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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Apr 06. 2021

며느리의 시아버님 모시기 설명서


저는 시부모님을 (아직은) 모시지 않는
맏며느리입니다.
시부모님을 모시게 될
그날이 언제 올지 몰라
미리미리 시부모님의 취향을 연구 중입니다.  

특별히 한 달에 한 번쯤은 아이들을 보러
저희 집으로 여행을 오시는
‘특별한 시아버님’을 떠올리며
몇 자 적어 봅니다.  

-

결혼 전,
시아버님 시어머님과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어머님을 위한 작은 꽃다발을 준비했고
긴장된 마음으로 예비 시부모님을 기다린다.


예비 시부모님과의 첫 만남은,
저녁식사 자리가 아니라
깐깐한 면접관을 두고 펼친
최종 면접장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예비 시어머님은 별말씀 없이
수시로 나를 관찰하신다.
예비 시아버님은
이것저것 캐물으시는데,
밥은 목구멍으로도 콧구멍으로도 넘어가지 않는다.


두 분과의 별난 만남 끝에
우리의 결혼은 무사히 성사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과 남편의 첫 만남도
만만치 않게
손발이 오그라 붙는 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무섭고 깐깐하실 거라 생각했던 시아버님은
결혼식을 올리고 나자
별안간 나를 딸처럼 대하신다.
새댁은
어느 장단에 맞춰 들썩여야 할지 몰라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며 지낸다.


결혼 후 곧 아이가 생기고,
태중에서 10개월을 건강히 채운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가 태어나자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24시간을 보내는 그때,
시부모님이 아침저녁으로 번갈아 출퇴근을 하며
아이는 물론 서툰 집안일까지 돌봐 주신다.
첫 출산 후 우울증이 쉬이 틈타지 못한 건
시부모님의 사랑 넘치는 극성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시아버님은
아기랑 며느리만 있는 집에도
불쑥불쑥 찾아오신다.
처음에는 이게 불편한 건가 싶다가도,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닌 초보 엄마는
금방 기분 좋~게 적응을 해버린다.
적응을 뛰어넘어
아버님이 오시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며느리가 된다.


그러던 중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을 떠나게 된다.
이제 막 6개월이 된 갓난쟁이를 데리고
낯선 도시로 입성하던 날.
철권에서 대결 장소가 바뀌는 것보다 더한 비장함이
온 마음을 채운다.
‘잘 살아내야지.’


자녀들의 모든 것이 안쓰러운 아버님은
이삿날도 어김없이 동행을 하신다.
의리감마저 풍겨내시는 아버님의 어깨가
평소보다 두배는 더 넓어 보인다.
이삿날에도 휘뚜루마뚜루
총지휘자의 면모를 아낌없이 발휘해 내신다.


지방으로 이사를 떠나온 후
아버님은 어느 때는 보름에 한번,
또 어느 때는 한 달에 한번,
우리 집을 찾으신다.


싸나이스러움이 온몸에서 철철 흐르는 아버님은
무거운 김치며, 매실액, 쌀까지 들고 나르시는데,
바퀴 달린 캐리어를 한 번도 끌고 오시는 법이 없다.
오실 때마다 튼튼한 가방 두 개를 이고 지고
“난 괜찮다.” 하시며,
현관을 철컥! 열고 들어서신다.


아버님이 오시는 날은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소주 두병을
냉장고 음료 칸에 미리 채워 넣는다.
점심에는 칼칼한 찌개와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미국 햄을 계란에 부쳐 놓는다.


아이가 어려서 식당에 함께 가긴 어렵겠고,
아버님이 잘 드시는 메뉴들로
미리미리 브레인스토밍을 마친다.

 
2박 3일 중
저녁 한 끼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삼겹살로 준비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아버님 쪽에서
며느리 마음을 읽으시기라도 한 듯
고기 좀 사러 가자 하신다.
‘아아, 미리 사두는 건데...’


며늘이 잘 먹어야 한다며
마트나 정육점에 들어서면
먹고 싶은 건 뭐든 골라 보라고 하신다.
거기에 “살 좀 쪄야지.”
하시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살찌는 것도 마음대로 된다면
아버님 소원을 번쩍 이루어 드릴 텐데,
살을 빼는 것만큼이나
푹푹 찌우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버님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집안에 이리저리 널린
먼지의 영혼까지 끌어모아 청소를 해내신다.  
우리 부부의 ‘후다닥’ 청소는
영 마음에 놓이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식후 설거지도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앞세우시며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신다.
아버님이 그러시는 것이
하나같이 전부 다
애쓰는 며느리를 위해서임을 나는 안다.


우리 시아버님은
친정 아빠만큼의 세심함으로
‘며늘’이라는 이름의 딸을 아끼신다.


‘며늘’의 살림살이에
아낌없이 손장단을 맞추시는 시아버님을
어찌 대해드려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며느리도
이제는 아버님의 그 마음을 다 알고,
함께 덩실거리며 살림을 살아간다.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랐던
시아버님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에도
이젠 한 팀 된 마음으로
하이파이브를 짝! 소리 나게 하며 함께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기관에서 운동회라도 열리면,
아버님께는 한 달 전부터 소식을 전해 드린다.


아버님이 아이들을 보러 내려오시면
꼭 한 번은 짬뽕 데이트를 한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출근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버님과의 약속시간에 맞춰
동네로 다시 나온다.
우리가 좋아하는 짬뽕집으로 가서
‘늘 먹던 것’으로 주문을 한다.
짬뽕 하나, 짜장 하나에 미니 탕수육,
그리고 아버님이 아끼시는 이과두주까지.
어버님 잔에는 이과두주를,
내 잔에는 시원한 물을 쪼르륵 흘리고는
짠! 하며
감사의 마음을 찐하게 담아드린다.


며느리보다 며느리 마음을 더 잘 아시는
별난 아버님 덕분에,
가랑비에 옷 젖듯
별난 며느리로 살살 물들어 간다.
기분 좋은 전염이다.


새로운 달에 들어섰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봄날의 산책을
늘 좋아하시는 아버님께,
아들네 집에 한번 내려오실 수 있는지
연락을 넣어드려야겠다.


-


이상.
실화를 바탕으로
아버님을 향한 며늘아기의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글입니다.

아버님과 한 가족 되어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이 더 기대되는
우리 시아버님을 위하여,
치얼쓰!


-
우리 시아버님께는 비밀입니다.
(아버님 사랑해요~ 찡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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