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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Jan 25. 2019

스물세 번째 질문: 지구는 얼마나 더 황홀한 작품일까

경이로운 풍경들

  오래전 바티칸 시국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올려다보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그저 거대한 작품을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는 것이 힘들고 답답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몇 년 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그로부터 얼마 후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증후군을 알게 되었다. 뛰어난 미술품이나 예술품을 감상할 때 순간적으로 격렬한 흥분이나 우울증 등을 느낀다는 증후군이다. 자연 또한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인간이 창조한 작품보다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웅장한 자연 풍경을 볼 때 더 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거나 눈물까지 날뻔하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는 사람을 압도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게 한다. '폭포가 멋져봤자 폭포일 뿐이지!' 하던 나의 섣부른 생각은 이과수(Iguazu) 폭포를 보자마자 쏙 들어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과수로 향하는 비행기 안, 기장이 날씨가 좋다면서 저 아래에 있는 폭포를 보라고 방송해주었다. 원래 이 노선이 이런 건가 했는데, 나중에 승무원에게서 들으니 기장이 일부러 항로를 살짝 바꾼 것이라고 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니 운이 정말 좋은 것이라면서. 나는 평소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날은 창가 자리에 앉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보자마자 떡 벌어진 입은 쉽사리 닫히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폭포에 고정시킨 채 가방에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남미의 이과수 폭포, 아프리카 빅토리아 폭포, 그리고 북미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통 세계 3대 폭포라고 부른다. 나는 이과수 폭포를 보고 나서 약 2주 뒤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다. 겨울이라 동네도 음산했지만, 그런 것보다도 숲 속의 이과수와 극명히 비교되는 규모와 주변 분위기가 아쉬웠다. 만약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장 먼저 봤다면 정말 멋지게 느껴졌으려나. 그로부터 약 2달 뒤에 갔던 빅토리아 폭포는 이과수처럼 숨은 보석 같은 매력이 있었지만, 역시나 규모로는 이과수에 못 미쳤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이과수 폭포
브라질령에서 본 이과수 폭포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다. 아르헨티나령 이과수를 보면 브라질령에서 찍은 사진들은 지우게 된다고 하길래, 브라질령부터 갔다. 한 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땀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더워서 괴로웠지만 풍경이 상상 이상으로 멋져서 걷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산책로의 끝에는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고 폭포 앞으로 가까이 들어가 볼 수 있는 산책로도 있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물이 많이 튀었는데, 너무 더웠기 때문에 그 물방울들이 오아시스처럼 행복하게 했다.

  브라질 령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르헨티나령에 가니 사람들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전체적인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브라질령의 산책로가 좋았지만, 구석구석 들어가 보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령이 더 좋았다. 세세하게 산책로가 있어서 폭포들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었고 매번 새롭게 느껴졌다. 굉장히 더웠지만 거센 물줄기를 보고  그 듣는 것만으로 마음만은 시원해졌다. 밀림처럼 나무가 가득했는데, 정말 하나도 건드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폭포는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보석 같았고 신비로웠다. 영화 속에서 탐험을 하다 길을 잃은 주인공이 한 손으로 우거진 나뭇가지들을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짠 하고 펼쳐지는 풍경 같은.

아르헨티나령에서 본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산책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땀이 줄줄 흘렀지만 스피드보트를 탈 생각에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더우니까 우비도 입지 않고 맨 앞에 탑승했다. 보트가 빨리 달릴 때 살짝 위로 들려서 더 스릴이 넘쳤다. 보트는 시원하게 달려 떨어지는 폭포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더위가 다 사라진 것은 물론 새로운 경험이라 재미있었다. 물이 너무 세게 떨어져서 누군가가 뺨을 연속으로 때리는처럼 아파서 눈을 뜨지 못한 것만 빼면. 4번 폭포 정도 속에 들어갔다 나오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는데, 어찌나 날이 덥던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옷이 많이 말라있었다.

