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 수가 없다'가 전하는 가족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변질...
‘돈을 가장 헤프게 쓰는 연령대는?’ 이 질문의 정답으로 30~40대가 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필자도 30대에 취업을 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수중에 돈이 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몰라 무계획적으로, 아니 나름 계획적으로 낭비를 하였던 기억이 있다. 이와 같이 이 시기에 돈을 소중하게 아껴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시기, 다른 말로 가장 돈을 벌기 쉬운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시기의 특별한 소득을 당연시하며 삶의 구조를 이 수준에 맞추고는 한다. 그러다가 덜컥 실직과 같은 불상사가 생기면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를 몰라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 9월에 개봉한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삶에 만족하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가 아내 ‘미리’, 아들과 딸, 그리고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수는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게 되고,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가족을 위해 석 달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1년 넘게 마트에서 일하며 이곳 저곳에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현실감각이 떨어진 것인지 매번 고배를 마시고,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소중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막다른 곳에 몰리게 된 만수는 다른 제지회사에의 취업을 위해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라며 자신과 같이 제지회사에서 근무경력이 있는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데...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잔혹하고도 심지어 기괴하기까지 한 살인예비 및 착수와 진행 과정을 보여준다. 취업을 위해 경쟁자 세 명의 살해를 결심하는, 현실성에 회의감이 드는 스토리에도 한 집안의 가장 만수는 ‘어쩔 수 없기에’ 자신도 원치 않는 살인을 한다는 항변을 하고 있다. 사실 ‘어쩔 수 없었다’는 우리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가장 쉽게 차용하는 핑계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비난받을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음’을 내세워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만수는 가정과 그 구성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물론 아내 미리와 아이들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지만, 집안의 운명은 만수의 재취업 여부에 달려 있었다. 가장에게 얹혀진 절대적인 부담과 무게로 인해 무고한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데에 성공한 만수는 결국 제지회사로의 재취업에 성공하게 된다.
관객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만수는 완전범죄를 실현하여 일련의 살인사건에도 경찰은 전혀 단서를 찾지 못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한편 아내 미리는 남편이 취업을 위해 살인을 하였다는 심증에 이어 물증까지 확보하지만, 가정을 위해 남편의 범죄를 묵인하게 되고 결국 영화는 ‘가정의, 가정에 의한, 가정을 위한’ 사건들로 점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정의 안녕을 위해서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된다는 만수의 인식은 사회에 만연한 ‘조직 이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가정도 엄연한 공동체이자 조직이기에 나의 가정이 절대가치이며,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이상 아파트 층간소음과 같은 가정간의 갈등이 살인이라는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을 위해 살인을 한다는 구조만 보아서는 이 영화와 층간소음으로 인한 참변이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고용과 해고에 관한 근로문제, 가족 구성원들간의 사랑과 갈등, 한 분야의 전문가가 가지는 직업관 등 다양한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산발적인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정작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가지고 있다.
혹시 세상이 핵전쟁이나 대재앙으로 인해 혼란에 휩싸이고, 궁핍과 기근에 모두가 허덕이고 있을 때, 나 혼자만도 아닌 나의 가족만 살아남거나 비축한 식량으로 문제없이 견뎌나가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가? 이 쯤에서 ‘아차!’ 하며 스스로에게 놀랄 필요는 없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불행해져도 우리 가족만 행복하면 더 좋겠다는, 잠재해 있는 정신세계. 그것은 내가 나의 가족에게 가지고 있는 사랑의 크기나 깊이가 아니라 나의 생래적인 악함의 방증(傍證)일 뿐이다. 즉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우리의 속마음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