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부서지듯 쏟아지는 예쁜 아침이었다. 요즘 목이 아파서 쉬는 시간에 연구실에 가서 따뜻한 차 한잔을 타서 교실로 들어왔는데 교탁 위에 못 보던 노란 물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은행잎 두 개가 서로 얽혀있는 듯한 모양새에 귀여운 눈과 입이 그려져 있었다.
"어머, 얘들아 이게 뭐니?"
토끼 눈을 하고 내가 물었다.
"그거 온이가 선생님 드린다고 은행잎 나비 만든 거예요! 선생님, 은행잎 줄기 잡고 위아래로 움직여보세요. 나비 날개도 움직여요!"
아이들이 신이 나서 입을 모아 말했다. 올해 우리 반에는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섬세한 감성과 뛰어난 미적 감각을 가진 온이는 그림도 잘 그리고 종이접기, 만들기, 바이올린 연주 등 모든 분야에서 재능이 출중한 아이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정말 대단하다. 온아, 앞으로 나와서 은행잎 날개 펄럭이는 거 한 번 보여줄 수 있니? 선생님이 온이와 나비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추억으로 저장해놓고 싶어서 그래."
온이는 수줍은 듯 앞으로 나와서 은행잎 줄기를 잡고 아래위로 움직였다. 부드러운 노오란 은행잎 나비의 날개가 팔랑팔랑 나풀거렸다.
그 순간 내 마음도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듯 행복한 노란색으로 서서히 물들었다.
'아.. 이 순간, 이 감정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선생님을 위해 노란 은행잎을 주워 와서 정성껏 나비를 만들어준 온이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기뻐해주는 우리 반 아이들도, 교실 안에 가득한 따뜻한 가을햇살과 그보다 더 따뜻한 우리 반의 온기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14년째 교직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에도 아플 때에도 나를 버티게 하고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아이들이 주는 완전무결한 순수함과 사랑이었다.
부족한 나를 성장시켜 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주고, 사랑을 듬뿍 주고 싶게 만드는 아이들..
네이버 블로그를 보다가 10년 전 내가 썼던 교단일기가 보여 다시 읽어보았다.
마치 어제 쓴 듯한 일기가 어느새 10년 전 일이라니 놀랍기도 하고, 그때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여전히 이 길을 걷고 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행복한 순간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니 10년이 지나도 그 행복이 다시 오롯이 느껴지는구나...
앞으로도 나는 따사로운 가을 오후의 햇살을 마주하듯이, 오래오래 따뜻하게 아이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