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눈길 위, 강아지 발자국을 바라보며
겨울의 새벽은 모든 소음을 설익은 한기 속으로 가두어 버린다. 무거운 이불을 걷어내고 눈을 떴을 때, 지인이 며칠 맡기고 간 강아지 '콩'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쇼파 위에서 꼬리를 흔들지도, 짖지도 않은 채 그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산책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 생리적 급박함에 가까워 보였다.(나 또한 순전한 나의 해석^^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화장실을 찾으니, 우리 둘은 낯선 동거인이지만 방광의 리듬만큼 닮은게 아닐까 하고...
낯선 공간에서 배변을 참느라 녀석이 밤새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서둘러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콩이에게도 외출용 털옷을 입히며 현관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콩이의 발톱이 타일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적막을 깼다. 녀석이나 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철학적인 사색보다 비우는 기쁨이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현관문을 밀자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훅 치고 들어왔다.
세상이 하얀 도화지로 바뀔 때
밤사이 세상에는 아무런 예고 없이 하얀 도화지가 깔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눈이 내린 것인지, 우리가 내딛는 발자국마다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무늬가 새겨졌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길목조차 눈의 반사광 덕분에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어둠속의 눈내린 밝음은 조명이나 햇빛의 그 밝음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다. 그것은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아니라, 어둠마저 하얗게 덮어버린 거대한 침묵 같았다. 평소와 같은 바닥이 오늘은 결벽증 환자의 침구처럼 눈부시게 깨끗했다.
콩이가 마주한 세상은 어제 아침이나 저녁 산책길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인 듯했다. 녀석은 현관을 나서자마자 코를 눈 속에 처박고 격렬하게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점잖게 걷던 녀석이 갑자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눈밭을 향해 튀어 나갔다. 목줄을 잡은 손에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질 정도로 콩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부쩍 발랄해져 있었다. 문득 녀석이 바라보는 이 하얀 세상이 우리와는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맹이 마주한 선명한 명암
강아지는 색을 온전히 구별하지 못하고 색맹에 가깝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화려한 총천연색의 영화라면, 콩이에게 평소의 세상은 채도가 낮은 낡은 흑백 텔레비전 화면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간판의 네온사인이나 알록달록한 단풍은 녀석에게 그저 비슷한 회색 덩어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콩이에게 새벽녘 쏟아진 눈의 세상은 단순히 '하얀색'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흐릿하던 세상의 경계가 비로소 칼로 자른 듯 명확해지는 시각적 혁명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색의 구분이 희미한 존재에게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다는 것은 평소보다 훨씬 강렬한 '명암의 대비'를 선사하는 사건이다. 길 위에 쌓인 흰 눈, 흰 눈 위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콩이의 눈에 그 어떤 색채보다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지금 콩이는 단순히 눈 위를 뛰는 것이 아니라, 생애 가장 선명하게 도드라진 세상을 온몸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마치 난시가 심한 사람이 처음으로 안경을 썼을 때 느끼는 그 개안의 희열을, 녀석은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차가운 새벽, 녀석은 시각적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셈이다.
복잡함 속에 잃어버린 본질
선명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많은 색깔과 정보 속에 살며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곤 한다. 화려한 색채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때로는 사물의 진짜 윤곽을 가리는 위장막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사회적 체면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느라 정작 나라는 사람의 알맹이를 잊고 산다. 하지만 오늘 아침 콩이의 발걸음에는 그 어떤 망설임이나 가식도 없었다. 녀석은 눈앞에 펼쳐진 명징한 세상을 향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정직하게 내달렸다.
하얀 눈 위에 새겨진 콩이의 발바닥 도장들은 일정하지 않았지만, 그 불규칙함 속에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즐겁다'는 명확한 해석이 담겨 있었다. 내 발자국이 미끄러질까 봐 조심스러워하며 남긴 쭈뼛거리는 흔적이라면, 콩이의 발자국은 환희에 찬 춤사위였다. 녀석은 눈밭에 자신의 체취를 남기고, 눈은 녀석의 발자국을 기록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단순함이 복잡함을 압도하는 순간, 진실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드러난다. 콩이가 보여준 것은 색깔이 없어도 세상은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벅차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상이라는 눈길 위에 글을 쓰다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이 눈밭을 걷는 일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관찰한다는 것은 사물이 가진 겉치레의 색을 걷어내고 본연의 명암을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나만의 선명한 발자국을 꾹꾹 눌러 남기는 일과 같다. 콩이가 눈 위를 뛰어다니며 자신만의 '기쁨의 지도'를 그리듯, 나 또한 일상이라는 눈길 위에 나만의 언어로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내 문장이 콩이의 발자국처럼 비뚤빼뚤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진심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는 종종 화려한 미사여구나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문장을 쓰려고 애쓴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에 남는 글은 기교로 덧칠한 글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글쓴이의 체온이 묻어나는 진솔한 글이다. 오늘 콩이가 눈밭에 남긴 발자국처럼,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감정이 담긴 글이야말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콩이의 뒤를 쫓으며, 내 글쓰기가 녀석의 산책처럼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해지기를 바랐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쓴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몰입이 필요했다.
하나의 문장이 된 우리의 길
짧은 10여 분의 산책을 마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뒤를 돌아보니 우리 두 존재가 걸어온 길이 하나의 긴 문장처럼 이어져 있었다. 나란히, 때로는 엇갈리며 찍힌 발자국들은 이 새벽 우리가 나눈 무언의 대화를 기록한 필사본이었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매섭고 손은 시려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도 훈훈했다. 콩이는 만족스러운지 현관 앞에서 몸을 한번 크게 털어내며 꼬리를 붕붕 돌렸다.
비록차가운 새벽이었지만, 콩이의 발랄한 뒷모습 덕분에 내 마음에는 온기 있는 문장 하나가 남았다.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잠시 흑백의 세상에 몰입했던 이 짧은 시간은 내게 긴 여운을 주었다. 때로는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볼 때, 가장 선명한 진실이 보이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