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는 보고 나서 불편함이 남는다. '힐러리와 재키'가 그랬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의 삶을 다룬 이 영화는, 천재 음악가의 비극적 생애를 보여주면서도 이상하게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출발점에 있다. 원작은 언니 힐러리와 남동생이 함께 쓴 회고록이다. 재키는 1987년에 세상을 떠났고, 영화는 1998년에 만들어졌다. 죽은 자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가족이 쓴 회고록은 사랑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산물이다. 살아남은 자는 이야기를 쓸 수 있고, 떠난 자는 오직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재키를 알게 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힐러리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재키를 보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두 자매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는 'twice told tale' 형식을 취한다. 공정해 보이는 이 구조는 사실 교묘한 장치다. 힐러리 파트에서 재키는 불안정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재키 파트에서 우리는 그녀의 고통을 엿본다. 하지만 재키 파트조차 힐러리의 회고록에서 나온 것이라면, 과연 이것이 재키의 목소리일까?
"사실 난 첼리스트가 되고 싶지 않아요. 어느 날 연주를 하고 나니 2년 치가 예약이 된 거예요."
이 대사는 우리가 천재성에 대해 가진 환상을 산산조각 낸다. 우리는 천재를 타고난 재능과 열정의 결합체로 상상한다. 하지만 만약 그 재능이 본인이 원하지 않은 것이라면? 만약 세계가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당신 자신의 욕망을 압도한다면?
재키에게 첼로는 정체성이 아니라 운명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도망칠 수 없는 운명. 27세에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녀는 어쩌면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공연 무대 위의 화려한 연주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천 시간의 연습,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실수할 수 없다는 공포, 끝없는 여행과 호텔방, 관객과 평론가의 기대!...
영화는 이것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재키의 불안정함 뒤에 이 모든 것이 숨어 있다. 그녀가 형부와의 관계를 원했다는 장면, 평범한 가정을 갈망했다는 묘사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하나의 진실을 말한다. 천재 예술가는 무대 위에서는 신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백조와 같음을...
남성 천재 예술가들의 기행, 외도, 괴팍함은 종종 천재성의 증거로 낭만화된다. 하지만 여성 천재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될까?
재키가 정말 형부와 성관계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가 이 부분을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다. 재키는 미친 여자, 통제 불가능한 존재, 가족을 위협하는 괴물로 그려진다. 만약 남성 천재가 동생의 배우자를 욕망했다면 과연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었을까?
영화 개봉 후 재키의 지인들이 강력히 항의했다. 재키의 전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은 영화를 보며 분노했다고 한다. 그가 재키의 투병 중 바람을 피워 아이를 낳았다는 부분도 영화에 나왔다는 이유로... 나는 사실 관계는 모르지만 내 몸이 나를 배신한다면 충분히 내 이성을 잃을 수도 있을 듯!...
다발성 경화증은 중추신경계를 공격하는 질병이다. 근육 조절 능력을 점차 잃어간다. 첼리스트에게 이것은 단순히 직업을 잃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은 재키가 턴테이블 바늘을 힘겹게 내리는 순간이다. 과거 자신이 연주한 엘가 협주곡을 듣기 위해. 이 장면은 예술가에게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첼로는 재키의 확장된 신체였다. 그것을 연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라진 것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 자체였다.
"넌 백만 년이 지나도 평범해질 수 없어. 넌 첼로 외엔 아무것도 모르잖아."
힐러리의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선고다. 평범함은 재능이 없는 사람들의 숙명이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다.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 크지 않은 기대 속에서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힐러리는 왕립 음악원 시험에 떨어졌다. 겉보기엔 실패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속도로 살아간다. 영화는 이것을 패배로 그리지만, 과연 그럴까?
재키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힐러리는 평범하게 살며 오래 살았다. 누가 이겼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이 비교를 강요한다.
자매 관계에서 질투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힐러리는 재키의 재능을 질투했고, 재키는 힐러리의 평범함을 질투했다. 둘 다 상대가 가진 것을 원했고,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를 몰랐다는 것이 중요할 듯!...
자클린 뒤 프레의 엘가 첼로 협주곡 연주는 전설이다. 1965년 녹음된 이 음반은 지금도 이 곡의 최고 연주로 꼽힌다.
엘가는 1차 세계대전 직후 이 곡을 썼다. 한 시대의 종말,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애도. 자클린 뒤 프레의 연주는 여기에 개인적 차원의 절실함을 더했다. 그녀는 27세에 연주를 멈춰야 했고,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서 이 곡은 재키의 영광과 파멸을 동시에 상징한다. 무대에서 연주될 때는 황홀함이지만, 병상에서 재생될 때는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이다. 음악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변한다.
에밀리 왓슨은 자클린 뒤 프레의 특이한 연주 자세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과도하게 몸을 흔들고, 첼로와 하나가 되려는 듯한 몸짓.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왓슨은 재키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키의 육체성을 이해한다. 연주할 때의 황홀경, 무대 뒤의 공허함, 병상에서의 절망. 같은 몸이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 상태들을 보여준다. 이것이 위대한 연기다.
이 영화를 보며 불편한 이유는 우리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재의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천재가 치른 대가에는 무관심하다.
자클린 뒤 프레의 엘가 협주곡을 들으며 감동받지만, 그녀가 그 음악 뒤에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완벽한 공연을 요구하면서도, 그 완벽함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천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소비되는 상품이다. 우리는 그들의 예술을 원하지, 그들의 인간성은 원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 아닐는지...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더 많은 것을 숨긴다. 재키는 정말 그렇게 불안정한 사람이었을까? 형부와의 관계는 사실일까? 힐러리는 정말 선의로 이 이야기를 썼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재키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천재라는 이름 뒤에는 언제나 한 인간의 고독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고독을 낭만화하면서 동시에 외면한다는 것.
음악은 영원하지만, 음악가는 영원하지 않다. 이것이 예술의 잔인함이자 아름다움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불편하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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