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 만신전

이탈리아 여행

by 배심온

아침 일찍 만나는 트레비분수는 새초롬하다. 인파는 없고 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몇 남자들이 분수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청소만 하는 게 아니라 전날 사람들이 던지고 간 동전을 뜰채로 거둬들이고 있다. 아직 분수는 작동하지 않고, 넵튠을 태우고 날아오르려는 말들은 이제 막 박차를 가하는 듯하다. 물을 벗어나려는 말들의 꼬리는 물고기의 그것이다.

골목을 따라 조금만 이동하면 판테온이 나온다. 판테온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는 압도당한다. 입구에는 엄청난 크기의 돌기둥이 여러 겹 겹쳐 서있고, 맞은편에는 이집트에서 직접 공수해 왔다는 오벨리스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티고 있다. 판테온 광장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판테온의 파사드에 나있는 구멍들은 베드로 성당을 짓는데 쓰려고 조각품들을 떼어낸 자국이라고 하니, 로마의 문화적 자산과 스케일에 헛웃음이 나온다.

판테온은 만신전이다. 모든 신을 섬기고 그들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 이천 년 전에 만들고 졌고, 다시 교회로 쓰이기도 하다가 지금은 이탈리아 영웅들이 묻혀있는 묘지이자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판테온의 내부는 기둥이 하나도 없으며 가운데가 뚫려있는 돔으로 되어있다. 천정이 뚫려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향해 천사의 작품이라 했고, 부르넬레스키도 이것을 본떠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만들었다고 한다. 라파엘로도 이곳을 너무 사랑했고, 죽어서 여기 묻히기를 갈망했다는데,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성모 마리아상 아래 두 마리의 비둘기가 그의 영면을 지키고 있다. 아주 작고, 불빛도 희미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만큼 조용한 감동이 밀려온다.

기둥 없이 지붕의 하중을 견디는 방법이 아치인데, 아치를 180도 돌리면 돔이 된단다. 판테온은 그 돔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를 줄여나가고, 돔의 내부에서도 하나하나 홈을 파서 각각의 아치를 만드는 동시에 하중을 줄이는 효과를 얻는다. 놀랍게도 아치 가운데 정점에 박게 되는 키스톤이 판테온에는 없다. 판테온의 뚫린 천정은 그 키스톤이 있어야 할 자리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하늘이 보이는 눈, 오큘러스(oculus)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돔 여기저기에 하얀 그림자를 남긴다. 누군가의 얼굴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영혼 같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태우는 연기가 이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동시에 그 기류가 들어오는 비를 막는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많은 비가 내릴 때는 판테온 내부로 비가 들어오지 않겠는가? 과연 바닥에는 빗물이 빠져나갈 구멍들이 마련되어 있다. 역시 로마의 상하수도 시설이 문화번성의 기초가 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위만 쳐다보느라 목이 아팠던 우리는 하마 콧구멍 같은 빗물 구멍에 네발을 모아, 여기에 왔다는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판테온에 하나 남은 묏자리에 누가 묻힐 것인가에 대해 설왕설래한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평생 로마 팀을 떠난 적이 없는 축구선수 토티를 추천한다고 한다. 프란체스코 토티를 검색하면 로마의 황제가 뜬다. 21세기 로마 황제는 콜로세움에서 생사여탈을 결정하던 황제가 아니라, 필드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라고 하니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후에도 누울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겠다.

판테온은 곧 나보나 광장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곳에서 보로미니의 아픈 죽음을 살피게 된다.


2025.5.31. 아침산책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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