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na Perri- A Thousand Years(트와일라잇)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모든 시리즈를 하루에 쭉 이어서 영화관에서 감상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동안 이렇게 인기 있는 영화 시리즈를 밤새 이어서 감상하는 프로그램들이 영화팬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영화관을 매주 들락거리던 내게 금방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11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개봉하면서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1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는 패키지를 선물로 줬는데, 아마 포스터와 입장권을 겸하는 사원증 같은 목걸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엔 패키지보다도 미국에서 트와일라잇 마지막 시리즈의 개봉을 함께하고, 기념으로 이런 프로그램에도 참가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고이 보관하진 않고 목걸이만 한국에 올 때 집으로 가져왔다.
영화를 보며 뱀파이어끼리 서로 죽일 때 폭소가 터지는 미국 관객들과 살짝 괴리감을 느끼고, 긴 영화 시간에 중간에 살짝 졸기도 했지만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벨라가 드디어 소원하던 대로 에드워드와 영원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고,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출산과 육아까지 함으로써 자녀를 낳고 기르는 그 엄청난 일도 경험하며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더 깊은 이해가 있었다.
트와일라잇은 그냥 그런 뱀파이어+하이틴 영화라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고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내겐 아주 특별한 영화이다.
2008년, 나는 또래와는 다른 20대 초반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에서 죽음이라는 늪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고, 세상과 (있을지도 모르는) 신과 얌전히 초, 중, 고 학교만 다녔던 나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매일 밤 고통과 그 고통보다 심한 고민과 절망으로 잠들지 못하던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렇게 죽는다면 학교만 다니고 스스로 뭔가 해낸 게 없는 내 삶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남겨질 가족들에게도 씻지 못할 고통일 텐데 왜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생겨야 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이고 낮이고 나를 죽음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매일 회진 때마다 의사는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해주었고, 다음 날이면 그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관을 연결해둔 곳으로 공기가 들락날락하는 것이 느껴지고, 관이 갈비뼈를 건드리면 고통스러웠다. 자연히 옆에 누가 가까이 오기만 해도 신경이 곤두섰고, 날이 갈수록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점령하다 못해 얼굴까지 넘쳐흘렀다.
나도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고, 대학교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술도 마시고, 소개팅 미팅도 해보고, 연애도 요란하게 해 보고, 그리고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멋진 커리어를 가지고 후배들을 도와주는 선배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럴 수 없다니... 당장 수술 후에 살아서 눈을 뜰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니.
너무나도 무섭고 싫었다.
병원에서 더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던 나를 보던 엄마는 뭐든지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읽고 싶은 책은 더 없는지, PMP에 영화를 더 담아줄지 계속 물어보셨고, 나는 트와일라잇을 기억해냈다. 그 해 여름에 영화 광고를 보고 여자 주인공과 영화 분위기, 색감에 내가 뿅 반했던 영화.
개봉할 11월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우선 병원에서 읽을 수 있게 원작 소설 시리즈 전권을 사다 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뭔가 요구하는 내가 반가우셨던지 바로 병원 앞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다 주셨다. 그리고 책을 다 읽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잠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잊었다. 아니다 그 고통과 고민을 내가 책 속의 벨라인 것처럼 벨라의 고민을 하다 보니 뒷전으로 미뤄둘 수 있었다.
뱀파이어 소년과 평범한 소녀의 하이틴 로맨스.
여느 로맨스 소설과 비슷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이야기지만 내겐 뱀파이어라는 설정의 에드워드가 영원한 자신의 삶을 괴로워하고, 인간인 벨라는 그대로 인간으로 살았으면 바랐던 그 고민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삶과 죽음이 매일 왔다 갔다 하는 내게도 같은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해 여름에 수술을 하자고 하고, 우선은 퇴원을 하자마자 영화관에 가서 아픈 몸을 부여잡고 영화를 봤다.
수술해도 치료될 가망이 없고, 우선은 어리니까 시도해보자는 말이 아직도 가끔 떠올릴 때마다 삶에서 버림받은 느낌에 상처가 된다. 그렇게 세상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것 같은 느낌에 여름에 수술하기 전까지 내 삶을 조금씩 정리해야 하나 고민했다. (결국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아주 구질구질 쿨하지 못하게 수술실까지 갔지만..)
유치하고 뻔할 뱀파이어 하이틴 로맨스를 이렇게 푸르고 톤 다운된 색감으로 상상만 하던 소설 속 포크스의 분위기를 살리고, 잘생긴 에드워드와 평범하다기엔 너무 예쁘고 (당시엔 가장 좋아하던 엠마왓슨과도 닮아서 더 좋아했던) 늘씬한 벨라를 보며 소설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2편부터는 감독이 바뀌면서 색감도 바뀌고, 특히 에드워드의 패션이나 헤어가 달라졌는데 나는 1편의 느낌이 너무 좋아했던 터라 많이 아쉬웠다ㅠ)
처음 미국에 도착해서 조금 두렵기도 하고 긴장된 상태였던 내가 마음이 확 풀리고 샌프란시스코에 푹 빠질 수 있게 된 계기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OST인 A Thousand Years였다. 당시에 나는 링컨센터라는 건물에서 어학원을 잠시 다녔는데, 오전부터 오후까지 프로그램을 들으며 건물 로비나, 로비가 보이는 어학원의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테라스는 로비가 보이면서 벽이나 창이 없어 로비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분의 연주 소리가 들렸다. 그날도 평소처럼 점심을 먹는데, 어느 순간 들려오는 멜로디가 귀에 박혔다. A Thousand Years를 피아노로 연주하시는 그 소리가 따뜻하고 부드럽게 귀에 들어오면서 긴장되고 경계하던 마음이 활짝 열리고 그때부터 나는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가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들려오는 익숙하고 사랑하는 멜로디의 힘이 이렇게 클까 놀랐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이 곡은 가사도 사랑에 대한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듯했다. 상처와 의심, 두려움으로 가득한 내 마음과 수술 자국과 후유증이 가득한 몸으로 매 순간 힘겹게 이겨내려 노력하며 메말라가던 내게도 천년을 기다려도 괜찮고, 천년을 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까? 항상 의심해왔지만 그 마음조차도 기다리다 내가 상처 받을까 회피하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내가 나를 돌봐주고 믿어주게 되니 모든 것에 더 자유롭고 열린 마음이 되었고, 이전까지는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하던 모든 것에 조금 더 담대하고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그 사람에게도 흘러넘쳐 닿는 순간이 오겠지 기대한다.
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영화에 마지막에 치명적인 스캔들로 인해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영화의 이야기만으로도 또 해리포터처럼 한 시대를 리드한 콘텐츠로서는 참 빛났다. 시대에 상관없이 이야기는 생명력을 가지고 후대로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도 보편적이지만 특별한 사랑에 대한 생각을 잘 담아낸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됐으면 좋겠다.
특히나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OST가 좋은데, 특히 많이 사랑받는 곡인 동시에 내게도 여러모로 특별한 곡인 A Thousand Years의 버전 중 원곡을 제외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버전들을 소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