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강해지는가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얼굴이, 아니 그녀가 연기한 마그다의 눈빛이 계속 남아있었다. 한쪽 가슴이 사라진 몸으로 갓 태어난 딸을 안고 미소 짓던 그 표정! 그것은 고통인가, 환희인가. 아니면 그 둘이 하나로 녹아든 어떤 초월적 순간일까...
'내일의 안녕'(Ma ma, 2017)을 보며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내게 6개월의 시간이 남았다면, 나는 과연 10개월짜리 생명을 품을 용기가 있을까? 내 대답은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하지만 마그다의 선택을 보며, 나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힘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심장 박동 소리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운드 이펙트려니 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아니, 실제로 크게 들린 게 아니라 내가 그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심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제해야 했던 마그다에게, 사라진 가슴은 여성성의 상실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집요하게 말한다. "가슴은 사라졌어도 심장은 뛴다"라고.
심장은 멈추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한. 그리고 마그다의 경우 그 심장은 두 개의 생명을 위해 뛰고 있었다. 자신과 태아를 위해! 그래서 영화 마지막 출산 장면에서 천천히 느려지는 심장 박동 소리는 한 생명에서 다른 생명으로의 이동, 생명의 릴레이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되었다.
이 영화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와 다른 지점은 마그다와 아르투로의 관계에 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 먼저가 아니었다.
같은 날, 두 사람의 인생은 각자의 방식으로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된다. 마그다는 암 진단으로, 아르투로는 딸의 죽음과 아내의 혼수상태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망이 두 사람을 이어주게 된다.
아르투로가 마그다를 처음 안았을 때, 그것은 로맨틱한 포옹이 아니었다. 서로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위로였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고, 내가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둘에게는 구원이었다.
그들의 관계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가족이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혈연? 법적 계약? 아니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마음? 마그다, 아르투로, 다니, 그리고 태어날 아기. 이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은 조각들이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축구를 매개로 아르투로와 다니가 가까워지는 과정도 흥미롭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와 딸을 잃은 남자.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이것이 진짜 가족 아닐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그 상처를 함께 어루만지는 것.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으로는. 4기 말기 암인데 6개월 시한부임에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다... 의사 줄리안은 조심스럽지만 명확하게 위험성을 경고한다. 산모도, 태아도 위험하다고.
하지만 마그다는 아이를 낳기로 한다. 이 선택을 두고 사람들은 의견이 갈린다.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을 아이를 생각해봤어?"라고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숭고하다고 말한다. "죽음 앞에서도 생명을 선택한 용기가 숙연해진다"라고...
나는 어느 쪽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만약 내가 마그다의 상황이라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임신을 알았을 때의 그 복잡한 감정을 상상해본다. 기쁨? 두려움? 죄책감? 아마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깨달은 건, 이것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그다의 선택은 마그다의 것이다. 그녀는 의사의 경고도, 주변의 우려도 마그다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했다.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생명으로.
어쩌면 이것은 통제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암은 마그다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것이 찾아와 그녀의 삶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임신한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만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주체적 선택. 그것이 마그다에게 임신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줄리안 의사가 입양할 예정이라던 딸, 나타샤. 이 아이는 영화 내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사진과 이야기로만 있으나 그들 앞에 나타나는 존재는 아니다. 마그다는 나타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빛이 반짝인다. 궁금해하고,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인다.
나타샤는 결국 줄리안의 딸이 되지 못한다. 반면 마그다의 뱃속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 대조적인 운명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없다. 입양을 준비하던 나타샤는 오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임신은 생명으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나타샤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마그다가 자신의 딸을 상상하는 의미였다는 것. 사진 속 나타샤의 존재처럼, 자신도 딸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의 복선이었다는 것! 실제로 마그다는 뱃속 아이가 딸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는 딸을 낳게 된다.
마그다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직후, 잠깐 아기를 안고 미소 짓는 그 씬을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한쪽 가슴이 없이, 그러나 평온한 얼굴은 고통받는 육체 속에서 충만한 영혼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그린 성모상들이 떠올랐다. 고통 속에서도 아기를 품은 마리아의 모습. 마그다의 그 순간은 종교적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여성의 몸이 겪는 고통과 희생,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신비란!...
"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라는 문구와 함께 영화가 끝나는데 이 자막은 단순한 헌사가 아니다. 이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내는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말한다고 느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이 오래된 격언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마그다를 보면 그 말의 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암으로 무너지는 몸, 그러나 새 생명을 품고 버티는 의지. 이것이 모성의 힘이었달까.
영화는 마그다는 죽게 되고 아르투로와 다니가 아기를 키우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카메라는 아기의 얼굴을 비춘다. 마그다의 눈을 그대로 닮은 눈을 강조한다.