  오후에는 아르헨티나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했다. 꽤 멀어서 기차를 탔는데, 기차에서 내려서도 1km 넘게 걸어 들어가야 했다. 구름과 하늘이 너무나 예뻐서 들뜬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걸어 들어갈수록 물소리가 조금씩 우렁 차져서 폭포가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1분을 보면 근심을 잊고 10분을 보면 인생의 시름을 삼켜버리지만, 30분을 보면 영혼을 잃는다는 악마의 목구멍은 실제로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그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29분 정도만 보고 나왔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규모와 풍경이었다. 악마의 목구멍뿐 아니라, 이과수 폭포는 어디서 보아도 그림 같았다. 예쁘면서도 무섭고 신비로운 이 폭포는 내가 꼽는 남미 최고의 절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역시, 엄청난 규모와 인기를 자랑하는 다른 캐년(협곡)들이 결코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국 서부의 자이온 캐년, 브라이스 캐년, 앤텔로프 캐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나미비아의 피시 리버 캐년(Fish River Canyon)과 두 번째로 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블라이드 리버 캐년(Blyde River Canyon), 호주의 킹스 캐년(King's Canyon)까지 각각 모두 매력이 넘쳤다. 특히 브라이스 캐년은 들쭉날쭉한 기둥들이 빚어낸 독특한 풍경이 인상적이었고, 블라이드 리버 캐년은 물살에 깎인 예쁜 절벽들이 멋졌으며, 킹스 캐년은 붉은 지형을 트레킹 하던 것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 어떤 곳에 대한 감상도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보았을 때 떡 벌어졌던 입에 비할 수는 없다.

웅장한 그랜드캐년

  사실 그랜드 캐년은 규모가 크다고는 하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 예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 큰지 어디 한번 확인해보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처음으로 그랜드 캐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본 다른 곳들은 다 귀여운 수준이었다. 더 이상 묘사할 말이 없었다. 나 말고도 함께 캠핑 투어를 한 다른 친구들도 모두 그랬던 것 같았다. 떠들썩했던 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메인 전망대에서 트레킹 코스까지 천천히 절벽을 따라 걸었다. 이미 사진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다른 캐년들에서 느꼈던 '예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예쁘고 멋지고의 형용사들로는 어차피 표현될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의 이름만이 이곳을 가장 잘 표현해주며, 숫자들만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깊이는 1.5km가 넘고 너비는 최대 약 30km, 길이는 무려 445km에 이른다. 단체 투어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트레킹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걸으며 그 규모를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았다. 걷는 길은 빙빙 둘러있어 위에만 계속 머물러 있는 기분이었다. 오래 걷는다 해도 1시간으로는 풍경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 내려갔다. 같은 풍경이지만 너무나 멋졌으니까. 더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올라올 길이 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걸었다. 사진이 더 멋질 때도 있지만, 어떤 풍경은 결코 사진으로 실제 모습이 담길 수 없다는 것도 느꼈다. 이 거대함을 마주한 느낌은 그 어떤 사진도 글도 대신할 수 없었다.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Okavango Delta)는 멋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사진만 봤을 때는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그냥 늪지대인데 무엇이 특별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내게 죽기 직전에 딱 한 곳만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선택할 것이다.

  오카방고 델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삼각주로 2014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모코로(mokoro)라고 불리는 작은 배를 타고 구경하는데, 기다란 막대(pole)로 바닥을 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배다. 배 위에 서서 막대를 들고 미는 사람을 폴러(poler)라고 부른다. 모코로는 두 명씩 배에 올라타는데, 나는 짝이 없었으므로 가이드 윌과 함께 탔다. 이곳에 올 때마다 연습했다는 윌이 뒤에 서서 모코로를 젓고 원래 폴러인 아니타와 나는 앉아서 갔다. 남들이 하는 걸 볼 때는 쓱쓱 부드럽게 나가서 쉬워 보였는데, 나중에 직접 저어보니 생각보다 팔과 어깨에 상당한 힘이 들어갔다.

