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다. 누구는 저 앞 고층 건물을 현금다발로 샀다는데, 누구는 월세 50만 원이 없어서 고시원을 알아봐야 할 판이다. 부모 잘 만나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 현우는 놀이터 나무 그늘에 앉아 앞에 보이는 현란한 건물과 등 뒤에 있는 초라한 동네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는 보육원에서 퇴소한 지 3개월 된 고아다. 퇴소지원금으로 받은 오백만 원에서 원룸 보증금으로 삼백만 원을 사용하고, 월세며 생활비로 쓰다 보니 벌써 바닥이 났다. 빌어먹을 건선 피부염 때문에 평범한 아르바이트조차도 면접에서 퇴짜 맞기가 일쑤다. 돈이라도 있으면 피부과 치료라도 받아볼 텐데 당장 오늘 먹을 것부터 고민해야 하는 처지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고는 있지만, 이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지, 막막하고 암담했다.
며칠 전 보육원 동기이자 같은 날 퇴소한 친구 유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이라고 해 봤자, 조문객도 없고, 인계할 부모도 일가친척도 없다. 무연고자 신세가 될 것 같아, 보육원 동기 몇몇이 십시일반으로 장례비를 모아 하루장만 치르고, 화장 후 몰래 산에다 뿌렸다. 밤에 뿌린 뼛가루의 오묘한 빛은 ‘이제 곧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유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소주 한 병을 돌아가며 마셨다. 어린 시절 함께한 그녀에 대해 추모하고, 남은 자들은 소주 한 모금에 서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삼켜야 했다.
현우도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 월세 낼 돈도 없다. 곧 겨울이 올 것이고, 건선은 더 심해질 것이다. 얼굴에 유독 두드러지는 건선 탓에 잘생긴 얼굴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재 비용이 올라 건설 현장이 멈춘 데가 많아지는 바람에 일용직마저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나를 버린 부모, 그리고, 나를 받아주지 않는 세상. 현우는 이 모든 게 억울하기만 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본다. 손에 쥐어지는 천 원짜리 두 장. 고민할 것도 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소주를 손에 들고 한강 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는데 병을 든 손이 시리다. 초라하게 손이나 시리다니 멋지게 죽고 싶었는데 씁쓸하다. 죽음 앞에서 손끝의 감각이 살아있다는 묘한 기분. 잠시 후면 이런 말초신경조차 더 이상 감각으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다리를 향해 옮기는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던 찰나, 책상 위에 놓고 온 유서가 생각났다.
‘무연고자입니다. 부검하지 마시고, 대학 병원에 기증해 주세요. 그리고, 보증금은 제 시신이 기증되는 곳의 어린이 병동에 기부해 주세요.’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하는 일인 거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죽으면서라도 할 수 있다니 현우는 괜스레 으쓱해진다. 다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백여 미터만 가면 그의 인생은 끝이 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이름 없는 아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살려는 의지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주의 한 방울마저 비워지는 그 지점이 오늘 그가 마지막이 되는 자리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없었다. 늦가을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가 현우의 옷깃을 여미게 할 뿐,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는 고요한 시간이다. 그는 신발을 조용히 벗었다. 누군가 여기에서 생을 마감했음을 알려야, 집에 있는 유서가 발견되겠지. 그 소망은 꼭 이루어졌으면 싶었다. 삶의 목표? 그런 거 생각하고 살아본 적도 없다. 하루하루 사는 삶, 태어난 이유조차도 모르는 생명 따위는 이렇게 끝내는 게 순리라는 정의를 내린 지 오래다.
신발 위에 발을 올리고 마지막이라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이 그가 오늘 밤 주인공이라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무대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다. 사는 동안은 존재감 없는 단역이었는데, 죽음의 무대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죽어서야 엔딩크레디트에 이름 석 자 남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서글퍼지기도 했다. 다시 심호흡을 크게 한다. 지나가던 자동차에서 경적이 울렸다. 그를 말리려는 건가 싶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자동차는 지나가고 없었다. 혹시나 해서 돌아본 게 머쓱했다. 그때 현우의 눈에 공중전화기처럼 생긴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게 죽기 직전에 전화로 사람 여럿 살린다는 그거네. 죽으려고 왔으면 그냥 죽으면 될 일이지, 전화는 왜 한담? 쳇. 이제 와서 저딴 전화 한 통이 무슨 소용이야. 통화를 한다 쳐! 이 상황이 달라지냐고?’ 자동차 경적 소리에 돌아본 게 부끄러웠는지 현우는 괜한 치기를 부렸다.
시간은 많았다. 오늘 새벽에만 뛰어내려도 될 것이다. 아니다, 해 뜰 무렵이 좋겠다. 조금은 사람들의 눈이 있을 때 일이 벌어져야 신원확인이 빨리 이루어질 것이고, 그래야 온전한 상태로 넘겨질 것이다. 웅장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장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시간이나 좀 끌어볼까?’ 현우는 다시 신발을 신고 전화기 쪽으로 향했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전화기에 쓰인 문구가 이상하게 현우의 심사를 꼬이게 만들었다.
‘그래, 힘들다! 죽을 만큼’ 거칠게 수화기를 들고 초록색 버튼을 있는 힘껏 눌렀다. ‘당신들이 뭘 알아? 그깟 알량한 몇 마디 말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고? 위선적인 것들.’ 갑자기 화가 난 현우는 통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이 응답하기도 전에 자기 말만 퍼붓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 여기서 뛰어내릴 건데 아직 해가 안 떠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어두울 때 찾으시는 건 수색하시는 분들 너무 힘드실 거잖아요.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얘기 좀 전해주세요. 여기 마포대교 맞죠? 마포대교 밑에 스무 살 이현우 있다고.”
