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선생님이 라라에게 던진 "진정으로 원하면 죽도록 해야 해, 인생이란 다 그런 거니까!"라는 이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예언이자 경고였고, 라라가 앞으로 마주할 현실의 무게였다.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도, 여성이 되기 위해서도, 라라는 말 그대로 "죽도록" 해야 했다.
루카스 돈트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이 영화는 2018년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황금 카메라상(신인 감독상),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남우주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종려상까지 단숨에 4관왕을 차지했다. 이후 스톡홀름, 토론토, 산세바스티안 등 세계 주요 영화제를 휩쓸며 총 32개의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지 수상 경력 때문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되, 선정성이나 동정심에 기대지 않고 한 인간의 절실함을 있는 그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16세 소녀의 몸과 마음이 겪는 전쟁을, 이 영화는 침묵과 시선으로 말한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 노라 몬세쿠르(Nora Monsecour)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2009년, 루카스 돈트 감독은 영화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한 신문 기사를 접했다. 15세 소년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발레리나가 되기를 꿈꾸며, 학교와 사회의 반대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소녀의 이야기였다.
감독은 즉시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처음엔 거절당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간의 대화 끝에 노라는 마음을 열었고, 시나리오 초고부터 최종 단계까지 직접 참여했다.
노라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진실이 곧 나의 진실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녀는 독일 탄츠마인츠 컴퍼니에서 활동한 후 2023년부터 프리랜서 무용수로 활동하며,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가로도 살아가고 있다.
16세 라라는 아버지, 어린 남동생과 함께 벨기에 앤트워프로 이사한다. 새로운 시작이다. 명문 발레 학교에 입학 신청을 했고, 8주간의 심사 기간을 거쳐야 한다. 동시에 라라는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는 라라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다. 발레 학교 친구들도 라라가 트랜스젠더임을 알지만 표면적으로는 친절하다. 하지만 라라의 진짜 싸움은 다른 곳에 있다. 매일 거울 앞에서, 발레복을 입을 때마다, 샤워할 때마다 마주하는 자신의 몸. 호르몬 수치가 낮아 수술은 계속 미뤄지고, 의사는 "몸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발레 연습은 가혹하고, 몸은 한계에 다다르며, 동급생들의 시선은 미묘하다. 한 소녀가 라커룸에서 몸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순간, 라라는 거절하지 못한다. 모든 압박이 한계를 넘어서자, 라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가위로 자신의 성기를 자른다.
응급 처치 후, 라라는 다시 거리를 걷는다. 그녀의 얼굴에는 결의가 담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점은 발레와 성전환을 병치시킨 구조다. 발레리나가 되는 과정과 여성이 되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발레는 몸을 재구성하는 예술이다. 발의 형태가 바뀌고, 근육이 뒤틀리며, 피가 나고, 고통이 일상화된다. 하지만 발레리나들은 이를 감내한다. 예술을 위해, 완벽함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라라의 성전환 과정도 같다. 호르몬 주사, 테이핑, 수술 준비. 몸을 바꾸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영화는 이 두 과정을 구분하지 않는다. 발레 연습 장면과 병원 장면이 교차되며, 둘 다 "되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라라에게 발레는 단순한 취미나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하고 증명하는 수단이다.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는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느끼는 극심한 불편함과 고통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이를 말이 아닌 이미지로 전달한다.
라라가 거울을 볼 때 시선이 위에서 멈추는 장면, 샤워할 때도 아래를 보지 않는 장면, 테이프로 성기를 감싸매는 장면. 이 모든 것이 라라가 자신의 몸을 얼마나 거부하는지 보여준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라라에게 가장 큰 적은 사회도, 동급생도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몸"이라고 말했다. 몸과 정신의 불일치가 주는 고통, 매일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괴리감. 이것이 라라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의사는 계속 말한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야 한다", "몸이 준비되어야 한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라라에게 기다림은 고문이다. 하루하루가 잘못된 몸 안에 갇혀 사는 시간이다. 발레 연습에서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매 순간이 자신의 '다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성확정 수술에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다. 일정 기간의 호르몬 치료, 정신과 상담, 신체 건강 등. 합리적인 절차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끝없는 장애물이다.
