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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Sep 24. 2024

학부모님과 심야 운동장 상담

행복의 열쇠는 진심 어린 연결과 소통

 "엄마, 나 우진이(가명) 형아랑 놀아도 돼?"


 학원에 다녀와 저녁식사를 마친 아들이 말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우진이 형아는 엄마 반 형이잖아. 어떻게 연락하려고?"


 "나 그 형 번호 있어. 지난번에 학교 끝나고 형이 나한테 번호 물어봐서 알려줬어. 시간 날 때 같이 놀자고 했어."


 아들은 말을 마치고 우진이 형에게 전화를 걸더니 7시 50분에 운동장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나는 해가 져서 어두컴컴한 늦은 시간에 내 아이와 우리 반 학생이 함께 밖에서 노는 것이 걱정이 되어 따라나섰다.

 

 운동복 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뒤, 안경을 쓰고 집을 나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바나나 우유 세 개를 사서 운동장에 갔다. 그곳에는 우진이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진아 안녕~! 멋있는 축구복을 입고 왔구나! 혼자 왔니?"


 "감사합니다. 엄마랑 같이 왔는데 저기 걸으면서 운동하고 계세요."


 "그렇구나. 혹시 선생님 아들이라서 놀아주려고 나온 것은 아니지? 그러면 선생님이 너무 미안하고 부담이 돼서... 너희 둘이 잘 맞아서 노는 것은 괜찮은데 선생님 아들 놀아주려고 하는 건 안 해도 되니까 부담 가지면 안 된다?"


 "네, 아니에요. 제가 같이 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럼 다행이다. 그래도 고마워~! 그럼 둘이 놀고 있어. 나는 운동장 돌고 있을게! 목마르면 여기 바나나 우유 벤치에 둘 테니까 언제든 마시렴."

 

 "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인사하는 우진이와 아들이 편하게 놀 수 있게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한 다섯 바퀴쯤 돌았을 때, 주차장 쪽에서 나와 비슷한 궤도로 돌고 있는 우진이 어머님을 발견했다.


 "우진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밤에 다 뵙네요. 어머님도 강제 운동 나오셨죠? 호호"


 내가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자 어머님께서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6월부터 원래 저녁에 운동장에 나와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던 터라 괜찮아요. 하하"


 "그럼 우리 운동장 같이 돌까요? 혼자 돌려니 심심해서요, 하하. 요즘 우진이는 학교 생활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사회 시간에 발표도 정말 잘하고, 어려운 퀴즈도 잘 맞혀서 아주 기특하더라고요~!"


 어머님께서 나를 어려워하실까 봐 밝은 톤으로 이야기하며 대화를 이끌자 어머님께서는 내 옆으로 오셔서 함께 운동장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셨다.


 "우리 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다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내년에도 이 멤버, 이 선생님으로 고대로 6학년에 올라가게 해달라고 교장선생님께 이야기해 볼까도 생각했어요."


 "어머, 정말요? 어머님, 지금 딱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셔서 제가 구독자 이벤트 선물 하나 드려야겠어요~! 자, 여기 바나나우유 하나 받으세요! 호호호"


 아까 편의점에서 2+1 행사를 해서 바나나 우유를 세 개 샀는데 이렇게 어머님께 드릴 수 있어 뿌듯했다. 어머님께서는 늘 받기만 하는 것 같다며 손사래를 치시다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우유를 받으셨다.


 그리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어머님께서 아이에 대해 고민하시는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아이는 잘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위로도 해드리며 30분 넘게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호주 가셨을 때, 아이들이 선생님을 정말 보고 싶어 했어요. 우진이도 방학 때 선생님 오시는 날짜를 얘기하면서 손꼽아 기다리는 거 있죠? 저희 집에 놀러 온 1반 친구들도 선생님께서 1학기말에 써주신 롤링페이퍼 편지를 보면서 선생님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어머, 정말요? 제가 다 감동이네요. 사실 저도 호주 가서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호텔방에서 울었어요. 방학식 3일 전에 선생님이 연수를 받으러 먼저 떠나게 되어서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에이~ 2학기 때 이렇게 돌아오셨는데 뭐가 미안하세요.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고 멋지세요."


 어머님의 따뜻한 말씀에 나 또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어느새 밤 9시가 다 되어 헤어지는 길, 우진이와 어머님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찍은 사진들을 어머님께 보내드렸다.



 어머님의 따뜻한 문자를 받으니 나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사람과 사람 간에 진심으로 연결된 느낌, 서로 재는 것 없이 신뢰하고 소통하는 순간. 이러한 순간들의 힘으로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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