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양의 진주 Aug 30. 2022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원의 언니

필리핀에서의 재판

    오늘이 교통사고 사건 재판 날이라며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필리핀이라고 해서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는 일이 그리 흔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TV를 보지 않아 운전하며 한 번씩 듣는 라디오나 SNS를 통해 접하는 뉴스로 이런 교통사고에 대해 듣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번에는 매일 보는 옆 사람에게 일어난 것이다.


    평소와 같은 많은 날들 중에 그날도 직원의 언니는 회사로 향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한 뒤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집에서 나와 트라이시클 터미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트라이시클을 이용해 큰길로 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 끝에 서서 쨍쨍한 햇빛에 머리를 말리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 후 차례가 되어 10분 정도 트라이시클을 타고 큰길로 나왔다. 그 동네에서 언니의 회사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나 UV라는 밴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그런 차량이 지나다니는 커먼웰스라는 길이 무려 양방향으로 14차선이나 된다. 14차선 중에서 각 첫 번째 차선은 길거리 상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차지하여 야채나 과일부터 옷이나 다양한 액세서리들까지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팔려고 나온다. 출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그 거리로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 상인들은 더 이른 아침부터 나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상인들이 차지한 1차선을 넘어 2차선 정도부터가 사람들이 (정류장 없이) 아무데서나 버스나 밴을 타는 지점이다. 언니는 큰길로 나오기 직전 어느 골목에 트라이시클에서 내려 2차선 정도까지의 지점에서 자기가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하는 여느 날처럼 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가는 차들도 이미 만석이기 때문에 버스나 밴이 가까이 오면 자기가 향하는 목적지에 내려다 줄 수 있는 루트로 가는 차인지 집중해서 잘 확인한 후에 차를 세우고 재빠르게 달려가 차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지만 버스에는 서서라도, 밴은 3인석에 4번째 손님으로라도 끼여 탈 수 있다.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지만 그날 출근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언니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버스나 밴이 오면 표지판이 잘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 지나가는 차들의 표지판을 훅 훑어본 후 자기가 타야 할 차가 아니면 다시 뒤로 물러가길 반복했었다. 평소와는 다를 게 전혀 없는 바쁜 아침이었다. 한참 핸드폰을 보다 저 멀리서 버스와 밴들이 우르르 오는 것을 보고 조금 더 가까이에서 표지판을 보기 위해 언니는 다시 찻길 쪽으로 다른 사람들 사이를 해치고 달려 나갔다. 그러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빨리 달려오던 한대의 밴이 한순간에 언니의 몸을 받았고 그로 그녀는 하늘로 붕 날았다. 언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


    밴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밴 기사, 언니와 같은 방향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던 그곳에 모든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너무 놀라 얼어붙은 사람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몸이 먼저 반응해 언니에게 달려간 사람들. 그중에 언니를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가자고 한 사람이 있었고, 사람들의 도움으로 언니를 차에 태웠다. 언니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상상했던 회사가 아닌, 병원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일을 갑자기 겪은 사람들이 이 사고에 대응을 해봤자 당황한 나머지 얼마나 빨리 대응했겠으며, 필리핀 사람들이 아무리 서로 도우며 사는 화목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들, 그 바쁜 출근길에 언니를 병원으로 싣고 가주겠다고 한 차가 얼마나 빨리 나타났으랴. 언니는 끝내 병원에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망해버렸다.


    그날 우리 직원은 얼른 집에 가야 한다며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섰다. 인사과에 일 하는 그 직원은 매일 내 임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고, 걱정되는 얼굴을 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던 그 직원에게 왜 그렇게 빨리 가야 하는지 물을 새가 없었다. 그 직원을 포함한 가족들은 언니의 교통사고 소식보다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보다는 화, 억울함, 원망에 꽉 찬 마음으로 병원에 갔을 것이며,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맞이한 언니는 이미 마냥 신원확인만을 기다리는 영혼 없는 하나의 몸뚱이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라고 생각한 그들은 백만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속상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백 번씩은 두드렸을 것이다. 무지 평범한 하루를 상상했던 언니는 무지 평범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육체의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오늘이 있기까지의 지난날들을 영화처럼 회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끝내 눈을 감았던 것이다.


    나는 처음 사고 소식을 듣던 날까지 직원의 언니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었다. 무관심하다면 무관심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무려 300백 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는 우리 회사에서 사람들의 가정환경을 하나씩 알기란 쉽지 않다. 이런 나도 그 소식을 듣고, 크기는 작되 무게가 엄청난 돌덩이가 내게 툭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퇴근 후 피아노 수업을 마치고 잠시 장례식에 들르는 일, 그리고 사고 이후 직원이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 날에 직원을 안아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 후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과, 그 직원이 해야 할 임무를 내어주는 일. 나와 큰 차이 없이 그 직원의 옆자리,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 가까이 지낸 동료들을 포함한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일에 집중했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만 그럴 것이 아니라, 그날 언니와 함께 차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언니를 받은 밴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녀를 태워 병원으로 이송해 준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날의 사고 현장을 지나 출퇴근을 하며 바쁘디 바쁜 일상들을 보냈다. 그리고 언니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가 착륙했던 그 지점도 여느 아침과 동일하게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었다. 그날의 여운과 마음의 돌덩이를 아직까지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언니의 가족일 것이다. 언니가 살아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일, 말들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수가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사람들만이 언니를 기억하고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찌 이렇게 매정할까' 싶다가도 현실에 부딪혀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야'라며 나 자신과 타협하게 된다.


    다른 직원들도 사고 며칠 후에 있었던 장례식을 방문했었고, 몇 주가 지난 오늘 법원에 간 직원의 결석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씩 나오는 그날의 이야기에 함께 몇 초간의 침묵을 갖는다. 국영기업이라 하는 사고를 낸 그 밴의 관리 에어전시는 최소한의 보상 혹은 아예 무죄 선고를 받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그 기업의 대표는 (아니, 대표까지 갈 필요도 없을 수 있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형사들, 검사, 판사들을 살살 녹여 자기들이 이 재판에서 유리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필리핀 같이 잘 살지 않는 나라들의 사회 약자들은 이런 일을 당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리 없다.


    이제는 옆에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같이 한 집에 살던 언니, 그리고 힘들어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결석한 이 22살의 직원만이 순진하게 이 재판에 대한 열정과 작은 희망을 갖고 법원에 갔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재판 결과는 뻔하지만, 입 밖으로 그리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세상의 잔인한 현실을 앞장서 말하며 남의 마음의 상처를 들쑤실 수 없기 때문이고, 그 직원에게 현실적으로 도움 될 일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필리핀 오미크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