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여행_4일차
시간이 빚은 백색 궁전, 파묵칼레
4일차 오전_시간이 빚은 백색 궁전, 파묵칼레
터키 남서부의 도시 데니즐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붉게 달아오른 아침 햇살과
언덕 위로 비스듬히 누워 있던 하얀빛의 신비였다.
여행자들이 터키 3대 명소라 부르는 곳,
파묵칼레.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목화송이로 쌓아 올린 듯한 흰 성벽이
언덕 전체를 덮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눈 덮인 스키장의 슬로프 같기도 하고,
소금을 수북이 뿌려놓은 언덕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석회층은 얼음 결정처럼 한 올 한 올 얽혀
목화솜처럼 부드러운 결을 드러냈다.
햇빛 아래에서는 순백이었고,
온천수가 흐르는 곳마다 옥빛이 스며들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 풍경은 단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언덕 위에는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가 자리하고 있다.
로마 시대부터 이곳은 온천 치료와 휴양의 도시로 번성했다.
심장병과 신경통, 피부질환을 앓던 로마의 귀족과 병사들이
치유를 위해 이 언덕을 올랐다고 한다.
지금도 유적 곳곳에는 당시의 욕장과 극장, 묘지가 남아 있어
수천 년 전에도 인간이 ‘회복’을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를 말해준다.
히에라폴리스 아래에서는 지하에서 솟은 온천수가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채 경사를 따라 흘러내린다.
그 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석회가 차곡차곡 쌓였고,
그 침전은 무려 1만 4천 년 동안 이어졌다.
자연은 스스로 조각가가 되어
계단을 만들고, 웅덩이를 만들고,
부드럽고 불규칙한 선들을 빚어냈다.
물이 고인 곳마다 옥빛의 얕은 웅덩이가 생겼다.
온도는 약 35도, 발을 담그면 은근한 온기가 전해진다.
손으로 떠보면 물은 맑고 투명해 바닥이 훤히 보였고,
살짝 입에 대면 달지 않은 탄산수 같은 맛이 남았다.
이 물은 한때 직물을 희게 만드는 데에도 쓰였다고 한다.
칼슘과 이산화탄소가 만나 만들어낸,
자연의 느리고 정확한 화학작용이었다.
1988년, 이 독특한 지형과 히에라폴리스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관광객이 늘면서 석회층이 훼손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보존을 위해 맨발로만 입장이 허용된다.
신발을 벗고 흰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묘했다.
차갑지도, 미끄럽지도 않은 부드러움.
볼록볼록 솟은 지형이 발을 지압하듯 누르는데도
불편함보다 안도감이 먼저 왔다.
마치 이 땅이 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파묵칼레는 단순히 눈부신 풍경이 아니었다.
치유의 물과 시간이 만든 자연유산이었다.
석회층 위로 계절의 온도가 겹겹이 스며들고,
그 위에 인간이 세운 히에라폴리스의 폐허가 나란히 서 있다.
문명과 자연이 서로를 지우지 않고
조용히 겹쳐진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언덕 위에 서 있던 나는
지금의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2000년 전,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회복을 기도하던 로마인이었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1만 4천 년이라는 시간으로 빚어낸
‘물의 인내’를 배우는 이 시대의 학생이었다.
파묵칼레.
목화성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곳.
그 부드러운 흰빛과 옥빛은
눈과 마음을 천천히 정화시켰다.
그곳에서 나는 한 문장을 마음에 남겼다.
가장 단단한 것은,
가장 부드럽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