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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Feb 22. 2024

다섯 가지 재앙

일본 고전수필의 백미, 가모노 초메이의 『방장기』

  나에게 작지 않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과는 교류는 커녕 인연을 끊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또한 과거 일제에게 받았던 피해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활발한 교류는 다소 늦은 편이었는데,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문학’, 그 중에서 ‘수필’, 또 그 중에서도 일본의 고전수필은 미증유(未曾有)에 가까우리만큼 교류나 연구가 희소하였다.


상처를 주고 받았던 동료나 친구가  여러분과 나에게도 있을 수 있다.  왼쪽의 사진이 오른쪽과 같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번에 살펴볼 작품은 위의 연유로 인해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미 일본에서는 중국 루쉰의 『아Q정전』과 같이 학생들 교과서에 문학작품으로 실릴 정도로 인지도를 가진 ‘가모노 초메이(鴨長明)(1155~1216)’ 의 『방장기(方丈記)』라는 고전수필이다.  

   

 『방장기(方丈記)』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다섯 가지 종류의 재해(대화재, 회오리바람, 갑작스런 천도(遷都), 극심한 기근, 대규모 지진)를 중심으로 인간의 무력함과 인생무상이라는 작가의 정서를 비교적 직접적이면서도 문예적인 문체로 잘 나타내고 있다. 간결하고 사실적인 표현은 서양의 여타 고전수필과는 달리 중의적인 해석을 허락하지 않으며, 인생의 끝자락에 저술한 이 책은 작가 초메이의 불교적 인생관을 이곳 저곳에 흩뿌리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재앙 (지진과 해일, 화산폭발, 대화재, 회오리바람)은 국민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니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



  재산이 많으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걱정이 커지고가난하면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강해진다타인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그 몸이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소유가 되어 버린다

 반대로 자신이 타인을 돌보게 되면 그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 끌려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세상의 관습을 따르면 자주성을 빼앗겨 몸이 괴롭다이에 따르지 않으면 마치 상식이 없는 미치광이처럼 보인다어떤 곳에 살 자리를 마련하여 어떤 일을 하면서 잠시라도 이 몸을 안주케 할 수 있으며단 한 순간이라도 마음의 불안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초메이가 말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나도 이 사진을 보고 할 말이 없다...



 필자는 인간사를 염세적으로 본 초메이의 위 글을 접하고는 작금의 부동산 시장을 떠올려 본다. 약 800년 전 선각자의 충고는 특히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운신(運身)의 폭이라는 한줄기 빛을 영구히 막아버리는 우리들을 향하는 것 같다. ‘세상의 관습을 따르면 자주성을 빼앗겨 몸이 괴롭다.’와 같이 부동산이라는 시대적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하였지만, 결국 지금 이 순간도 번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에게 초메이는 이와 같이 당부하는 것이다.


 초메이는 18세에 부친을 여의고 시모가모 신사의 신관이 되지 못한 개인적 충격으로 50세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출가 이후 히노(日野)의 산속에서의 초암(草庵)생활을 통해 『방장기』와 같은 초암문학을 꽃피웠으며, 그의 초암은 ‘방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좁은 공간에서도 취미, 생활, 종교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었다. 초메이의 이러한 초암생활과 불교적 사상은 조선 전기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삶의 흔적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초메이는 일본 특유의 자연재해로 인해 김시습의 그것보다 훨씬 미약한 현실 극복의지를 가졌으며, 안타깝게도 전기적(傳奇的) 성격은 흔적도 없고, 유교·불교·도교(선)의 종교적 색채는 윤곽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성이 떨어지는 사유를 하였다.      


     

 대지진이 일어나 도다이지(東大寺)에 있던 대불(大佛)의 머리가 떨어지는 등 매우 심각한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그것조차도 이번 지진에는 미치지 못했다. 당장은 사람들이 어차피 저마다 허망함을 이야기하며얼마 동안은 세상살이 등에 아무 흥미를 지니지 못한 채 덧없음을 말하고 번뇌가 조금씩 엷어지는 듯하더니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대지진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허무하다고 탄식하는 사람은 차츰 줄어들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험을 다섯 가지 재앙을 통해 몸소 겪은 초메이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며 숙명까지 극복하려는 김시습과는 달리, 인간의 운명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며, 받아들임의 미학을 자기반성과 성찰의 경지에까지 확대시키는 시도를 하였다. <자연과 인생이라는 거울>을 통해 초암생활, 즉 진솔하며 소박한 그의 생활상이 불교적 향취와 함께 잘 버무려져 있는 『방장기』는 일본의 불교문학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손꼽히고 있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에 살면서 싫증내는 일이 없다그렇다고 해도 물고기가 아니면 그 기분을 전부 알 수는 없다새는 숲 속에서 살기를 바라지만 새가 아니면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내가 머물고 있는 한적한 곳에서 지내는 절실한 기분도 마찬가지살아보지 않고 그 누가 이 좋은 기분을 확실하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이런 마음을 알 리가 없다.           



 가마쿠라(鎌倉) 시대 말기에 ‘와카(和歌)’로 명성을 떨쳤던 문학가 초메이는 『방장기』를 저술하고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무소유’의 가치를 십분 체득한 위대한 문학가이지만, 신과 세상에 대한 반항 한번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자연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 

운명이 두려워 그 자신이 스스로 운명이 되고 말았다.


https://youtu.be/U0q8LGO6OGA?si=WGrGoljrLxAJ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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