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문재인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23개 사업 총 사업비 24.1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결정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숙원사업 배려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비춰지고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지자체별 나눠먹기식 추진이란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 발표를 계기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남발 방지법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예비타당성조사는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 국가정보화 기본법에 의한 정보화 사업,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른 국가연구개발사업 중 총 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거나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사업과 그 밖의 사회복지‧보건‧교육‧노동‧문화 및 관광‧환경 보호‧농림해양수산‧산업 및 중소기업 분야 사업 중 500억 원 이상 수반 신규사업이 해당된다.
이들 사업 중 일부영역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할 수 있다. 이번 23개 사업들은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국가재정법 제38조 2항 10호)으로 인정되어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수립되었거나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하여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방식으로 결정됐다.
애초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목 아래 추진됐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규모(24.1조원)는 당초보다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최대 42조원까지 예상됐던 면제 규모가 24조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만으로도 대규모 토건사업을 방관하는 정부로 인식되기 쉬운 것을 피하고자 한 정치적 결정으로 비춰진다.
그럼에도 이번 면제 규모는 노무현 정부의 1조9075억 원과 박근혜 정부의 23조6169억 원보다 규모가 크며 5년 총 기간을 따지자면 이명박 정부의 60조3109억 원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문재인 정부의 면제 규모는 2017년‧2018년 2년 간 29조5927억 원에다 이번 24.1조원이 누적되면 약 54조에 달하기 때문이다.
과거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했던 사업과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나 중단시키고 면제시킨 사업이 각각 7건과 8건에 달하는 점도 문제다. 이들 사업이 총 사업의 2/3에 달하는 점은 무리하게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시도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과거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했던 사업은 남부내륙철도,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 제2경춘국도 사업, 울산외곽순환도로, 울산산재전문병원, 동해선 단선 전철화 사업이 있다.
건설부문을 기준으로 예비타당성조사 구조는 경제성 분석이 35~50%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정책성 분석(25~40%)과 지역균형발전 분석(25~35%)이 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뤄질 수 있는 사업들이 있다.
굳이 총선을 1년 앞둔 현 시점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사업들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시켜서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없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라는 정치적 결정으로 법적 기준과 절차가 생략되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함으로서 더 불필요한 정치적 정쟁만 야기하는 것은 집권여당이 손해를 보는 길이다.
경제성이 낮아도 다른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통과해서 떳떳하게 사업을 진행하면 될 일을 균형발전 논리를 들이밀며 없던 타당성을 부여하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진행한다면 철저한 조사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점검해야 한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무분별한 토건사업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절차가 예비타당성조사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토건사업은 건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비용까지 세금 투입으로 해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최소한의 타당성을 살피는 절차인데 이마저도 면제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인 절차를 차단하는 것일 뿐이다. 이를 위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의 법적근거인 국가재정법 제38조를 강화하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남발 방지법’이 하루 속히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