표면적으로 라라의 주변은 우호적이다. 아버지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발레 선생님은 라라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하며, 친구들도 대놓고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보이지 않는 차별, 미묘한 배제를 포착한다. 여학생들이 라라에게 몸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악의가 없었을 수도 있다. 단지 호기심이었을지도. 하지만 그것이 라라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관대한 차별"이 더 힘들다. 명백한 적대보다 더 대응하기 어렵다. 상대방에게 악의가 없으니 항의하기도 애매하고, 혼자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주연 빅터 폴스터는 이 영화가 첫 연기였다. 벨기에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던 그는 감독의 제안을 받고 라라 역을 맡았다.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연기는 경이롭다. 대사는 적지만, 모든 것이 표정과 몸짓으로 전달된다. 라라가 발레복을 입기 전 테이프로 성기를 감싸매는 장면,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회피하는 장면, 아버지와 차 안에서 우는 장면. 그의 연기는 절제되어 있지만 강렬하다.
특히 빅터 폴스터 본인은 시스젠더 남성(게이가 아님)이다. 그런 그가 트랜스젠더 여성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이 될 수 있었지만, 그의 섬세한 연기는 모든 의심을 잠재웠다. 그의 연기는 섬세함이 놀라울 정도다.
감독 루카스 돈트는 데뷔작답지 않은 성숙함을 보여준다. 그는 트랜스젠더를 다룬 기존 영화들의 함정을 피한다. 과도한 감정 몰입도, 교훈적 메시지도 없다. 대신 관찰한다. 라라의 일상을, 고통을, 작은 순간들을.
카메라는 라라를 따라간다. 발레 연습 장면에서는 트래킹 샷으로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움직이며, 거울 장면에서는 정지된 프레임으로 그녀의 내면을 포착한다.
특히 몸에 대한 클로즈업이 인상적이다. 발가락, 허벅지, 어깨, 목덜미. 신체 부위들을 클로즈업하며, 라라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여준다.
한편, 음악 감독은 전통적인 멜로디 대신 화성 연결적 구성을 택했다. 불안한 화음, 해결되지 않는 긴장. 이는 라라의 상태를 음악으로 번역한 것이다.
특히 발레 연습 장면에서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라라의 내면을 표현하는 불협화음이 대비를 이룬다. 겉으로는 우아한 발레지만, 속으로는 고통과 불안이 소용돌이친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에서 논란이 있었다. 일부 활동가들은 "지난 몇 년간 만들어진 트랜스젠더 영화 중 가장 위험하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결말의 자해 장면이었다. 라라가 가위로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장면은 충격적이고, 일부는 이것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트랜스젠더는 자기 파괴적"이라는 편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 모델인 노라 몬세쿠르는 "자살을 생각하거나 신체에 강박을 느낀 사람이 나뿐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며 영화를 옹호했다.
감독 루카스 돈트는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고통을 미화하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존중"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해결되는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라라는 완벽한 발레리나가 되고 싶고, 완벽한 여성이 되고 싶다.
하지만 발레계는 특정한 몸을 요구한다. 긴 다리, 유연한 관절, 가벼운 몸무게. 라라는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혹사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도 "여성다움"의 기준을 요구한다. 부드러운 목소리, 곡선의 몸을...
라라는 두 가지 완벽함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리고 둘 다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는 묻는다. 왜 우리는 완벽해야 하는가? 완벽하지 않으면 존재할 자격이 없는가?
또한 라라는 왜 자신의 몸을 바꾸는데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의사, 정신과 의사, 사회의 승인. 모든 단계마다 검증받아야 한다.
이것은 트랜스젠더만의 문제가 아니다. 낙태 등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갖지 못한다. 특히 여성의 몸, 퀴어의 몸은 더욱 그렇다.
영화는 질문한다. 내 몸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라라 같은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가?...
영화는 라라가 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끝난다. 해피엔딩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인가?
감독은 의도적으로 결말을 열어두었다. 라라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수술을 받을지, 발레를 계속할지, 행복해질지, 모두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라라는 살아있다. 극단적 순간을 넘겼고, 다시 걷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결의가 있다. "나는 계속 살겠다. 내가 원하는 나로."
이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희망이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삶.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보였다...
이 영화는 완벽하지 않다. 논란도 있고, 한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몸과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을 거부해야 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인지...
라라의 이야기는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다움"을 찾기 위해 싸우는 모든 이의 이야기다.
빅터 폴스터의 첫 연기는 경이로웠고, 루카스 돈트의 데뷔작은 성숙했으며, 노라 몬세쿠르의 용기는 귀했다. 32관왕이라는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한 사람의 진실을 담았다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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