도 퇴근을 늦췄고, 덕분에 다이아 달성 순간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었다. 약속대로 다음 날 치킨을 사주기로 했고, 마지막 게임을 복기했다. 엉망인 게임이었다. 30분 정도 이어지는 게임에서, 10분까지는 기계처럼 완벽했으나 나머지 20분은 감기가 아니라 뭔가 꽤 중한 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하지만 팀이 분발하여 게임은 이겼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자그마치 반 년을 벼른 결과를 마주하며 우린 실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별 느낌 들지 않는다고 했고, 나도 챌린저를 찍을 때 그랬었다고 답할 수 있었다.
다이아를 찍은 뒤, 목적을 달성한 그애는 또다시 수다스러워져 있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나 생각했다. 나는 기꺼이 그 분위기에 편승했다. 근속일 막바지, 학원은 비밀스러운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랭크는 제쳐두고 다른 게임을 하고, 어떤 수강생에게는 내가 잘 못하는 FPS를 배우기도 했다. 내가 피드백을 할 때 으레 하는 말(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등)을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 사실이 그애를 포함한 다른 수강생들에겐 치킨이나 피자만큼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애가 다이아를 달성한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애는 다이아를 찍었다. 그럼에도 반 년 정체기를 겪었단 사실은 남아있었다. 화를 냈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으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일했던 곳을 떠나는 날엔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되어, 수강생 한 명 한 명에게 응원과 감사를 남겼다. 그애가 속한 평일반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이 코치로서 너희와 만나는 마지막 날이다. 이 학원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정말 값진 것이었고, 누구보다 너희에게 감사한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한 수강생은 눈물을 보였다. 그애는 울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난처한 기색이었다.
너무 축축한데요.
그 말에 내가 당황하지 않고 잘 대꾸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최소한 크게 혼내진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애가 보여준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른 수강생과 친해진 그애는 때로 농담 같은 걸 던졌는데, 별로 센스가 없었다. 프로가 안 되면 챌린저 찍고 방송이나 해볼까 한다는 말에 그 말재주로는 안 될 거라 대답했다. 프로가 더 쉬울 거 같다고. 다행히, 그애도 나를 크게 혼내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어느 시기였는진 기억이 나지 않으나, 문득 수업 중에 수강생들에게 누구한테랄 것 없이 물어본 적이 있다. 이대로 티어 올린 다음, 만약에 지금 내 자리에서 일할 수 있으면 어때? 이 질문을 할 적에, 나는 아마도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아르바이트, 학원 보조 강사 일자리가 아이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순전히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마음에 드는데요.
그애가 먼저 대답한 것이 뜻밖이었고, 내용은 더욱 그랬다. 그것이 그날 이후 내 사소한 동기부여가 됐다. 만약에 이 일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열심히 게임을 한 이들이 잠시 머물 자리가 된다고 하면 나쁘지 않다. 그리하여 내가 일한 곳은 언젠가 그애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되었고, 그러하다고 답한 수강생들의 대답은 학원을 떠난 뒤 내가 머물 자리가 되었다.
거듭 생각건대, 참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