모코로 위에서

  모코로를 타고 수풀 사이의 늪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곳의 고요함을, 평온함을 깨고 싶지 않았다. 막대로 물을 젓는 소리만 들리고,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지금도 가끔 평화로운 느낌이 그리울 때면 당시 찍어둔 동영상을 켜서 본다. 물이 많이 찬 곳은 많이 찬 대로 물소리만 났고, 별로 차지 않은 곳은 또 그곳대로 수풀을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예쁜 연꽃과 개구리를 보며 1시간이 조금 넘게 흐르자, 이날 머물 캠핑장에 도착했다.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어서 내렸다. 이날 텐트는 우리가 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미리 쳐진 텐트에 들어가는 것이어서 편했다. 딱히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부시 캠핑이었지만 각 텐트 뒤로 푸세식 화장실을 마련해놔 나름대로 개인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는 다시 모코로를 타고 동물들을 보러 갔다. 그동안 해온 것이 게임 드라이브였다면, 이날은 게임 워크였다. 걸어가면서 영양들이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고, 얼룩말들의 뒷모습도 보았다. 차를 타고 달릴 때만큼 동물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산책하며 동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고 조마조마한 재미가 있었다. 해가 지면 사자나 표범 등 포식자들이 나타날 수 있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캠핑장으로 되돌아갔다. 밤에는 다 같이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폴러들이 노래도 부르고 우리 다 함께 춤도 춰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실컷 시끄럽게 놀다가 따뜻한 차를 마시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별이 쏟아지는 밤을 즐겼다. 아프리카에서 별이 무수히 박힌 밤하늘을 여러 번 보았지만, 이날 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곳의 텐트와 나무들, 그리고 고요함 속에 가끔씩 들려오던 물소리와 동물 울음소리. 무엇보다도 다정했던 우리의 폴러들.

우리를 쳐다보는 얼룩말들 (좌) / 정박된 모코로들 (우)
오카방고 델타의 밤하늘

  아침이 되고, 저 멀리 안개가 깔린 것이 보였다. 간단한 아침식사와 주변을 산책하며 바라본 일출을 마지막으로, 오카방고 델타를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모코로를 타는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윌이 열심히 젓다가 물에 빠져버려서 큰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다행히 배는 뒤집히지 않아서 나와 아니타, 그리고 우리의 짐들은 무사했다.

  모코로에서 내려 폴러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을로 향했다. 미리 준비해 간 공, 줄넘기, 스케치북, 노트 등등의 선물들을 폴러들과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이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누가 손을 잡아서 보니 귀염둥이 꼬마 아가씨가 내 손을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았다. 도넛을 주고 물도 주고 콜라도 줬지만, 한 손은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다들 카메라를 들고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내 손을 잡고 있던 캐런은 우리가 비스킷을 한 상자씩 나눠주기 시작하자 두 손으로 비스킷을 들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것마저 귀여웠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게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오로라였다. 지구의 풍경일까 의심될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을 여러 번 보았지만, 사실 내 기준으로는 그 어떤 것도 오로라에 비할 수는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난생처음 오로라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요쿨살롱에서 빙하 해변과 빙하호수를 보고, 밤에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날부터 계속된 비에 오로라에 대한 희망은 거의 접어버린 채, 식당에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 가이드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툭 한 마디 던졌다. 밖에 오로라 있다고. 오로라는 굉장히 선명한 초록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날 본 건 푸른빛이 섞인 은은한 은색에 가까웠다. 사진으로 찍으면 초록색이 훨씬 더 짙게 나왔다. 하늘 위를 가로지른 한 줄기의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보았다. 이날은 오로라 지수가 3(최고는 9, 하지만 지수가 전부는 아니다)밖에 안 되었는데도 기적적으로 비구름이 다 걷혀서인지 굉장히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며칠 뒤에는 오로라 지수가 8이라고 하여 오로라 투어를 한번 더 신청해서 보러 갔다. 하지만 이날은 높은 지수에도 불구하고, 구름이 굉장히 많이 낀 흐린 날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막판에 출발하려는 순간 약 3분 정도 커튼처럼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아이슬란드, 난생처음 본 오로라 (좌) / 두번째 오로라 (우)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운이 상당히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그날 오로라 활동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주위가 어두워야 하며, 날이 맑아야 하고, 그 완벽한 시간과 장소에 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졌다 할지라도 오로라가 1시간 넘게 있어줄지 10분가량만 머물렀다 사라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물론 오로라 투어를 신청하기는 했지만(차를 렌트하지 않는 이상, 주위가 모두 캄캄한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투어가 필수다), 이미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두 번이나 본 나는 이번 알래스카 여행에서는 오로라를 꼭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두 번 본 것만도 굉장한 행운이라며. 그러나 그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지.

