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안전은 나의 의무이기에

아들의 자전거와 부모의 마음

by 고래 아저씨

잊을 수 없는 금강변의 추억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 녀석이 작년부터 픽시라는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전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나의 지난 추억 하나가 머릿속을 스친다. 내가 아주 어린시절, 집에는 항상 많은 형제들 때문인지 자전거가 함께 있었고 유치원 때 3명의 형이 동생 데리러 각자 자전거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던 기억이 있다. 그 자전거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우리 4형제를 하나로 묶어주는 소중한 매개체였을 거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전거를 끌고 다 함께 금강 주변으로 나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던 그 순간의 상쾌함은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강변을 달리고 나서 옹기종기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던 그 맛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때의 자전거는 우리에게 자유였고, 형제애였으며, 잊지 못할 유년의 낭만이었다. 물론 지금도 1번을 꼭 타자면 다짐을 하곤한다.


위험한 유혹, 픽시 자전거

이제 훌쩍 커버린 아들 녀석도 그때의 나처럼 자전거가 주는 자유를 갈망하는 모양이다. 녀석은 작년부터 픽시 자전거를 사달라고 끈질기게 졸라대며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픽시의 위험성을 익히 알기에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들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에, 아들의 부탁을 처음으로 매몰차게 거절했다. 물론 브레이크가 있는 것들도 많지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물론 브레이크가 있는 것이 덜 위험하기는 하지만...

나의 완강한 거절에 아들은 픽시 대신 묘기용 BMX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안 되면 전기로 구동을 도와주는 전기자전거와 일반 자전거가 섞인 듯한 모델이라도 사달라고 한다.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약해져 거절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도 작년에 들려왔던 픽시 자전거 사고 소식들은 부모로서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온다.

내가 직접 타보지는 않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만으로도 지레 겁을 먹게 된다. 도로 위를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래서 지금도 픽시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아이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아이가 다치지 않는 것이다.


종이로 만든 바퀴의 아련함

어제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니 거실 한구석에서 아들 녀석이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존에 타던 로드 자전거의 바퀴를 떼어내고, 유튜브를 보며 종이를 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사주신 이후, 내가 중고로 저렴하게 사주었던 그 로드 자전거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제는 낡았다며 궁시렁 대던 그 자전거였다.

아들은 자전거 림 부분에서 특유의 소리가 나도록 종이로 개조를 해보겠다고 그 어린 손으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종이로 모양을 오리고, 그 위를 우레탄 폼으로 덮어 마무리를 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설명한다. 진짜 픽시를 가질 수 없으니,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 한편이 짠해졌다. 집안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조심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내 시선은 계속 아이에게 머물렀다.

옆에서 글을 쓰면서도 꼬물거리는 아들의 손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 스스로 만들어보려는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주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갈등은 깊어만 갔다. 결국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한번 인터넷 창을 열 수밖에 없었다.


타협과 새로운 약속

인터넷 검색창에 아들이 그토록 원하던 픽시 자전거를 입력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화면 가득 나오는 안전성 문제와 사고 사례들은 내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결국 나는 다시 검색창을 닫으며 픽시는 절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그나마 안전하고 튼튼해 보이는 BMX 자전거를 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아들의 마음속 1순위는 픽시이고, 2순위는 로드 자전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아직 초등학교 시절에는 튼튼하고 조작이 직관적인 BMX가 더 적합해 보인다. 아들이 원하는 형들이 타는 멋지고 비싼 고급 로드 자전거는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로드 자전거는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중학교에 입학하면 그때 선물하겠다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의무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이 부모에게는 참 고통스럽다. 하지만 아이의 욕구보다 아이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부모의 더 큰 마음일 것이다. 건강함은 아이 자신이 지켜야 할 의무이지만, 안전함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켜줘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는 때로 사랑하기 때문에 거절해야 하고, 아끼기 때문에 엄해져야 한다.

그 안전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네 부모님들은 평생을 잔소리꾼으로 사셨나 보다. 내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차 조심해라", "밤길 조심해라"라고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 "밥은 챙겨 먹어라"라는 투박한 안부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식이 부디 안전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짊어진 무거운 사랑의 의무였다.

아빠와 자전거.jpg


작가의 이전글올리브영, 그 낯선 풍경 속에서 읽는 시대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