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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네로 Dec 20. 2021

사실 저는 보신탕을 좋아해요

개고기, 그 비밀스러운 취향

  밝혀도 되는지 모르겠다. 조심스레 커밍아웃하자면, 나는 보신탕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을 따라 자연스레 먹었고, 자라는 동안에도 아무렇지 않게 말해오던 내 식성이다.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눈초리 대부분, 살짝 찌푸린 눈살 조금을 받았을지언정 요즘처럼 말하기 어려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내 음식 취향을 말하려는 것뿐인데 어쩐지 자꾸 움츠러든다. 그래서 보신탕 얘기를 꺼내지 않은지 꽤 됐다.


  나는 보신탕을 잘 먹는다. TMI겠지만 수육보다는 탕이나 전골을 더 좋아한다. 깻잎과 들깻가루 듬뿍 들어간 진한 국물은 말할 수 없이 좋아한다. 국물 속에 들어있는 고기를 골라내서 다진 양념에 찍어 입에 넣고, 흰 밥 한 숟갈 먹고, 마무리로 국물까지 마셔주면 그게 한 세트다. 운동할 때는 엄두도 못 내던 '세트 반복'을 보신탕 먹을 때는 쉬지 않고 한다. 정신없이 밥그릇을 비우고 나면 땀이 쏙 빠지는 느낌인 게, 제대로 몸보신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오래전 잠시 몸 담았던 팀의 멤버는 나까지 다섯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자 직원이었는데 한국 아저씨 셋에, 나와 동갑내기 네덜란드인 한 명이었다. 딱히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우리 팀이 잘 맞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회식 때였다. 다섯 명이 모두 보신탕을 좋아했다. 가끔 점심시간을 길게 잡은 날엔 소공동의 사철탕집으로 몰려가 즐겁게 그릇을 비우곤 했던 생각이 난다. 전에 알고 지내던 미국인이 보신탕을 잘 먹어서 신기했었는데 네덜란드인도 그 못지않게 잘 먹는 걸 보고는 조금 놀라긴 했다. 프랑스인가 영국인가, 유럽 어느 나에서는 보신탕을 그렇게 대놓고 비난한다던데...


  개가 사람과 매우 친밀한 동물이고, 그 귀여움과 충성심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유독 개고기를 비난하는 의견을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는? 돼지는? 닭과 오리는? 다른 동물의 고기는 다 먹으면서 개고기는 안 된다는 논리를 한 번 이해해보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개를 잔인하게 죽이는 게 떠올라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는 사람도 봤는데, 소나 돼지를 죽일 때는 뭔가 우아한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특히 외국에서 한국을 공격할 때 별 상관없는 상황에서 개고기를 들먹이면 이가 없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개고기 금지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다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발견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에서 먼저 '한국에서 개고기를 금지해달라'라고 요청했고, 그 이후로 끊임없이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사실일까?). 왜 다른 나라에서 남의 식문화에 대해 하라 마라 간섭을 하는 걸까. 나는 달팽이 요리나 푸아그라, 심지어 지네 튀김 같은 요리를 이해할 수 없어도 그걸 그 나라에 금지 요청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금지 요청은커녕, 그 나라 사람들을 공격할 때 화살로 쓸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다. 


  그동안 개고기에 관한 법령은 그야말로 애매했다. 축산법으로는 합법이에 개를 가축으로 사육하는 것은 괜찮지만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태껏 개 도축은 음지에서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 그간 수없이 논란만 되풀이되어온 셈이다. 동네를 돌며 시골 누렁이를 훔쳐가던 개장수의 에피소드가 전설처럼 남아있는 것도 개고기 자체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히려 이런 것들을 양지로 올린 후, 반려견과 식용견을 분류해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사회적 흐름은 아예 개고기를 먹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개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해졌으니 이제는 먹지 말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을 이해한다. 개를 키워본 적은 없어도 나 또한 주인과 함께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데, 견주들이 보신탕이라는 음식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선배들을 따라 끌려간 보신탕집에서, 어릴 때 강아지 목욕시킬 때 났던 냄새 비슷한 것을 맡고 너무 충격받았다는 댓글을 보고는 나도 순간 멈칫, 했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반대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람도 있는 것 같다. 모든 견주나 동물 애호가가 다 그러진 않겠지만, 반려견은 반려견대로 사랑하되 식용 개에 대한 입장은 따로 생각하자는 나 같은 사람을 잔인하고 미개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으로 취급하는 시선이 있는 듯하다. 동일한 사안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두 의견일 뿐인데, 개고기를 인정하는 쪽은 졸지에 교양 없고 무지한 부류가 되어버리는 낌이라 씁쓸하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보신탕 가게도 많이 줄었다. 어느 동네든 '개고기'는 아니어도 '사철탕'간판은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안 그래도 친한 친구나 가족이 보신탕을 좋아하지 않아서, 가끔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어렵게 먹곤 했던 음식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힘들어진 것 같다. 개고기 식용 금지와 해외에서의 비난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와 논리를 떠나서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것 같아서 아쉽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간판

* 보신탕에 대한 생각을 예전부터 여러 번 했었고, 최근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한 번 써 봤습니다. 본의 아니게 무거운 느낌의 글이 됐네요.


  


  


  

디네로 소속 한국문인협회 직업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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