  페어뱅크스(Fairbanks)에 도착한 다음날, 투어 가이드는 9시에 숙소로 픽업을 왔다. 이날 오로라 지수는 내가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봤을 때와 같이 3이었다. 이 투어의 장점은 숲 속 오두막 같은 곳으로 가서 밖에서 사진을 찍다 춥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실내로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11시는 되어야 완전히 어두워질 테니, 10시쯤 오두막에 도착하면 우선 커피 한잔씩 하고 간식을 먹다가 다시 나가면 될 거라고 했다. 그 순간, 차량 맨 앞에 앉아있던 한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저게 오로라는 아니겠지요? 아직 9시 반도 안 됐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분명 오로라였다. 아직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짙은 푸른빛의 하늘 위에 초록색 빛줄기, 초록빛이 도는 은색이 아닌 분명한 형광 초록색의 빛줄기가 회오리처럼 사르르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보이는 오로라의 색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하늘이 아직 푸른빛을 띠니 오로라의 초록빛이 더욱 선명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두가 추운 것도 잊고 밖에 서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오로라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너무나 아름답다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나도 처음 보았을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뭉클하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 기분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환상적이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동영상으로도 오로라가 춤을 추는 것이 잡힐 정도였다. 내가 이 정도로 예쁜 오로라를 보고 있다니,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오로라 자체도 너무나 멋졌지만 나무와 오두막들이 있는 주위 풍경 또한 예뻐서 넋을 놓게 되었다. 9시 반에 차에 타고 있었을 때에는 오로라가 금방 사라질까 마음이 조급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도 오로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환상적이었던 알래스카의 오로라
봐도 봐도 황홀한 풍경

  오로라의 색은 초록색뿐 아니라 분홍색, 보라색 등 더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에 홀리는 기분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좋을 때도 많지만, 가끔 이런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볼 때면 이 순간을 나눌 가까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펐다. 나는 1시간가량 사진을 찍은 뒤 오두막에서 잠시 쉬다, 그다음 1시간 동안은 카메라 없이 가만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별똥별도 몇 번 보았지만 늘 그렇듯 소원을 빌 새는 없었다. 12시가 넘자 오로라가 조금 주춤하기 시작해, 새벽 1시 반쯤 숙소에 돌아갔다. 다음날 알게 된 것인데, 오로라는 새벽 2시 반쯤 갑자기 또다시 강해지더니, 새벽 4시까지도 조금씩 이어졌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잠이 든 사람이 새벽 4시에 잤기 때문에 오로라가 대체 몇 시까지 계속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마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지 않았을까. 투어 가이드들도 놀랄 만큼 긴 시간 동안 힘차게 춤을 춰준 오로라였다.



  엄청난 자연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항상 비슷한 걸 느끼고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황홀함 뒤에는 나약함이 오고, 화려함 뒤에는 쓸쓸함이 온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이 위대한 지구와 우주에 비하면 얼마나 먼지 티끌만 한 존재인지를 새삼 느끼는 것, 그건 슬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모든 걸 잊게 해주는 시간이다. 고민도, 근심도, 그리고 실없이 웃었던 일들까지도 차례차례 어디론가로 넘겨버리고 나면, 멍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언제나 깨끗하게 비우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사소한 것들은 과거 속에 뭉쳐 버려지고, 이제 오로지 미래에 대한 생각에 빠져든다. 비록 그 결심과 다짐들이 오래가지는 않더라도, 자극이 되어주는 자연풍경은 세상에 넘쳐나니 참으로 다행이다.



* 장소들:

브라질 /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Iguazu / Iguacu Falls)

미국 애리조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알래스카 페어뱅크스(Fairbanks)

보츠와나 오카방고 델타(Okavango De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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