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디네로 Jan 03. 2022

젤리와 초콜릿의 끝없는 유혹

달콤하고 달콤한 그곳

  몇 걸음 앞, 그곳이 보인다. 실 보기 전부터 그곳 존재를 고 있었다. 애써 모른 척해 보아도, 흔들리는 시선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오늘은 그냥 지나쳐야 하는데. 마음을 굳게 먹지만 이미 나는 세일 및 특가 표시가 된 온갖 젤리와 초콜릿 더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만다. 알록달록한 포장지들에서부터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일단 유혹'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그곳의 이름은 바로 <세계 과자 할인점>이다.

아름다운 이곳

  애들은 대개 단 걸 좋아하기 마련이라지만, 돌이켜 생각해 봐도 난 좀 심했다. 기억이 시작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떠오르는 스틸컷은 늘 손에 쥐고 있던 군것질거리. 초콜릿, 사탕, 과자, 캐러멜 그리고 '불량식품'이라 불렸던 온갖 먹거리…. 외출이라도 려면 주머니에 부터 넣어두고, 새로 나온 사탕류는 맛이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어 못 견디는 아이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느 날 병원에서 제법 묵직한 경고를 받기 전까지 당류 식품에 대한 나의 전횡(!)은 계속되었다.


  간이 흐르고, 간의 고비는 있었지만 어느덧 나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소득이 늘어난 만큼 경험도 많아졌다. 돈을 벌게 되면서 할 수 있는 경험 중의 나는 업그레이드된 먹거리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단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릴 때 먹던 값싼 사탕에서 벗어나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간식도 먹어봤다. 혀에 닿으면 금세 녹아버리는 외국산 생초콜릿에서부터 아메리카노 두 잔 값과 맞먹는 아이스크림 콘, 동네 빵집에선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크림호텔 제과점 케이크 같은 것들, 맛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이런 걸 한 번 먹어봤다는 허세의 맛이기도 했을 것이다.


  럴듯한 사회인이 되려고 애쓰다 지쳐가던 어느 날 회사 근처 남대문 시장 수입 상가에서 우연히 알록달록한 젤리를 보았다. 앙큼한 빨간색과 묘한 보라색의 젤리, 누가 봐도 값싼 설탕 덩어리였던 것은 어때 즐겨 먹던 불량식품의 맛과 비슷했다. 고작 젤리 하나에 왈칵, 반가움이 몰려왔다. 나는 가게에 있던 온갖 종류의 간식을 한 움큼 사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날부터 내 자리 모니터 옆 종이컵에는 한동안 소중한 간식이 들어있었다. 요란한 색깔부터 불량식품 티가 팍팍 난다고 놀리던 부장님, 호기심에 내 종이컵을 들여다보곤 질색하며 "Lots of sugar!"를 외치고 갔던 인도인 상무도 있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대로 그건 '싸구려 설탕 범벅'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나는 즐겁게 젤리를 먹으며, 꺼이 혀를 빨갛고 파랗게 물들이면서 버티기 힘든 한때를 견뎌냈던 것 같다. 비싼 아이스크림이나 생초콜릿으로는 채울 수 없는 단맛이 거기에 있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나이 들어가는 지금도 단맛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어쩔 수 없이 욕망을 누르고 있는 것일 뿐, 곳곳에 있는 세계 과자 할인점은 수시로 나를 끌어당긴다. 한때 나에게는 최고의 맛집, 이제는 남대문 수입 상가까지 갈 필요도 없는데 더는 그때처럼 먹을 수 없다니. 종종 생각한다. 그때 그렇게 지나치게 당류를 섭취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나는 건강을 유지하며 여전히 행복하게 초콜릿과 젤리를 먹고 있었을까. 아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못 먹는 날이 왔을 텐데, 그러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둘 걸 그랬다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아쉬움과 후회와 정신 승리를 여러 번 오가며, 간식을 집어 들어 계산하려는 마음을 겨우 이겨내고는 힘들게 '나만의 맛집'을 지나친다. 무겁고 느린 발걸음이다.



디네로 소속 한국문인협회 직업 에세이스트
구독자 294
이전 15화 사실 저는 보신탕을 좋아해요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푸드파이터는 아니지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