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의 낮과 밤.
점심은 타파스로 정했다. Tapas는 스페인에서 식전에 술과 간단히 먹는 소량의 음식을 말하는데 여행자들은 다양하게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식사 대신 여러 개를 주문해서 먹곤 한다. 영수증까지 찍어놓은 걸 보면 이곳 역시 맛집이었나 보다. 위의 여섯 가지 메뉴를 먹었는데 팁 포함 37유로가 나왔다. 가성비 갑! 특히 깔라마리와 오믈렛은 스페인에서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요리. 그리고 이곳은 첫 번째 사진의 대구 요리가 정말 맛있는 곳.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사그리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가다가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유럽은 공중화장실 없기로 유명한 데다 골목골목 지름길로 왔더니 너무나 한산한 거리. 겨우 문이 열려있는 조그만 가게가 보여 둘이서 커피 한 잔 주문하고 급하게 화장실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이 커피 한 잔은 그 증거. 아주 작은 카페에 인상 좋은 사장님. 커피라고 주문하면 이렇게 에스프레소를 주는 멋진 곳.
숙소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팁으로, 야경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은데 그중에 Bunkers Del Carmel이 가장 예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언덕 입구까지 버스가 있지만 내려서 꽤 걸어야 한다. 말 그대로 벙커가 있는 곳이기에 이색적인 야경 스폿이었다.
아이폰으로는 담을 수 없는 야경. 살면서 봤던 야경 중에 가장 훌륭했다. 도시의 풍경 속에 우뚝 솟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이색적이었다. 벙커에 걸터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은근하게 오르는 취기와 야경에 나는 흠뻑 빠져있었다. 이날의 코스는 정말 완벽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아 뜻깊은 시간이었다.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어서.라는 문장이 그날의 메모였다. 우리는 스페인에 오기까지 다투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는데 아마도 서로에게 적응해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와의 신혼생활도 다툼과 화해의 연속이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싸울 일이 줄었다. 서로를 파악하는데 우리는 거침없이 표현했기에 그 시간이 꼭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연애와 결혼 생활은 또 챕터가 너무나 달라서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시간이 새로이 필요하다. 그와의 여행 중에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내 옆에 여전히 그가 있다는 우리 여행의 해피엔딩이 다행인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오래된 일기를 꺼내보는 기분으로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의 연애시절이 있단 사실이 잠들어있는 설렘을 깨워준다. 도시의 낮과 밤은 질감이 다를 뿐 아름답기는 매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