이 순간 나는 울었다. 마그다는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딸의 눈빛 속에 있고, 웃음 속에 있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함께할 것이다. 아르투로가 딸을 볼 때마다, 다니가 동생을 안을 때마다, 그들은 마그다를 기억할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적어도 마그다에게는. 그녀의 생명은 딸로 이어졌고, 그 딸은 자라서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낼 것이다. 생명은 이렇게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연속이고, 누군가의 시작이다.
'내일의 안녕'은 희망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값싼 희망이 아니다. 절망을 직시하고, 고통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런 희망!...
마그다는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암이 사라지기를, 자신이 살아남기를 기도하지 않았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남은 시간 동안 사랑하고, 새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것이 진짜 용기였다!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것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의 한계 안에서, 그래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려는 것이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죽음이 다르게 보이고, 생명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의 모든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의 시선을 갖게 된다.
"내일의 안녕"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한테 그것은 우엇일까? 내일도 안녕하길 바라는 인사? 아니면 오늘과 작별하며 내일을 맞이한다는 인사일까? 아마도 둘 다 일 것 같다. 매일 죽고 매일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는지.
마그다의 심장은 멈췄지만, 그녀가 심어놓은 생명은 계속 뛰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우리의 심장도, 조금은 다르게 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마그다의 담당의사 줄리안이다. 처음 암 진단을 전할 때는 냉정한 전문가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그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난다.
수술대에 누운 마그다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 연민이 느껴졌는데 그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그다의 여정을 함께 걷는 동행자였다.
줄리안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시베리아의 고아 나타샤를 입양하려 했으나 아내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그는 아버지의 꿈을 접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마그다가 자신의 딸 이름을 나타샤로 짓겠다고 했을 때 줄리안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한 남자가 딸로 삼지 못한 이름이, 다른 여성의 딸에게 주어진다는 건 아름다운 순환이 아닐까? 죽어간 나타샤의 이름이 새로 태어난 나타샤로 이어지게 될테고...생명의 끝과 시작이 이렇게 연결된다.
극중, 마그다 아들 "다니"에게 축구는 꿈이자 정체성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에 들어가는 것. 그 꿈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준 사람이 아르투로였다.
생각해보면 아르투로도 딸을 잃은 직후였다. 상실의 공허함 속에서 다니를 만났고, 축구라는 공통된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공을 차고, 같이 경기를 보고,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시간들이 둘을 치유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떠난 아이와, 딸을 잃은 남자.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혈연이 없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 영화는 이것을 말없이 보여준다.
마그다가 떠난 후, 아르투로와 다니가 함께 나타샤를 키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빠와 형. 아니, 두 명의 아빠. 그들은 매일 마그다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타샤가 공을 차기 시작하면, 다니는 형으로서 가르쳐줄 것이고, 아르투로는 할아버지처럼 지켜볼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방 절제, 여성성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신체 부위를 잃는다는 것! 마그다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영화는 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마그다가 거울 앞에 서는 장면, 옷을 입는 장면. 그 짧은 순간들에서 우리는 그녀의 내면을 엿본다. 슬픔, 수치심, 그리고 점차 받아들이는 걸 관객은 보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쪽 가슴을 잃은 그 몸에서 새 생명이 자란다. 상실과 재생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여성의 몸은 이렇게 강하다. 부서지면서도 동시에 만들어낸다. 파괴되면서도 창조하니까...
임신한 마그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출산의 도구로? 성적 대상으로? 마그다의 몸은 그 모든 틀을 벗어난다. 그녀의 몸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것이고, 생명의 그릇이며, 사랑의 표현이었다!
마그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극적인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일상을 더 깊이 살았다.
아들과 아침을 먹고, 연인과 산책하고, 의사와 농담을 나누고. 그 평범한 순간들을 온전히 경험했다. 죽음이 가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제대로 보게 되는 걸까.
영화에서 마그다는 특별한 날을 기다리지 않고,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삶이 우리의 것이라는 걸 알고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영화 속 대사다. 단순하지만 진실한 말이다.우리는 내일을 약속받지 못하므로 오늘을 사랑해야 한다.
'내일의 안녕(Ma ma)'. 이 제목을 곱씹어본다. 스페인어로 Ma ma는 엄마를 뜻한다. 하지만 한국어 제목 '내일의 안녕'은 다층적 의미를 품고 있다.
첫째, 내일도 안녕하기를 바라는 인사. 오늘 헤어지지만 내일 다시 만나자는 약속. 마그다가 가족에게 "있다가 보자"고 말하는 장면과 겹친다.
둘째, 내일에게 고하는 작별. 더 이상 내일이 없는 사람이 오늘에게 전하는 안녕. 마그다의 마지막 순간이 그랬다. 그녀는 내일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셋째, 어머니(Ma ma)가 자녀에게 주는 축복. 내가 없는 내일도, 너는 안녕하기를. 마그다가 나타샤에게 남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엄마는 떠나지만, 엄마의 사랑은 남는다.
제목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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