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 무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를 속이는 것은 나쁜 일이고 정직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일상에서 꽤 많다고 한다. 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 그대로 나오면 좋겠다만, 말은 말을 만들어 내고, 그 말은 허구와 자만과 자랑을 만들어내는 것을 나 또한 익히 경험했기 때문에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동굴을 만들어 놓고 살지는 않았다. 해야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굳이 하지 않고 넘겨버렸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도 굳이 담아두지 않으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눈치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게도 해석 가능하겠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기보다는 말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말을 줄이고 시간이 흐르면 눈치란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었다.
말을 줄이는 방법에 있어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예외 적용이 되었다. 공공연하게 입을 열지 않아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쌓인 무언가를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로 풀었던 것 같다. 마음속 깊이 담아두어야 할 정도의 말을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함으로써 그 말들을 담아두지 않는 것이 어쩌면 하나의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되려 그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혹은 내가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여전히 솔직함이 무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함이 무엇인지, 정말 솔직한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또한 그 솔직함의 범주를 이제는 어디까지로 정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나 스스로 삭이고 삼켜야 하는 말들이 무엇인지,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는 차원에서의 해야 할 말과 아껴야 할 말들은 무엇인지 더 이상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들을 쌓는 것이 세월이 지날수록 쉽지 않음을 느낀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가기 전의 말들을 뱉고 나니 속이 시원했지만, 언제까지고 이럴 수 없음을 직감했다. 우리는 벌써 대학 졸업 후 떨어져 산지 거의 5년이나 되었다. 달라진 상황을 인지하고 언제까지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꽤나 큰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가 크리스챤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지금 이 시간을 버티는 것도, 외로움을 삭이는 것도, 풀지 못하는 말들을 풀어낼 수 있는 것도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버겁긴 하면서도 또 성장해나갈 여지가 있음에 감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