속사포처럼 감정을 쏟아낸 현우는 상대방의 나긋한 말투를 기대했다. ‘그러지 마시라. 아직 세상은 따뜻하고 기회는 많다.’ 아니, 내용은 둘째 치고, 누군가의 따뜻한 음성이라도 듣는다면 기분 좋은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응답은 없었다. ‘하, 그럼 그렇지. 이것도 꼴통이네. 나처럼.’ 현우는 기가 막혀서 수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때였다.
“뛰어내리세요.”
그제야 상대방 목소리가 들린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낮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뭐라고 하셨어요?”
“뛰어내리라고 말씀드렸어요.”
“아니, 이것 보세요. 이 전화 SOS 생명의 전화 뭐 그런 거 아니에요? 당신 상담원 맞아?”
“이미 결정했는데 뛰어내리면 될 것이지 구질구질하게.”
현우는 기가 막혔다.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그나저나, 이 새끼가 나를 언제 봤다고 말이 짧아지지? 그리고, 뭐? 구질구질? 속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죽기 전에 이 새끼 면상은 봐야겠다 싶었다.
“야, 너 어디 소속이야? 마포구청이야?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너 이 새끼 얼굴은 한 번 보고 죽어야겠어! 어딨어! 개새끼야!”
“하하하, 나 보러 오시게? 오든가 그럼. 주소 받아 적어요. 아, 뛰어내린댔지. 적을 것도 없겠네. 그럼 외우든가.”
상대방은 예의 낮은 목소리로 조롱하듯 기괴한 주소 하나를 불러준다. 그러다 한 마디 덧붙였다.
“아, 멍청해서 길도 못 찾겠네. 5분 후에, 택시 한 대가 당신 앞에 설 거요. 지금이라도 뛰어내리든가. 아니면 타고 여기까지 오든가. 알아서 해요. 수중에 이백 원밖에 없을 테니 택시비는 내가 내드리리다.”
어이가 없었다. 당장 이 새끼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죽는 건 매한가지다. 맞아 죽든 저 새끼 죽이고 죽든 뭐가 다르냐고. 수화기를 내리고, 1~2분이 지나자, 폭발 직전이던 분노가 조금 누그러졌다. ‘잠깐, 장난 전화에 놀아난 건가. 그런 거 아냐? 아, 병신! 병신 같으니. 장엄이고 지랄이고 그냥 죽으면 될걸. 한심하게.'
해가 뜨든 말든, 뛰어내리며 빨간색 119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그들이 아무리 빨라도 나보단 느릴 것이다.
“에잇! 나쁜 놈. 살아보라고 얘기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재수 없는 새끼.”
전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한 사람으로 세상을 마무리하는 마음에 들떴었는데 기분만 망쳤다. 왜소한 현우에게 안전 펜스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이 바뀔세라 재빨리 생명의 전화기 옆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119 버튼을 막 누르려고 할 때였다.
“택시 타셔야죠.”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현우는 버튼은 고사하고 신발 위에 어정쩡하게 선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택시 디자인이다. 위에 ‘예약’이라는 선명한 갓등만 도드라져 보였다. ‘장난 아니었어?’ 현우는 홀린 듯 신발을 신었다.
“안 타시나요?”
재차 묻는 기사에게 미안해서 현우는 훌쩍 낯선 택시에 올라탔다. ‘아, 맞다! 이백 원밖에 없는데 택시비는 어떻게 내지?’ 그 순간, 재수 없는 그 새끼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수중에 이백 원밖에 없을 테니 택시비는 내가 내드리리다.’
'그 남자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죽을 거란 얘기밖에 한 적이 없는데.' 현우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택시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기사 이름도, 미터기도 없다.
‘보이스피싱 하는 놈들이 행복의 전화까지 해킹한 건가? 어디서부터 미행한 거지? 설마 내가 소주를 살 때부터? 아니면 더 이전?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세하게 알 수가 없잖아. 나 돈 없는 거 알고 미리 조사를 다 했네, 했어. 내 인생 마지막이 장기 밀매라니, 어차피 죽는 거는 같지만 이건 아니잖아.’ 현우는 기사 몰래 뒷문 손잡이를 살짝 당겨 보았다.
“도착지까지 안 열립니다.”
기사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당했다. 그렇지. X 같은 내 인생. 마지막까지 꼬여야지. 그래야 나답지. 하하하.’ 십여 분 달렸을까? 이제 현우는 될 대로 돼라 싶었다. ‘안 아프게 마취라도 해 달라고 해야겠다. 그래도 생짜는 좀 아니잖아. 수술도 한 번 안 해봤는데….’ 어디로 가는지 기억하며 보려고 해도 사방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공포에 떠는 동안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나 보다. 눈을 가린 것도, 필름 처리가 된 차도 아닌데, 가는 곳이 어딘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딸깍’ 자동차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내리세요.”
택시 기사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까딱하면 기에 눌려 인사할 뻔했다. 범죄 소굴로 들어가는데 인사는 개뿔. 저런 나쁜 놈들은 잘만 살고, 태어날 때부터 억울한 나 같은 놈은 끝까지 재수가 없다. 무슨 잘못을 했다고. 현우는 낯선 어둠에 익숙해 보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빛이나마 기대했지만, 유나를 뿌렸던 산속보다도 어두웠다. 좀 있으면 해가 뜰 것이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도 안 온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때 다시 다리로 향해도 된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모든 걸 체념한 채 현우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