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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같은 소리하고 있네
by 안필런 Nov 29. 2018

당신 혹시 '프로야근러' 인가요?

다 필요 없다. 직장인은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

누군가는 나를 말렸어야 했다


회사 1년 차,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사팀에 제출한 근로계약서 도장의 인주가 이제 좀 마르려고 하던 입사 3개월 차. 나는 잠깐 미쳤더랬다.

그 당시 누군가는 분명 나를 말렸어야 했다.


우리 팀에는 사람도 괜찮고, 일도 잘하는 선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아주 유명한 ‘프로야근러’였다. (프로야근러 : 야근을 매우 자주 하는 직장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의 일과를 관찰해 보자면, 대낮에는 활동할 수 없는 드라큘라처럼 그는 일과시간에 대놓고 웹서핑을 하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 혹은 뭔가 계속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저 마우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하루를 보내기 일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둘씩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그는 비로소 살아난다. 아니 직장인의 모습이 된다. 낮보다 더 멀끔해지고 눈에 총기가 도는 그는 그때부터 일을 시작한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그렇기에, 나는 불행한 직장인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나의 사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직장은 ‘사수-부사수’라는 제도가 있다. 마치 예술분야의 장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직장에서도 ‘도제식 교육’을 한다. 그래서 회사의 규모가 크든 작든, 조직 문화가 어떠한들 다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직장인은 ‘사수’를 잘 만나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꼬인 직장생활을 몇 달간 경험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발칵 뒤집어 버렸다.


“부장님. 낮에 일 안 하고 밤에만 일하는 사수와는 같이 일 못하겠습니다”


차마 신입사원으로서는 하지 못할, 어쩌면 금기시된 발언을 사수를 뛰어넘어 부장님께 해 버렸다. 순간적으로 나는 공기와 의식의 흐름이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지난 후 이내 뭔가 잘 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 한 방울과 함께 이내 정신을 차렸지만, 이내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의 만행에 대한 그 소문은 마치 공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회사에 퍼졌고, 그다음 날부터 나는 그들의 가십거리가 될만한 아주 맛 좋고도 적당히 질긴 마른오징어가 되어 그렇게 씹혔더랬다.


하지만 다행히도 결론은 드라마 같은 해피엔딩이었다. 사실 사수의 업무 스타일이 독특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고, 또한 사수도 아주 쿨하게 "야 내가 언제 너보고 야근하랬냐? 내 스타일이 원래 그래, 너는 업무시간에 너 일만 해, 나 신경 쓰지 말고"라고 말할 수 있는 배포 있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도 나도 ‘요즘애들은 참 당차’ 정도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싹수없는 놈’이라는 말은 다행히 듣지 못했다 (물론 면전에서만 못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나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 또한 다행히도 ‘생각보다는 덜 또라이고, 생각보다는 꽤 일을 잘한다'였다.



업무(특히 야근) 문화가 바뀌고 있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업무 문화는 분명히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뿐, 좋게 바뀌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참 개선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변화의 확산은 무엇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나는 그 변화의 근원을 ‘성과를 창출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를 창출하는 방법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의 성과가 으쌰 으쌰 하는 구호와 함께 다 함께 힘을 모았을 때 나타나는 것이 었다면, 지금의 성과는 충분히 개인이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실제로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 같은 개인이 만들어내는 성과나 변화는 그 어떤 집단이 만들어 낸 성과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높기까지 하다. 또한 성과를 내는 방법이 너무나도 다양해졌다. 과거처럼 몇 개의 정답지 또한 경험치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만만한 세상이 아니다. 정답지가 너무 많아 제시할 수 조차 없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고, 논두렁은 삐뚤어졌어도 모내기는 바로 합시다.


출처 :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직장의 업무 문화가 바뀌는 근원적인 이유는 ‘성과를 창출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틈을 비집고 누군가는 또 생색을 낸다. 마치 사회가 이렇게 변화하는 게 마치 자신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들을 포기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분들이 계신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해 항상 과거와 현재에 대한 혼란과 분열을 느끼는 그분들 덕분에 사회가 변화하는 게 아니다. 마땅히 변화해 주셨어야 하는 그분들이 변화하지 않아서 지금 우리가 힘들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기가 굉장히 열려있는 사람인 것처럼, 부하들에게 "오늘은 눈치 보지 말고 일찍 가지"라고 말하는 상사가 있다면 말해주자.

"내가 알아서 할 거거든요?"




(이 글의 이야기는 특정 회사 또는 조직, 개인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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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출간작가
10년차 직장인이자 프로 서울러 입니다. <미세유행 2019>, <하우투 워라밸>, <생계형 인문학> 등의 책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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