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타고 갈 때는 스마트폰 좀 그만 보고 바깥에 풍경을 보면서 가 보렴.”
어릴 적, 아빠는 차 안에서 줄곧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늘 잔소리를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편하게 좀 가고 싶은데 자꾸 방해하는 것 같은 아빠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고작 바깥 풍경 보면서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딱히 별 감흥도 없는데 뭘...”
괜히 아빠가 유별난 것 같았다. 물론 아빠의 의도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핸드폰만 하면서 가게 되면 자세도 경직되고, 머리도 아프니까 건강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리라.
단지, 내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저 아빠랑 세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얼른 치부해 버리고선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인생의 쓴맛도 맛보면서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될 만큼 자라서 그런 것일까. 내가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는 그렇게나 듣기 싫었던 아빠의 잔소리가 색다르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 특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힐링하곤 한다.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차에만 탔다 하면 1초마다 업데이트되는 정보들을 열심히 스크롤하는 일보다 핸드폰은 잠시 넣어둔 채, 차창에 기대어 나도 함께 버스에 실려 가게 되는 이 시간이 더 소중하고 좋다.
심지어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도.
“이 ‘힐링’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
단순히 바깥에 자연을 감상하며 느끼게 되는 경외심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몇 살이나 먹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나무들과 가을의 정취를 한껏 머금은 낙엽의 진미에 대한 감동만으로는 내가 느끼는 힐링을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더 나아가, 가장 익숙한 데서 오는 것들에서 큰 힐링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버스 안에 있는 ‘나’와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 ‘사람들’의 존재의 같은.
나는 버스와 함께 이내 곧 흔들리는 우리들 특유의 움직임과 생동감을 사랑했던 것 같다.
가만히 창문 밖 풍경을 내다보고 있으면, 수많은 광경들과 마주하게 된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나들이 나온 가족, 피곤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 힘겹게 폐지를 모으고 계시는 노인분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제 갈 길을 재촉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등등. 하나같이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볼 수 있다.
이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노력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유심히 그들을 관찰하던 나는 내 마음대로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가며 그들과 함께 웃고, 슬퍼하면서 이들의 감정에 더 깊이 이입하곤 했다.
이때, 문득 의문 하나가 생겼다.
버스 안에서 보는 풍경이나 걸어 다니면서 보는 풍경이나 다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난 왜 버스 안에서 볼 때 새삼 더 강렬하면서도 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그 순간, 무언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버스의 흔들림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조금 성미가 다급한 버스 기사님을 만난 어느 날에는 버스가 마구 세게 흔들리면서 그들의 삶도 괜히 막 더 각박하고 초조해 보이는 것만 같고, 반대로 다소 천천히 운전하시는 버스 기사님을 만난 날에는 버스가 큰 기복 없이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그들의 삶도 괜히 한결 더 차분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일정하지 않는 버스의 흔들림이 우리들의 희로애락을 더 잘 보여주는 것만 같다고 느껴졌다.
한편,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때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버스의 파동을 따라 꿈틀거리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쌓여 있는 업무 스트레스, 인간관계 문제, 창피했던 일들에 대한 자책, 언제쯤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 등등.
그렇게 흔들리는 버스와 함께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온갖 생각들은 쉴 새 없이 출렁거리기를 반복하며, 파노라마처럼 스쳐 흘러간다.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이입했던 나는 반대로, 그들에게서 작은 위로를 건네받곤 한다. 지금 이렇게 혼란스럽고 복잡한 나의 마음은 비단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분명 그들도 함께 공감할 것이라고 괜히 막 더 믿고만 싶어 진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모두 다 흔들리면서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창 밖에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 채,
되새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