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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 Aug 08. 2022

서울의 궁궐을 잘 알고계신가요?

서울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5대 궁궐

서울의 궁. 조선시대로부터 그 자리를 지킨 서울의 궁궐은 대표적인 서울의 전통 유산이자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궁에 자주 나들이를 갔지만 궁의 제각각의 역할은 무엇인지, 각 건물(전각)은 조선시대 축조된 이후 그 원형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지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곤 했다.


누군가 경복궁은 어떤 궁인가요? 덕수궁은 무엇을 했던 궁인가요? 라는 질문을 했을때 기억에 남는 명확한 정의를 내려줄 수 있도록 각 궁의 특징을 나의 방식대로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해 보았다.



1. 경복궁, 한양 도시 계획의 중심


출처 : 문화재청

경복궁,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이자 한양 도시계획의 중심


조선 왕조 임금이 거처했던 제일의 궁궐. 

북으로는 북악산,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한양 도시계획의 중심이다.

중심부분은 대칭적으로 건축되어 통일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이 외의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한양 천도 후 1396년부터 축조하여왔으나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 철거되었고 1990년부터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현재까지도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2. 창덕궁, 임금이 가장 오래 거처한 궁궐


출처 : 문화재청


창덕궁,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한국적 아름다움 속 비운의 역사를 품고있는 궁궐


주변의 자연에 어우러지게 건물을 배치하여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궁궐. 경복궁과 함께 임금이 거처했던 궁이며 역대 임금이 가장 오래 거처한 궁궐로 실질적인 법궁이었다.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자연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후원으로 유명한 궁이다. 이에 반해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며 광복 이후 마지막 황실가족이 생활하다 세상을 떠난 가슴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궁궐이기도 하다.





3. 창경궁,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


출처 : 문화재청


창경궁, 조선시대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이자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 있는 궁궐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이라는 하나의 영역으로 1483년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확장하여 지은 궁.

주로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즈음 일본인들이 이곳에 온실과 동물원을 지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하려 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광복 이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공사를 진행하였으며 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건축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현재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는 온실로 활용하고 있다.





4. 덕수궁, 대한제국 역사를 함께한 황궁


출처 : 문화재청


덕수궁(경운궁), 자주 근대국가를 염원했던 대한제국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황궁


덕수궁은 선조가 임진왜란 이후 저택과 인근 민가를 합하여 임시로 지내던 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광해군때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했으며 인조 즉위 이후 규모가 축소되며 궁궐의 기능을 잃었다.


이로부터 약 300년 후인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하며 서양식 건물이자 초기 근대 건축물인 '석조전'과 '중명전'을 지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규모가 다시 대폭 축소되었으며 경운궁에서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는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생활사와 황실사 등을 담은 전시공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중명전 또한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5. 경희궁, 도성 서쪽의 고즈넉한 이궁


출처 : 서울시


경희궁(경덕궁), 도성의 서쪽에 위치한 임금의 이궁


조선후기 임금이 잠시 머물던 이궁이었다.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이라고도 불렸다. 인조~철종까지 10대에 걸친 임금들이 이궁으로 사용하였으며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경희궁에서 보냈다고 한다. 


본래는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으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경희궁의 건물을 상당수 옮겨갔으며 일제강점기 때 주요 전각들이 헐려 나가며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서울시에서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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