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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ul 20. 2018

#9. Positano, Italy.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

 그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천국에 잠시 마실을 나온 기분이랄까. 결혼을 하고 그와 신혼여행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무려 한 달씩이나. 하지만 그때의 감정과 유럽여행에서의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질감의 차이랄까? 유럽을 여행할 때는 연애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서로가 조심스럽고 한편으로는 적응과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감정의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제야 느낀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조식. 커피는 왜 이렇게 맛있고 난리.

 딱딱한 빵과 짭조름한 슬라이스 햄과 치즈. 한 여름의 핫 커피. 이토록 무미건조한 조식을 그와 나는 무척이나 행복해하며 즐겼다.

 빛이 새어드는 창문을 열면 눈앞에 이런 절경이 펼쳐진다. 그림이 아닐까 하고 허공에 손을 휘저어 보기도 했다. 모두의 삶이 각각 담겨 있는 예쁜 집들. 나름의 규칙으로 안정된 구도를 갖추고 있다.

 좋다. 해변으로 나가자. 바다수영을 전혀 못하는 나는 그에게 매미처럼 붙어서 바닷속을 유영했다. 동양인이 한 명도 없었다. 완벽히 이국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나중에 또 올 거라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새롭고.

바다에 누워 찍은 사진인데 블럭을 쌓아 올린 것 같은 집들. 이게 어떻게 현실일 수가 있지?
매우 허기진 상태였지만 맛이 없었다. (Bruno Pasta)

 한바탕 물놀이를 끝내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라벨로로 향했다. 아말피 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벨로가 우리의 목적지. 지금에 와서야 검색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라벨로는 현지인들만 아는 숨겨진 명소라고 한다. 그는 어떻게 알고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까? 가는 길이 꼬불꼬불 좁은 해안도로라 사상 최대의 멀미를 하고 얼굴이 사색이 된 날 다독이며 내내 손바닥을 꾹꾹 눌러주던 그. 곱씹어 보면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빌라 루폴라가 나온다. 아래의 사진들은 루폴라에서 찍은 것들이다.

맥락이 없는 꽃사진. 많다.

 꼭대기에서 바라 본 아말피. 평일이라 루폴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만 둘러보고 있어서 왠지 이 정원이 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야외무대에서 종 음악회를 한다는데 기회가 면 보러 오고 싶었다. 이 풍경에서 듣는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좋을 것 다.

 버스 정류장 앞에는 귀여운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레몬 셔벗을 팔고 있었는데 아저씨마저 귀여워서 안 살 수가 없었다. 상큼함에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라벨로 입구로 내려오니 성당이 보였다. 역시 유럽에서 시내 중심지는 모두 성당 주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포켓몬을 잡는 게임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성당 앞이 핫스폿인지 아이들이 둘러앉아 모두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도 당시에는 빠져서 휴대폰을 늘 손에 쥐고 다녔다. 아이들과 섞여 포켓몬을 잡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은 귀엽거나 철없거나, 그때그때 내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사냥꾼이 된 그를 뒤로하고 나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관광지의 성당과 달리 북적이지 않아서 마음이 포근했다.   

 밤이 되니 더욱 이국적인 라벨로. 맛집으로 보이는 식당에서 긴 웨이팅을 하고 밥을 먹었다. Taverna degli Apostoli라고 레스토랑 이름을 기록해놓은 것을 보니 맛이 좋았나 보다. 뇨끼를 처음 먹어봤는데 굉장히 신선했다. 스테이크 맛이 매우 흡족했는지 메모에 별도로 표시도 해놓았다.

 포지타노로 돌아와서 숙소를 오르는 길에 찍은 야경. 화질이 좋지 않아 다 담을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네온사인이 아닌 불빛들은 어둠에도 생기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집집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고 레스토랑에선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바로 여기서 청혼하면 될 텐데 라고 가볍게 말했는데 막상 그가 농담으로 넘기자 살짝 속상했다. 아니 많이 속상해서 두고두고 회자했지.



 





 2016. 7. 26. TUE

 아말피 가는 길은 곤욕이었지만 라벨로랑 루폴라 너무 좋았다. 참으로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매 순간, 시간이 흐르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그날을 기록했다. 벌써 2년이나 지났고 지금은 그와, 그를 닮은 아이까지 함께인데도 그날의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유럽여행을 통해서 몇 차례 경험했는데 그 첫 번째가 포지타노에서였다.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라는 걸 알았기에 우리의 연애는 해피엔드(Happy and..) 일 수 있었다. 우리의 사랑은 계속되고 포지타노의 추억은 좀 더 오랫동안 아름다울 수 있게 되었다. 한 여름밤의 꿈이 아니라 다행인 그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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